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진국 도약을 둘러싼 논의를 짚다

한강의 기적’. 한국 전쟁 이후 약 반세기 만에 이뤄낸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난 1963100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21년 현재 300배를 넘는 약 31천 달러 규모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선진국이다라는 명제에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국가는 어떤 모습을 갖춰야 선진국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대한민국,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선진국

 

지난 7,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한국의 지위가 선진국으로 변경됐습니다. 1964UNCTAD가 설립된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전환된 최초의 사례입니다. 이외에도 다수의 국제기구에서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으로 간주해왔습니다. 201910월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한국이 개도국의 지위를 포기했죠. 국제연합(UN)과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을 선진국에 포함하는 기구들입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바라보게 된 이유는 높은 경제 수준 때문입니다. 한국은 지난 1996년 일찍이 OECD에 가입했습니다. 경제성장과 협력을 도모하는 국제기구에서 타 경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의미죠. 1인당 국민소득이 12천 달러 이상일 경우 부여되는 세계은행 고소득 국가 지위도 획득했으며, 2020년 교역 규모는 전 세계 9위였습니다. 이러한 경제발전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을 증대시켰습니다.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김용하 교수는 30여 년 전 우리나라가 저개발국일 때에는 주체적인 외교활동조차 어려웠다이제는 한 국가로서 주체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한국에게는 선진국으로서의 권리뿐만 아니라 책임도 주어졌습니다. 먼저 국제원조 및 무역 관계에서 도움을 받는 위치에서 주는 위치로 옮겨갑니다. 예컨대 지난 82일 개발원조위원회(DAC)는 한국의 공적개발 원조 규모를 당초 발표한 잠정 목표치보다 더욱 확대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개발도상국보다 국제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고려대 국제학부 서창록 교수는 과거보다 국제사회의 공동체성이 확대됐다공식적으로 정해진 선진국의 의무는 없을지라도 선진국의 지위를 존중받기 위해서는 그에 부합하는 소프트웨어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은 불행한선진국?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듯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실제 인식은 다릅니다. 지난 2016년 정부에서 진행한 공적 개발 원조 국민 인식 조사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여기는가 문항에 긍정적으로 답한 국민은 52.4%뿐이었습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유행한 신조어도 이를 증명합니다. 2010년대에 등장했던 인터넷 신조어 헬조선은 한국 사회의 답답한 현실을 자조하는 용어로 빈번히 사용됐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청년 세대는 우리나라를 지옥이라고 묘사하는 현실. 이 괴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바로 선진국에 대한 청년의 인식이 전통적인 기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을 판단하는 기존의 지표들은 청년 세대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뜻이죠. 실제로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행복지수는 OECD 37개국 가운데 35위에 불과했습니다. 일상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N포세대등의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실이 청년들에게 매우 각박하다는 의미죠. 이와 관련해 대학생 남모(25)씨는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목표와 청년이 이룰 수 있는 것들 사이의 큰 괴리감이 낮은 행복지수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선진국의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이 경제적 요소에서 인간다운 삶의 보장 정도로 확장된 것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김 교수는 장년층은 절대적 빈곤의 개선을 크게 체감해왔지만, 지금의 청년층은 윤리적내면적 요소를 중시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경제성장뿐 아니라 행복도와 사회적 책임의 이행 정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선진국의 자격도 더 높게 설정한다는 의미죠.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 1대 위원장 정승원씨는 경제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는 한국이 선진국일지라도, 지니계수*에 의하면 한국의 불평등은 높은 수준이라며 누구든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선진국이 되려는 국가, 새로운 자격을 갖춰라

 

현실을 반영한 선진국의 지표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 지표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떤 논의를 통해 선진국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나갈 수 있을까요.

먼저 정신건강에 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합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2019년 기준 26.9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20 자살률은 2019년 기준 전년 대비 9.6%나 증가했습니다. 또한 2018년 초··고생 96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에서는 최근 1년간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청소년의 비율이 33.8%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대학생 김모(21)씨는 한국의 과열된 경쟁이 번아웃 증후군으로 이어져 많은 청년이 좌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지난 몇 년 사이에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전통적인 경제 지표에만 매몰되다 보면 국민들의 정신적 어려움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합니다. 동국대 사회복지상담학과 최상미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위기 이후 우울감을 느끼는 청년들이 증가한 만큼 청년들을 위한 중형 정신건강 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인권과 관련된 논의 또한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성소수자, 노약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정씨는 한국에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인 태도가 존재한다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등에서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추세입니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정부는 공적 마스크 배분에서 이주민을 우선 배제하는 등 이주민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를 중재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마저도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외국인 차별은 정당하다고 결정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죠. 이에 서 교수는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다양한 민족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수용적 태도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선진국의 기준에 대한 인식 변화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논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2015192개의 UN 회원국은 빈곤, 기아, 퇴치, 불평등 감소, 기후변화 대응, 육상, 해상오염 저감, 경제발전을 포함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530일에 열린 P4G 정상회의** 연설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샤를 미셸 상임의장은 기후위기는 거대한 집단지성을 요구하고 선진국은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죠. 기후 위기 등의 전 지구적 문제를 간과한 채 자국의 경제성장만을 도모하는 국가를 선진국이라 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단순히 GDP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을 선진국 판단 기준의 고려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선진국의 자격은 이제 비단 높은 경제 수준에 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학생 정모(22)씨는 과거 급격한 경제성장을 위해 경시되던 문제들이 지금에서야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서 교수는 국제사회가 변혁기에 있다, 지금은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후변화를 함께 논의하며 기존의 법이 인권을 충분히 보장하는지 고민해나가는 시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았지만, 자국민이 선진국이라 느끼지 못하는 반쪽짜리 선진국을 과연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요. 화려한 경제 지표들에 가려진 이면은 없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니계수: 소득 분포의 불평등도를 측정하기 위한 계수.

**P4G 정상회의: P4G(녹색성장과 글로벌목표 2030을 위한 연대)의 회원국이 2년마다 번갈아 여는 정상회의.

 

 

글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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