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출근길 따라갔더니…“바뀐 거 없어요, 똑같아요”

새벽 4시 구로구 거리공원.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정류장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6411번 버스 두 대가 노란 전광판을 번쩍이며 이들 앞에 멈춰 섰다. 강남의 한 빌딩에서 미화원으로 일하는 서정숙(가명)씨는 노후를 준비한다고 했지만 나이가 들어 설 자리가 여의치 않다돈이 부족하다 보니 생활비에 보태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씨를 비롯한 서너 명은 문이 열리자마자 급히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4시 정각이 되자마자 속도를 올렸다. 기다릴 틈도 없이 앞차를 놓친 기자는 뒤따라오는 두 번째 버스에 몸을 실었다.

 

▶▶4시 정각, 첫 정류장인 구로에서 첫차를 타는 노동자들.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4시 정각, 첫 정류장인 구로에서 첫차를 타는 노동자들.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새벽을 달리는 6411번 버스
중고령 여성 청소노동자로 붐빈다

 

평소처럼 천천히 걸어왔더니 놓칠 뻔했어구로시장을 지나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다. 급히 버스에 올라 연신 죄송하다며 숨을 고르는 이도 보였다. 이희순(가명)씨는 버스가 평소보다 일찍 와 사람이 없는 편이라며 버스 한 대로 운행하던 때는 말도 못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지난 2019년 서울시는 새벽 만원 버스를 줄이고자 6411번 버스의 첫차를 2대로 늘렸지만, 이씨는 여전히 문이 안 닫힌다며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산한 버스에 오른 승객들은 뒤쪽부터 차례로 자리를 채워나갔다. 이들은 버스가 빈 정류장을 지나는 고요한 시간대를 틈타 잠깐씩 눈을 붙였다.

안쪽에 자리 없어. 있으면 가 봐요신풍역을 지나니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이미 타고 있던 승객들은 자연스레 뒤로 밀려들어 갔다. 서서 가는 이들은 가방과 짐을 한곳에 모아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버스 안은 점점 열기로 후끈해졌다. 대방역에서 버스를 탄 박명희(가명)씨는 오늘 버스가 10분 정도 일찍 와 환승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타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오래 타다 보니 누가 어디서 내리는지 다 안다곧 내리는 분들 쪽으로 가야 빈자리가 생겼을 때 빨리 앉을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새벽 510. 이씨가 맞춰놓은 알람이 울렸다. 잠에서 깬 이씨는 자리를 옮겨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선릉역에서 5명의 승객이 함께 내리자 버스 내부가 한산해졌다. 비슷한 시간대 운행하는 402, 4318번 버스의 불빛이 창밖으로 비쳤다. 지난 15년간 6411번 버스 운전기사로 일한 김용진(63)씨는 이 시간대에 버스를 타는 이들은 주로 건물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이라며 대부분 고속터미널과 선릉역 사이에서 하차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들 여유가 있든 없든 열심히 산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에 응한 승객들은 새벽 노동을 나서는 평균의 여성이다. 가톨릭대 사회학과 신희주 교수는 “6411번 버스와 같은 새벽 버스를 타시는 분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라며 이들은 매일같이 새벽 4시에 나란히 출발하는 첫차를 탄다고 설명했다. 6411 버스 첫 승객 분석을 통한 청소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연구(아래 연구)에서 신 교수는 “6411번 버스를 포함해 서울에서만 이러한 첫차 탑승객이 매일 최소 25천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6411번 버스는 새벽 첫차 탑승객들을 조사하는 데 있어 높은 대표성을 갖는다이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에 첫차를 타면서도 여전히 사회적 관심 밖에 있는 존재라 덧붙였다.

 

▶▶일찍 도착하기 위해 골목과 샛길을 가로질러 일터인 빌딩에 도착한 한 청소 노동자의 뒷모습. 저임금 단시간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회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일찍 도착하기 위해 골목과 샛길을 가로질러 일터인 빌딩에 도착한 한 청소 노동자의 뒷모습. 저임금 단시간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회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저임금 단시간 노동이어져
복지 사각지대의 청소노동자

 

선릉역 다음 정류장에 홀로 내린 박씨의 출근길을 따라갔다. 10년 차 청소노동자인 박씨가 일하는 곳은 고층 건물들이 모여 있는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이다. 박씨는 일터까지 5분 정도 걸어야 한다며 가파른 언덕과 샛길을 가로질렀다. 출근 시간을 묻자 “6시까지라고는 하는데 조금 일찍 도착해야 마음이 놓인다빠르면 7시에 오시는 분들도 있어 그전까지 청소를 끝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가 빌딩 앞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18. 그 뒤로도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건물 입구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강남 일대는 새벽 버스에서 내린 이들의 삶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신 교수는 강남 3(강남구서초구송파구)는 상업 활동이 많이 이뤄지는 만큼 청소업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서울시 환경미화원 신규 일자리의 25%가 강남 3구에 집중돼 있다. 주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강남의 직장까지 도착하는 데 평균 1.34시간, 일하는 데 평균 9.96시간을 사용한다. 신 교수는 새벽 청소노동자들은 강남 일대에 거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말했다.

청소업 일자리의 규모는 커졌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저임금 단시간 노동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 교수는 이들의 임금은 경력에 비례해 오르지 않고 최저임금 선에서 유지된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청소업 종사자의 규모는 지난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7년 전체 취업자 수의 3.5%를 차지했다. 이는 한국표준직업분류*의 소분류 150여 개 직업집단 중 6번째로 큰 규모다. 반면 전체 청소노동자의 73.8%는 계속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했고, 이들의 주당 근로시간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평균보다 7시간가량 짧았다. 신 교수는 청소업 신규 일자리의 대부분이 월 2~30만 원 남짓의 초단시간 일자리에 그친다이는 복리후생비용을 절감하고자 노동 시간을 15시간 미만으로 줄인 탓이라 부연했다.

중고령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집단이기도 하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이승윤 교수는 중고령 여성 청소노동자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정규직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이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논문 청소노동자는 왜 불안정한가-하청 여성 청소 노동과 한국 사회안전망의 허구성에서 기초연금 및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 연금제도에 의한 노후소득보장 정도가 매우 열악하다이들은 가능한 한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러 돈을 벌어야 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잦은 업체 변경으로 인해 청소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되더라도 사용자에게 산업재해 발생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이는 원-하청 고용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라 지적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청소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원인으로 하청-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고용 구조를 지목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상임활동가는 하청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연말이면 업체가 변경되다 보니 고용이 승계되지 않고 해고되는 경우가 많다이때 노동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쉽게 말하지 못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비정규직은 기업이 노동자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고용 형태라며 고용이 생계와 직결되는 대다수 노동자는 기업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노동 존중 사회를 위한 정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김 활동가는 잘못된 고용 구조를 바꾸고 노동자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려면 사회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도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기반하지 않고 기업들이 반발하자 노동 정책이 후퇴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사회연구소 강남규 연구위원은 노동 의제에 관한 법안 대부분이 본회의 통과에 실패하고 사라진다노동 약자의 삶을 제대로 개선하려는 법안들은 언제나 거대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이 저항을 넘어서기엔 노동 의제를 제대로 다루려는 정치 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6411번 버스는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자 서 있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붐볐다. 노동자들로 가득 채워진 버스는 그들의 일터가 있는 선릉역에서 다시 한산해졌다.
▶▶6411번 버스는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자 서 있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붐볐다. 노동자들로 가득 채워진 버스는 그들의 일터가 있는 선릉역에서 다시 한산해졌다.

 

현실에 닿지 못한 ‘6411 정신
노동 존중은 곧 정치의 복원

 

6411번 버스는 지난 2012년 고 노회찬 의원의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 연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 인간입니다노회찬재단 김형탁 사무총장은 “6411번 버스는 사회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약자들의 삶과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기획이라며 노 의원에게 정치는 노동 운동의 연장인 동시에 6411번 버스를 타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려는 실천의 영역이었다고 설명했다.

‘6411 정신은 이러한 투명 인간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강 연구위원은 노 의원이 6411번 버스를 얘기한 맥락을 보면 청소노동자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었다진보 정당이 바라봐야 하지만 지금껏 바라보지 않은 존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진보정의당의 과제라 주장한 것이라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6411 정신은 구체적인 노동자의 삶에 기초한다막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일하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라 주장했다.

지난 9년간 6411번 버스는 진보 정치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회자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린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신 교수는 새벽 버스를 타는 청소노동자들은 연설 이후에도 바뀐 게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이들이 투명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건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가 없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노 의원은 현역 진보 정치인으로서 노동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권익을 신장하지 못했음을 반성하자고 역설했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 약자의 주체성보다는 저녁 뉴스도 볼 수 없는 고단한 삶의 현실이 더 강조되고 있다이는 현역 정치인들이 그들의 고통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대리주의적 관점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노동 현장에 닿지 못하는 빈틈은 어떻게 메울 수 있나. 김 교수는 정치는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위한 마음을 지켜내고 키우는 실천이라 주장했다. 논문 노동 존중 사회와 정치-노회찬과 진보 정당의 실천을 중심으로에서 김 교수는 노동 존중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정치의 본래적 의미를 복원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개별 정치인 홀로가 아닌 당 차원에서 함께 6411번 버스를 타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을 향한 일회성 관심에 그치지 않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때 정치는 투명 노동자들이 새벽 버스를 탄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이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듣는 일이다. 노동자를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는 노동 약자가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기를 원하는지 스스로 제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이는 노 의원이 당시 미처 제시하지 못한 ‘6411 연설 2를 실행하는 것이라 말했다.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삶의 정치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때 ‘6411 정신은 제도권 정치 너머를 관통한다. 시민들이 정치를 압박해 노동 존중 사회로의 변화를 끌어낼 때 정치의 공간은 넓어질 수 있다. 강 연구위원은 노동 약자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하는 데는 이를 방관하거나 냉소하는 시민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노동자들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과제라면, 시민의 역할은 끊임없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치가 노동 의제에 관심을 두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라 말했다.

6411번 버스에서 시작한 노동 존중 정신은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시민사회에도 큰 숙제를 남겨준 셈이다. 강 연구위원은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 과로하지 않을 권리가 나와 상관없는 다른 노동자들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도 부당해고와 직장 내 괴롭힘, 산업재해와 과로는 종종 발생한다일하다 죽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지 못하는 사회는 지속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6411 정신은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적 공간에서 노동 존중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 교수는 “‘6411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단지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 착한 사람이 되자는 주장이 아니라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 게 바로 나 자신을 지키는 실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 역시 위험해진다협동과 연대로 유지되는 사회, ‘6411 노동자들의 노동이 진실로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뀐 거 없어요, 똑같아요서씨는 거리공원 정류장에 붙은 노회찬 포스터를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질문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정치의 언어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버스에서 내린 이들의 삶이 빌딩과 거리로 퍼져나갈 때 우리 사회는 어디를 바라봐야 하나. 강 연구위원은 현장으로 더 깊이, 비주류 노동자에 더 가까이다가가야 한다며 이 두 가지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 수 있는 ‘6411 정신’”이라 강조했다.

 

*한국표준직업분류: 통계조사를 목적으로 수입을 위해 개인이 하고 있는 일(경제활동)을 그 수행되는 일의 형태에 따라 체계적으로 유형화한 것. 직업 항목은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세분류, 세세분류로 나눠져 있다.

 

글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사진 김다영 기자
dy383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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