우리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랬듯이.

조우빈(경영·21)
조우빈(경영·21)

 

띠링, 랜선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지난 202055일 어린이날, 영부인과 함께 대통령은 가상세계를 구축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플레이할 수 있는 샌드박스 장르의 게임 마인크래프트에 캐릭터로 등장해 가상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 어린이날 축하 행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화려한 청와대 배경과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준 축사가 무색하게도, ‘마인크래프트2012122일부터 발효된 선택적 셧다운제로 인해 게임을 제공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난 6월 미성년자의 자사 계정 생성을 막으면서 한국에서 사실상 성인들만 이용이 가능한 게임이 되고 말았다.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러한 사태의 후폭풍은 실로 강력했고, 결국 국회는 문제의 근원인 선택적 셧다운제는 그대로 둔 채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해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규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올해로 막을 내린 강제적 셧다운제 10년간 우리는 어떤 문제들과 마주해왔을까?

우선 셧다운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지 못했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의 학업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시행한 이 규제는 정작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률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적용됐고, 게임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부정적 이미지를 크게 강화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가정 내외에서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갈등으로 표출됐고 이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교육의 방향성과도 맥락이 어긋남을 알 수 있다. ·중등교육법에서 초중등 교육과정의 공통적인 목표로 명시하고 있는 것은 청소년의 독립자존과 자율적 활동의 조장이다. 그러나 셧다운제는 법률 제정 과정에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의 독립자존과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았고 결국 가정의 불화나 우회 접속경로 탐색과 같은 역효과만을 야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초중등 교육목표에는 건전한 정신 함양 또한 명시돼 있지만, 필자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볼 때 셧다운제에 의한 게임 시간의 규제는 청소년들의 정신을 건전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하다.

또한 강제적 셧다운제는 애초에 그 방향성이 잘못된 규제였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익에 심각한 저해가 우려될 때만 최소한으로 시행하게 돼 있다. 셧다운제 제정 과정에서 해결을 기대한 우려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청소년의 수면 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학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폭력성 높은 게임이 건전한 정신의 함양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이 중 전자는 청소년들이 미성년자가 아닌 형제자매의 개인정보를 이용한다거나, 우회 접속 서버 등을 이용하는 등의 갖가지 방법을 찾아내 규제를 회피함으로써 거의 해결되지 못했다. 드물게 해답을 찾지 못한 몇몇 청소년이 게임을 즐기지 못했다고 해도 심야에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것이 곧 수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후자는 게임위원회의 연령등급체계에 의해 제재를 받는 것이기에 이용 시간 규제와는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셧다운제는 명분, 실리, 방향성 그 어떤 것도 충족하지 못한 무의미한 규제였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태국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듯 셧다운제의 실패는 예정된 수순이었고, 현재는 중국과 베트남과 같은 극소수의 공산권 국가를 제외하면 셧다운제를 강제하는 나라는 한 손에 꼽는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 제시된 문제점들은 법을 제정한 사람들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서 게임업계 종사자들과 정책 당사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꾸준히 피력해왔으나 그들의 의견은 의도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대의와 명분아래 지속적으로 묵살돼 왔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수많은 정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또 그것은 누구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주는가?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수많은 대의와 명분들에 속아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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