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최성수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캠퍼스에 서식하는 인간은 매년 8월 말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생들이 가족, 친구들과 캠퍼스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풍경을 보게 된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commencement)이란 의미도 있지만, 난 그보다 일단 4년의 길고 고단한 과정을 잘 마쳐냈음을 좀 더 자축하고 기념하는 것도 좋다 생각한다. ‘고생들 하셨다, 부모님들 자랑스러워할 만하시다, 앞으로가 진짜겠지만 지금까지처럼만 한다면 대부분 잘 사실 것이다!’

보통 이 정도면 충분할 텐데, 올해는 두 가지 생각이 더 들었다. 하나는 예년에 비해 이맘때 더위가 좀 덜해서 졸업가운 입고 저러고 있어도 견딜 만하겠다 하는 가벼운 안도. 다른 하나는 학업 측면, 졸업 후 진로 준비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3~4학년 마지막 네 학기를 캠퍼스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보내고 졸업하게 되어 미안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 1년 반 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 졸업생들이 대학 생활이나 진로 준비를 좀 다르게 계획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했으려나? 지난 과거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모두에게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번 졸업생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첫(그리고 많은 경우 마지막일) 대학 생활이 그렇게 미끄러져 가버린 경우니 좀 오글거려도 이런 정도의 연민, 위로를 좀 더 나눠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정말 고생들 하셨다. 자랑스럽다!’

그래도 미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생활의 아쉬운 마무리는 과거로 하더라도, 이제 펼쳐질 삶에 대한 불안은 현실이자 미래다. 과연 지금 그냥 이렇게 사회로 나가도 괜찮은 걸까? 혹시 이렇게 나가는 바람에 앞길이 꼬이고 마는 거 아닐까? 어려울 때 졸업하는 사람들의 불리함은 거의 평생의 경력을 따라다닌다는 연구들도 많다던데(사실이다 ㅠㅠ), 내가 그 당사자가 되는 거 아닐까? 당연한 걱정이다. 물론 나도 뾰족한 답은 없다. 다만 나 스스로가 앞가림해 오면서, 관련 내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면담하면서 고민하고 정리했던 점을 나누고자 한다.

첫째, 조급해할 필요 없다. 대학은 졸업해도 향후 5년 이상 길면 10년까지는 여전히 탐색기라고 봐도 된다. 졸업 후 들어간 직장이 안정적이라면, 그렇게 평생 갈 수 있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안정성을 바탕으로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이라 생각한 경우도 막상 꼭 그렇지만은 않아 예상치 않게 진로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계획된 바가 있어 좀 더 모험적인 길을 선택한 경우나, 의도치 않게 원하는 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아 불안정한 시작을 하게 된 경우도 그렇다. 계속 원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어떻게 살아야 하지? 버틸까? 옮길까?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빨리 안정적인 미래로 정착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은 입학부터 졸업이 코앞처럼 느껴지는 늘 불안한 학생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대략 20대 후반, 늦으면 30대 초반까지 이런 탐색이 허용되고 심지어 권장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많은 경우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차피 서른까지는 인생 모른다’, ‘길게 보고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계속 업데이트해 가겠다하는 것이 승산을 높이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적어도 한두 번의 큰 커리어 전환 카드를 써먹을 수 있다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보면 이번 졸업생들의 어려움을 정해진 운명처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둘째, 주변에 대해 좀 더 민감하면서도 무감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가족과 지인들의 연결망으로부터 습득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 세계가 어떻다고 판단하기 위한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한 정보다. 먼저 내 주변 사람들의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구성 분포에 민감해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삶의 반경이 좁아지기 마련인데, 어느 순간 내 주변에 너무 비슷한 사람들만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면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 대부분 사람이 경험하는 세상과 다를지 모른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그럴수록 주변에 무감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체로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동질적 집단 내에서 자신의 위치와 성과에 대해 편협한 진단을 내리기 쉽다. 주변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로 시야를 넓힐 때 향후 수년의 탐색기 동안 내가 성장하고 행복해질 결정을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졸업생들께 드리는 말처럼 썼지만, 사실 졸업생들이야 연세춘추를 읽지 않는다. 그냥 새 학기에 만나게 될 우리 재학생들에게 하고픈 말을 졸업생 핑계 대고 적어봤다. , 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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