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세상' 위해 인식 개선 필요해...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이 처음 발견된 80년대만 해도 AIDS는 불치병이라고 인식됐다. 의료기술이 발전하며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 됐지만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공포는 4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감염인들은 병보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차별이 더욱 고통스럽다고 호소한다.

 

HIV/AIDS
무지가 낳은 공포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는 인체의 면역 기능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HIV 감염 시 초기에는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증상이 사라진 다음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AIDS 증세가 나타나기까지 보통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AIDS란 체내 방어 기능을 담당하는 후천적 면역체계가 파괴돼 면역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AIDS에 이르면 면역력이 약화돼 건강한 사람에게는 질병을 유발하지 못하는 병원체에 감염되기 쉽다. HIV 감염인이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AIDS로 이행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감염인들은 치료를 하면 건강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

감염인들은 번번이 사회적 편견에 부딪힌다. 지난 2019년 질병관리청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가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2019AIDS에 대한 지식·신념·태도 및 행태조사’(아래 행태조사)에 따르면 감염인과 함께 식사하지 않을 것이다는 문항에 그렇다는 응답이 54.4%,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14.5%로 나타났다. ‘나는 감염인과 같은 직장에 다닐 경우, 회사에서 그 감염인이 해고되길 원할 것이다’, ‘나는 같은 병원, 같은 층에 감염인이 입원해있다면 그 병동에 입원하지 않을 것이다에 각각 50.8%, 54.2%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HIV 감염을 우려한 나머지 감염인들과의 긴밀한 접촉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목욕, 대화, 식사 등 일상생활에서의 접촉만으로는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 질병관리청의 ‘2019HIV/AIDS 신고 현황’(아래 신고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신규 HIV 감염인 1222명 중 99.8%가 성 접촉으로 인해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과거 치료가 불가능했던 HIV는 장기간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거듭났다. 1987년 개발된 HIV 치료제, GSK의 지도부딘을 시작으로 HIV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요법*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감염인이 확진 판정을 받은 직후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HIV가 검출되지 않고, 전파 가능성도 낮아진다.

일각에서는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동성애 혐오와도 맞닿아있음을 지적한다. 행태조사에서 ‘AIDS’에 대한 주요 연상 단어로 동성애자’, ‘동성애과 관련된 단어가 31.6%, ‘죽음’, ‘기피대상’, ‘지옥등 공포와 관련된 단어가 32.4%에 달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HIV를 부정적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동성애와 연결 짓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 2019년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항문성교로 AIDS에 감염된다동성애가 이를 조장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박세준 상담지원국장은 일각에서는 동성애와 HIV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감염인을 낙인찍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고현황에 따르면 신규 감염 내국인 역학조사 결과 성 접촉에 의한 감염인 중 동성 성 접촉에 의한 감염이 53.8%, 이성 성 접촉에 의한 감염이 46.2%였다. 유엔 산하 조직 유엔에이즈계획은 동성애가 아닌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HIV 감염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병보다 아픈 혐오
확진보다 무서운 낙인

 

감염인들은 HIV로 인한 신체적 고통보다 감염 사실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고 호소한다. 지난 2020년 러브포원이 감염인 2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 HIV/AIDS에 대한 감염인 인식조사보고서’(아래 인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보다 주위에서 듣는 AIDS에 대한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그렇다고 답한 응답자가 94.2%에 달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감염인은 감염 자체보다 부정적인 사회 인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감염의 위험성이 없더라도 외부에 감염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사회로부터의 단절을 경험한다고 전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는 감염인조차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은 의료기관이다. 지난 4월 한 감염인이 손가락 절단 사고 후 겪은 의료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 차별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중 엄지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그는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20여 곳의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했으며, 1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의료법15조에 따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개설자는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염 변호사는 병원 측은 시설 설비 혹은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거부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수술용 특수장갑 미비를 이유로 감염인의 고관절 수술을, 2014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피가 튀는 것을 막을 가림막이 없다는 이유로 중이염 수술을 거절한 후 다른 병원으로 후송했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손문수 대표는 “HIV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인해 의료 차별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감염인이 거부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2019년 대구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이 감염인을 격리 수용하고 특이환자라고 호명하며 감염 사실을 공개적으로 노출했다. 이에 더해 감염인의 운동 시간을 다른 수용자들과 다르게 하거나, 같이 운동할 경우 땅에 줄을 그어 공간을 분리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러브포원에 따르면 감염인 A씨 역시 스케일링을 받고자 치과에 방문했지만 일정이 미뤄졌다. 이후 미뤄진 예약날짜에 방문한 A씨는 진료실이 아닌 창고에서 진료를 받았고, 치과 의자를 포함한 모든 물건이 비닐로 씌워져 있었다고 전했다. , , 눈물 등은 감염 경로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인에게 접근조차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이다.

차별이 일상인 감염인들은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인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우울 증상 유병률이 49.5%에 달했고, ‘지난 12개월 동안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52.4%였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인규 사업국장은 “20~30대 감염인들은 가족과의 단절, 취업 제한, 혐오 발언 등으로 비감염인에 비해 자살 시도율이 40배가량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박 상담지원국장은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낸 죄책감 때문에 이 정도 우울은 당연하다며 우울증을 인지하지 못하는 감염인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법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987년 제정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19조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며, 252항은 전파매개행위를 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염 변호사는 감염인을 예방과 처벌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인권의 주체,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부터 국제에이즈학회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검출되지 않으면 전파되지 않는다)’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적절한 치료를 거쳐 HIV가 혈액 1mL200 개체 수 미만의 미검출단계로 접어들면 전파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감염인의 전파 가능성이나 상대의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전파매개행위를 한 감염인이라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19조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질 수 있다. 손 대표는 유일한 감염 경로인 성 접촉을 처벌하는 셈이라며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되레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감염인들은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모으기조차 쉽지 않다. 염 변호사는 혐오와 차별 탓에 정체성을 드러내길 꺼리는 감염인들은 개정 운동을 벌이기 어렵다개정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20201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의결된 바 있으나, 처벌 조항에 대한 개정사항은 없었다.

 

HIV 감염인
차별의 장벽 딛고 일어서려면

 

이에 HIV를 장애로 인정하고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9년 인권위의 권고는 긍정적인 신호탄이었다. 인권위는 감염인의 입원을 거부한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를 신체적, 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규정한다.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인복지법보다 폭넓게 장애인을 규정하고 있어 차별을 경험하는 감염인들 역시 장애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HIV는 현행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열거된 15개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아 감염인은 장애인 등록이 불가하다. 등록 장애인이 아닌 감염인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자신의 장애성을 매번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인권위는 앞선 권고에서 모든 감염인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검토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상담지원국장은 면역억제제로 면역 기능이 저하된 신장 이식 환자에게도 장애 등급을 부여하고 있지만 HIV 감염인은 여전히 등록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고 전했다.

이제 HIV 감염인이 장애인으로 등록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등록 장애인으로 인정되면 명확하게 장애를 입증할 수 있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도 HIV 감염을 장애로 인정하는 추세다. 김 사무국장은 사회에서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을 장애의 영역에 포함해 장벽을 없애도록 돕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라며 “HIV 감염만을 이유로 차별의 지점에 놓인 감염인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동성애와 HIV에 대한 혐오가 만연할수록 감염인들의 치료 접근성이 낮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유엔에이즈계획은 동성애 차별, 의료 차별, 직장 내 차별 등 HIV 감염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을 해결하지 않고선 ‘2030AIDS 종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손 대표는 감염인들이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이 HIV 전파를 예방하는 방법이라며 감염인 인권을 보장할수록 HIV를 더 확실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HIV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행태조사 내 AIDS 관련 지식수준 조사 결과 평균 정답률은 66.1%였으며, 전체 응답자의 79.6%자신의 AIDS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손 대표는 “HIV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고 전문 교육 기관도 없어 HIV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감염인들이 있다고 전했다.

 

HIV는 하루 한 알의 약으로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됐다. 이러한 의학적발전이 무색하게 감염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차별은 사회적장애로 남아있다. 질병장애의 경계에서 외면받는 감염인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HIV와 같은 레트로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HIV의 경우에는 세 가지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칵테일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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