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를 만나다

최근 방탄소년단(아래 BTS)의 노래 Permission to Dance에서 즐겁다’, ‘춤추다, ’평화라는 뜻의 국제 수어 안무가 등장했다. 농인들도 장벽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이렇게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지우기 위한 시도는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중 농인들의 언어를 하나의 작품으로 재해석한 예술가가 있다. 손짓으로 예술을 전달하는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를 만나 경계 없는 예술의 의미를 짚어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수화 아티스트가 된 계기를 듣고 싶다.

A. 수화 언어를 기반으로 그림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다.

수화 아티스트가 된 계기는 복합적이다. 우선 갑작스럽게 장애를 안게 된 가족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가 갑자기 한쪽 청력을 잃으셨고, 외삼촌은 화재 사고로 팔 한쪽을 잃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본받고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큰 손을 콤플렉스로 여겨 왔다. 수화 아티스트의 꿈은 가족의 장애와 큰 손 콤플렉스의 교집합에서 비롯됐다. 손의 언어로 감정에 색을 넣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20125월경에 영수증으로 드로잉 연습을 시작했고, 6개월이 지난 후 색이 들어간 그림에 도전하며 아티스트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갔다.

 

Q. 영수증으로 그림 연습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A.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에서 그림을 시작하면 겁이 난다. 텅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연하다. 하지만 영수증은 이미 활자가 인쇄돼 있어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또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이기에 실수에 대한 부담감도 없다.

 

Q. ‘수어수화라는 두 단어가 모두 통용되고 있다. 두 단어의 차이는 무엇인가.

A. ‘수화 언어를 줄이면 수어. 간혹 혼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두 단어 모두 옳은 표현이다. 다만 지난 2016년에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서는 수어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다. 농인들의 제1 언어도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가끔 수화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틀렸다며 수어 아티스트라고 정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나의 수화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손 수(), 그림 화()를 써서 손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는 의미와 더불어 손 수(), 말할 화()를 써서 퍼포먼스로 수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다.

 

 

Q. 수어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다. 주로 어떤 단어를 시각화하는가.

A. 처음엔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그렸다. 가족을 계기로 수화 아티스트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머니와 외삼촌이 겪은 장애, 삼촌이 속한 다문화가정, 내가 경험한 한부모 가정 등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풀어내고자 한다. 수어를 공부할 때 공존’, ‘평화’, ‘평등’, ‘자유와 같이 사회 문제와 연관된 단어들에 집중하기도 했다.

 

Q. 그림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A. 스토리텔링을 반드시 거친다. 손의 시선이 단어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단계다. 스토리텔링에 따라 관객들의 감상이 달라진다. 스토리가 탄탄할수록 작품을 구성하는 선이 견고해지고 색채도 빛난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을 구상하는 기간은 최대 3주로 긴 편이다. 스토리텔링 단계 후 작품의 의미에 따라 캔버스에 직접 그리거나 디지털로 작업한다.

 

Q. 수어 퍼포먼스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가.

A. 수어 퍼포먼스도 그림과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링 과정이 중요하다. 가사가 없는 곡의 경우 멜로디에 맞춰 글을 쓰며 곡의 성격을 분석한다. 그 글을 수어로 바꾼 뒤 퍼포먼스를 구성한다. 가사가 있는 곡은 작사가가 어떤 감정을 담아 이 곡을 썼는지 분석한다. 또한 음원보다는 라이브 영상을 많이 들어본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의 감정과 표정 등을 참고한다.

 

Q. 수어 퍼포먼스와 일반 퍼포먼스의 주요한 차이는 무엇인가.

A. 단연코 언어다. 일반 퍼포먼스는 몸의 언어만을 보여준다. 반면 수어 퍼포먼스는 몸의 언어와 손의 언어를 함께 보여주는 종합 예술이다. 전체적인 내용 모두 수어를 기반으로 두기에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동작과 시선 처리를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Q. 래퍼 비와이, 대기업 SK와 함께하는 등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은 무엇인가.

A. 삼성전자와의 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기업과의 협업 광고에서 단순한 춤이 아닌 수어를 선보이게 됐다. 협업에 참여한 4명의 댄서를 대표해 수어 퍼포먼스를 넣은 것이 뜻깊었다. 수화 언어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고 다른 예술과의 협업도 가능하다는 점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경험이다.

 

Q. 청인으로서 농인의 언어를 활용한 예술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A. 농식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청인이 농인의 언어를 사용해 예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도 많았다. 이에 농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농인 친구에게 의견을 묻고 피드백을 받는다. 퍼포먼스를 청인의 시각에서만 구성하진 않았는지 등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더욱 많은 농인들이 퍼포먼스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자 한다.

 

Q. 수어가 하나의 언어이자 예술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수어의 시각적인 부분이 예술과 많이 접목돼야 한다. 수어는 시각언어인 만큼 사람들의 표정과 멜로디를 한 번에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BTS의 신곡 Permission To Dance의 수어 안무가 그 예다. 이 안무는 수어를 보는음악으로도 즐길 수 있다고 대중들에게 각인한 것 같다. 앞으로도 농인과 청인 모두 접할 수 있는 시각 매체를 통한 미디어아트 협업이 자주 이뤄지길 바란다.

 

지후트리는 농인과 청인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수어가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은 지 5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수어와 농인에 대한 관심은 저조하다. 지후트리가 만들어내는 경계 없는 예술이 우리 모두에게 와닿기를 기대한다.

 

*농식 수어: 한국의 농문화 속에서 시각·동작 체계를 바탕으로 생겨난 고유한 형식의 언어

 

글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홍지혜 기자
gh4784@yonsei.ac.kr

<사진제공 지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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