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의 상상력』 저자 안희제씨를 만나다

몸이 좋은지 안 좋은지 알 방법이 없죠지난 2014년 크론병을 진단받은 안희제(27)씨는 자신의 일상이 굉장히 성가시고 불안한 상태라 말했다. “크론병은 멀쩡한 면역 세포가 몸을 공격해 입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 기관에 염증이 계속해서 생기는 병이에요안씨는 아픈데 그나마 건강한관해기의 크론병 환자다.

지난 828일 우리신문사 편집실에서 만난 안씨는 마스크 너머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는 책을 인용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했다. 불확실한 증상은 안씨의 감각을 거쳐 질병 서사로 나아갔다. 건강과 질병 사이,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있는 안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건강 중심 사회에서 질병과 장애를 소재로 책을 쓰는 안희제 작가. 크론병을 진단받은 그는 사회 여러 방면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한 질병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 중심 사회에서 질병과 장애를 소재로 책을 쓰는 안희제 작가. 크론병을 진단받은 그는 사회 여러 방면에서 모두를 위한 질병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Q. 크론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A. . 항문 근처에 염증이 생긴 걸 보고 크론병을 처음 발견했어요. 당시 대장에는 작은 염증이 많았고 소장은 형태가 뒤틀려 있었어요. 지금은 염증이 많이 줄어 직접적인 통증은 없지만 소화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예요. 염증이 없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Q. 일상생활은 어떤가요.

A. 잠을 제대로 못 자요. 소화 기능이 안 좋으니 자려고 누워도 속이 더부룩하고, 급히 화장실에 가야 할 땐 잠이 다 깨기도 해요. 저는 지금 아프지 않다고 느끼는데,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화장실에 가서 휴지를 보면 피가 묻어 있어요. 술을 마셨는데 다음 날 말짱할 때도 있지만, 죽을 먹었는데 피가 나올 때도 있어요. 이렇게 예측이 안 되는 날들이 많으니 어디에 무슨 문제가 있나늘 신경 쓰이고 불안하죠.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일도 할 수 있지만 굉장히 성가시고 불안한 거죠.

 

Q. 의료적인 진단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네요.

A. 크론병은 사실상 일상 전반에 영향을 주는데, 의료적으로 크론병에 접근하는 방식은 되게 단순해요. ‘면역억제제를 복용해 증상을 완화한다’, 이게 전부거든요. 만성질환은 치료해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치료가 안 됩니다. 일례로 외국의 한 만성질환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밈(meme)이 있어요. 의사가 당신의 고통을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환자가 파이(π)’라 대답해요. 통증은 약하지만 끝나지 않는 상태. 저도 딱 파이만큼 아픈 상태라 보시면 됩니다(웃음).

 

Q. 법적으로 장애 등록을 받지 못하셨는데, 장애를 겪은 적은 없나요.

A.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 예정된 일을 하지 못할 때요. 교실 앞에 도착했는데 몸이 힘들어 수업을 들을 수 없는 날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휴게실에 가서 눕고, 나중에 교수님께 구구절절 메일을 보내 양해를 구해야 해요. 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특수교육대상자가 장애인에 한정돼 저 같은 만성질환자는 매번 제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 거죠. 학교가 만성질환을 가진 학생들의 질병을 등록해 따로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도 교수님으로부터 아예 답장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어요.

 

Q. 운이 좋다는 건.

A. 그때 빼고는 모두 답장을 받았거든요(웃음). 굉장히 운이 좋은 거죠. 저는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출결에서 전혀 고려를 받지 못해요. 실제로 출결 에프를 받은 경우도 있었고요.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꽤 많을 거예요. 만성질환의 큰 특징 중 하나가 겉보기에 질환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데, 이는 질환을 숨길 수 있는 이유도 되거든요.

 

Q. 스스로 관해기에 있는 사람이라 칭하셨어요. 생소한 용어입니다.

A. 관해기는 단순한 의미인데 말이 어렵죠. 그냥 증상이 완화된 상태예요. 저는 염증은 계속 있지만 두통, 어지럼증, 관절통 같은 통증은 없거든요. 저는 관해기에 있으니 글을 읽고 쓸 수 있고, 밥도 챙겨 먹을 수 있어요. 모든 아픈 사람이 저처럼 글을 쓰거나 아픔을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인 거지, 아픈 사람이 당연히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항상 관해기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어요.

 

Q. 관해기가 언제 올지 예측할 수 있나요.

A. 약물과 식이요법으로 관해기를 유도해요. 저는 1~2년 안에 빠르게 관해기 유도에 성공한 편이에요. 의료적으로 유도하니 대략적인 예측은 가능해요. 물론 언제 관해기에서 벗어날지는 알 수 없죠. 저는 매일 면역억제제를 한 알씩 먹다가, 지금은 세 알까지 늘려 관해기를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꾸준히 약을 먹어 관해기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죠.

 

아픈 사람아픈 이야기
건강 중심 사회를 뒤집다

 

 

안씨는 장애인 언론지 비마이너에서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이라는 코너의 칼럼을 연재 중이다. 주로 일상과 사회를 넘나들며 아픈 대학생의 경험을 풀어냈다.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이라는 두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안씨는 질병 서사를 통해 감정을 배설하는 대신 감각을 정리해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Q. 비마이너칼럼과 난치의 상상력을 통해 특별히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나요.

A. 아픈 사람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최근에서야 질병 서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원래는 학자나 의료 전문가들이 환자와 거리를 둔 채 그들의 경험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책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 책을 읽을 때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다른 아픈 사람의 글을 읽고 뭔가를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거부당한 몸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은 게 큰 기폭제가 됐어요. 저에게 말을 건넨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픈 경험과 감각을 하나하나 글로 남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그렇게 제가 쓴 글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어요. 칼럼을 재구성해 난치의 상상력을 발간한 것도 같은 이유예요.

 

Q. 지난 5월에는 식물의 시간이라는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A. . ‘갑자기 왜 그런 책을 냈냐’ ‘뜬금없다는 반응을 접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저에게 식물은 굉장히 중요한 존재거든요. 아픈 사람은 자기 돌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몸 상태에 따라 굉장히 제한적이에요. 지난 2019학년도 2학기에 굉장히 아픈 시기가 있었어요. 일주일 정도 학교에 못 나갔거든요. 원예 치료라는 게 있어서 그때 처음으로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어요.

 

Q. 심리 치료 같은 건가요.

A. 그렇죠. 식물을 직접 기르고 다듬으면서 심리 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느꼈어요. 식물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진 않지만 이파리의 색, 가지의 형태, 흙이 마르거나 굳은 정도 등을 통해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들어 식물을 기르는 플랜테리어, 홈가드닝 열풍이 불잖아요. 저는 식물을 기르는 게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반려의 존재를 집에 들이는 책임의 문제라 생각해요. 식물의 시간에서는 대놓고 질병과 장애를 말하지는 않아요. 대신 식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질병과 장애를 은근하게 제시해보고 싶었어요. 겉보기엔 식물을 기르는 에세이처럼 생겼는데, 막상 읽어보면 다른 이야기를 하는 함정 카드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반려 식물과 반려인의 관계를 통해 함께하는 존재들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는 관계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Q. 질병 역시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담론입니다. ‘아픈 이야기를 글로 쓰는 데 용기가 필요하진 않으셨나요.

A.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이신 조한진희 선생님이 계신 덕에 저는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웃음). 다만 질병 담론은 특정한 사안에 관한 생각 일부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장애인권처럼 생각의 전제를 통째로 바꾸는 과정이에요. 사회의 전제를 건강에 두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서울대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Q. 현실성이 없다는 건가요.

A. 그렇죠. 지난 1951년 탤컷 파슨스가 제안한 환자 역할(sick role)’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셈이죠. 이는 아프면 집에 가서 쉬고, 나으면 다시 나와 일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에요. 사람들은 여전히 일에서 면제된 아픈 상태가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 사고방식을 유지할 때 사회로 돌아올 수 없는 아픈 사람은 평생 특권층이 돼버리는 거죠. ‘지금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불가능하다이런 이야기가 오갈 때 여전히 소외되는 감각이 있는 거죠.

 

Q. ‘청년으로서는 어떤 제약이 있었나요.

A. 일상에서는 관계에서의 단절과 소외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아픈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에요. 약속해놓고도 아파서 나가지 못하는 날이 있는데, 그때 친구들은 저를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연락을 안 해요. ‘만나자고 하면 부담스러워하겠지’ ‘아픈데 연락하지 말아야겠다이런 식으로 만나자는 말 자체를 꺼내지 않으니 관계가 멀어지는 거죠. 사실 그 친구들의 잘못은 없어요.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거죠.

 

Q. 대학에서 겪은 불편은 없었나요.

A. 출결 문제로 매번 시혜와 동정의 문턱 근처에서 교수님께 메일을 써요(웃음). 안 아픈 척을 하면 수업에 필요한 걸 받지 못해요. 아프면 적극적으로 티를 냈죠. 저는 학습권을 제약받았다는 사실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처음 깨달았어요. 이전까지는 아프면 수업에 못 가니 메일을 쓰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아프면 방에 누워서 화면을 끄고 수업을 들어도 되거든요. 아픈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돼서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생겼어요. 코로나19가 기저질환자로서는 큰 위기였는데, 아픈 대학생으로서는 상당한 전환의 계기였죠.

 

Q. 만성질환자의 학습권을 보장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요.

A. ‘질병 등록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기에는 등록할 수 없거나 등록이 힘든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행정적의료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등록제가 필요해요. 의료보험에 크론병이 등록돼 있어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만성질환으로 등록된다면 매번 메일을 보내 몸 상태를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가능해진 다양한 방식의 수업과 평가를 코로나19가 끝난 이후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해요. 이것만으로도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픈 학생들이 많은 변화를 경험할 거라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질병 휴학은 아픈 사람들에게 그렇게 좋은 제도가 아닌 거죠.

 

Q. 어떤 점에서죠.

A. 물론 쉬면 좋죠. 그런데 질병 휴학은 쉬고 돌아와서 건강하게 수업을 들으라는 거잖아요. 휴학하는 동안 나아서 오라는 거죠. 저는 휴학을 4, 제 친구는 6번을 꽉 채웠어요. 그래도 안 나아요. 학기를 다니면 다시 증상이 악화해요. 사실상 학교에 다닐 수 없는 거죠. 아픈 채로도 학교에 다닐 수 있어야 해요. 아파서 언제 수업을 빠질지 모르는 학생을 행정적으로 포괄하는 게 필요해요.

 

Q. 아픈 사람의 학습권 말고도 중요한 권리가 있을까요.

A. 학습권만큼 아픈 사람의 노동권도 중요해요.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노동이 필수적이잖아요. 학습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갖춰져도 그 이외의 다른 제도들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아픈 사람의 자유가 학생에게만 주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례로 시각장애인이 안마업을 독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오히려 이들의 삶을 안마사에만 머무르게 한다는 비판이 있어요. 이를 아픈 사람의 권리에 대입해보면 학습권만이 아니라 다양한 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거죠. 대학을 다니지 않는 아픈 사람도 많거든요. 학습권은 대학 안에서는 중요하지만 전체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누구나 아플 수 있는 위험사회
질병권은 현재를 위한 권리

 

안씨의 책에는 질병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책을 발간할 당시에는 그 단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든요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따르면 질병권은 아픈 몸의 시선에서 건강권을 재해석한 단어다. 안씨는 질병권은 건강 중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억누르고 있는지, 질병이 왜 자기 관리의 실패로 규정되는지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건강권과 질병권은 상호보완적인 개념이자, 질병권이 건강권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라 강조했다.

 

Q. 질병권이 왜 중요한가요.

A. 질병권은 아픈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권리 중 하나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기본권이라 생각해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에 따르면 위험은 온 사방에 퍼져 있고, 우리는 모두 그 위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요. 유력 정치인과 부자들이 코로나19에 확진되거나 사망하는 경우를 보면 계급에 따른 격차가 있더라도 우리가 모두 위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크론병처럼 원인을 모르는 자가면역질환도 모두 현대에 들어와 밝혀지거나 새로 생겨난 질병이에요. 위험사회에서는 아픈 사람이 늘어나는 게 기본값인 거죠. 그런 맥락에서 아프다는 건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조건이에요. 저는 질병권이 기존의 권리에 아픈 사람을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애초에 건강한 사람을 전제하는 사회의 인식 자체를 깨는 보고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언제든 아플 수 있으니까요.

 

Q. 질병권은 건강권과 대비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A. 질병이 건강과 대비되는 것처럼, 질병권과 건강권도 대비된다고 많이들 생각해요. 저는 건강권이 미래를 향한 권리라 생각해요. 건강에 도달하고자 일하고, 운동하고, 식이조절을 하고, 영양제를 먹고. 이건 지금 나의 몸 상태가 아니라 도달하고 싶은 미래의 몸 상태를 향한 거죠. 반면 질병권은 현재를 위한 권리라 생각해요. 의료 서비스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강권이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건 맞아요. 그런데 이것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노동, 학습, 주거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 바로 질병권이에요. 현상의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아픈 사람들이 동등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개념이죠.

 

Q. 건강권에서 전제하는 미래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A. 달성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설령 달성 가능한 목표라 해도 한 번 이를 달성하면 계속해서 건강의 기준이 높아질 거예요. 그렇기에 영영 닿을 수 없는 미래라 생각해요.

 

Q. ‘건강자체를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A. 저는 제가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염증 수치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면역력이 정상 기준 미만의 일정 구간에 머무르고,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영위할 수 있는 상태. 저한텐 이런 게 다 정상이거든요. 사회적인 이상이 아닌 통상적인 상태를 정상이라 한다면, ‘건강을 개개인이 자신의 몸에 맞게 변형할 수 있는 개념으로 남겨둬도 괜찮지 않을까요? 각자가 자신의 일상을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영위할 수 있는 상태가 곧 건강인 거죠.

 

Q. 질병권이 장애인권과 함께 다뤄질 수 있나요.

A. 질병권과 장애인권의 공통분모는 편의 지원에 있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애인과 아픈 사람이 동시에 얻을 수 있었던 편의가 바로 비대면 수업이에요. 강의실에 가려고 몇 시간 동안 대기해 장애인 콜택시를 잡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씻고 휠체어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아픈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비대면 수업이라는 편의 지원을 통해 다른 영역에 있는 질병권과 장애인권은 서로 연결될 수 있어요.

 

Q. 둘을 구분해서 볼 필요도 있을 텐데요.

A. 맥락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해요. 의료적인 맥락이라면 둘을 구분해야 하겠죠. 장애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만성질환자는 상태 유지를 위해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해요. 의료 정책에서 장애와 만성질환을 구분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겠죠. 반면 차별에 대응할 때는 질병과 장애를 구분하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들이 장애 인정을 요구하는 건 차별이 발생했을 때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훨씬 강하게 차별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사적인 관계에서 사람을 대할 때도 둘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지체 장애인 중에도 목발을 쓰는 사람과 휠체어 스쿠터 타는 사람이 다르고, 아픈 사람 중에도 HIV 감염인과 크론병 환자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장애와 질병이라는 범주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Q. 질병과 장애, 그 경계에서 앞으로 어떤 사회를 상상하시나요.

A. 편견이나 문화적인 낙인이 사라진 세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긴 쉽지 않은데, 당장 상상할 수 있는 건 개인적인 관계의 측면이에요. 사람들이 나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서로 멀어지지 않는 사회. 아픈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회. 슬프고 속상할 순 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어떤 게 힘들어?’ ‘어떤 걸 같이 해볼 수 있을까?’ ‘집에 놀러 갈 때 뭐 좀 사 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면 좋을 것 같아요.

 

Q. ‘아픈 이야기를 계속하실 건가요.

A. 몸의 경험을 말하는 건 누구에게나 이야깃거리가 생긴다는 말과 같아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말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이때 질병과 장애는 개개인에 대한 상상력을 높일 수 있어요. ‘질병장애라는 특정한 단어에 앞서 개개인을 먼저 볼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거죠. 몸의 경험에 집중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몸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사진 김다영 기자
dy3835@yonsei.ac.kr
<자료사진 도서출판 오월의봄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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