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독립서적, 『안녕, 기면증』

 

유난히 남들보다 잠을 많이, 자주 자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그렇게 잤는데도 피곤한가요? 버티세요라고 쏘아붙인다. 그러나 이들에게 졸음은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곤하지 않음에도 시도 때도 없이 잠드는, 사회적 편견에 저항할 수조차 없는 이들은 누굴까. 바로 기면증 환자들이다. 누구나 잠을 자기에 사람들은 기면증을 다른 병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기면증 환자인 예주 작가는 병에 대한 오해는 증상 자체만큼이나 환자를 괴롭힌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안녕, 기면증을 쓴 이유다.

 

기면증 환자는 자신의 증상이 병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여러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세상은 잠을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잠조차 억제하지 못한다는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대학 입시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고3 시기에는 더욱 심해진다. 당시 작가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온라인 대신 현장 강의를 선택했지만, 강의실에 가서도 졸기만 했다. 그는 잠자는 시간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이 내 편이 되느냐는 쓴소리 영상을 보고 죄책감을 느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검사를 받기로 마음먹어도 현실적인 벽 앞에서 또다시 물러나게 된다. 기면증을 진단하는 수면다원검사 비용은 백만 원대. 자신이 정말 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 큰돈을 들여 검사를 받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비싼 가격에 겁먹은 환자는 자신의 증상이 의지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합리화하기에 그친다.

확진 판정 이후에도 사람들의 오해는 환자에게 상처를 준다. 기면증은 뇌에서 각성을 유도하는 하이포크레틴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부족해 나타나는 병이다. 작가는 모다피닐이라는 약을 먹는다. 모다피닐은 병을 낫게 하는 약은 아니다. 단지 하루를 정상인처럼 보내기 위한 각성제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기면증을 앓아본 적조차 없는 주변인들은 그저 약을 먹고 얼른 낫길 바란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모든 약으로 병이 완치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상인처럼 살기 위한 최소한의 일시적인 효과만을 내는 약도 있다.

기면증을 마음대로 속단하는 세상에서 작가는 환우들을 만날 때 편안하고, 유대감을 느낀다. 수면다원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날, 작가는 환우들이 쓴 수기를 읽으며 그들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어떤 환우의 수기에는 버티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작가의 경험을 왜곡하고 부정한 주변인들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는 확진 판정 이후 환우회 카페를 통해 직접 환우들을 만난다. 그들은 기면증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기에 작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말이 통한다고 느낀다. 어떤 증상을 겪는지, 사람들한테 어떻게 상처를 받았는지 서로 알고 있다.

 

기면증 환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는가. 타인의 얄팍한 판단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오단은 개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특히 당신이 청년 세대에 속한다면, 청년 취업난을 해석하는 세상의 시선이 당신의 그것과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마치 기면증을 바라보는 작가와 주변인들의 시선이 다르듯 말이다.

취업난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대부분의 청년이 취업난을 겪어왔으며, 으레 노력한 사람은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년 세대가 직면한 취업난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양상이 달라졌다. 오늘날의 취업난은 성장이 멈춘 시대와 맥락을 같이 한다. 2010년대에 2%대를 기록하던 경제성장률은 지난 2020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성장이 멈춰버린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취업난을 해결할 수 없다. 개인의 노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청년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는 기면증 환자들이 사람들의 편견을 마주하고 느끼는 무기력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취업난을 해결하고자 일자리 창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일자리의 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청년의 취업난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괜찮은일자리를 만들어야 상황이 개선될 것이다. 현재의 정책은 모다피닐과 같아서 일시적으로 취업난이 해소된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표면적인 정책만으로는 취업난을 완치할 수 없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질병에 대한 은유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 기면증인가 봐혹은 기면증 수준이네와 같은 말은 환자를 푹 찌른다. 과연 우리는 우리와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느낀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쉽게 뱉어진 말이 사람을 해칠 수 있으니 말이다.

 

글 이승연 기자
maple0810@yonsei.ac.kr

<자료사진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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