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의 원인과 양상을 파헤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그간 청년 세대를 규정해온 세대 담론이 재등장했다. 20대 남녀의 엇갈린 표심은 ‘이대남’과 ‘이대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대남·이대녀 담론 중심의 소모적인 논쟁은 젠더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과연 젠더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남녀 간 인식 격차
젠더 갈등으로 이어져

 

지난 3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에 따르면 청년 여성의 74.6%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반면 청년 남성의 51.7%는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응답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각자의 성별이 더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사람의 비율이 과반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 차는 성평등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이해로부터 기인한다. 20대 남성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또래 여성과 동등하게 경쟁하며 자랐다고 느낀다. 따라서 여성 우대 정책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져 남성에게 불평등한 사회를 만든다고 인식한다. 20대 남성 강모(21)씨는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인식이 굳어지며 젠더 갈등이 가속화됐다”며 “군대에서 2년의 시간을 뺏김에도 군가산점제 등이 폐지됐고 이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여성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어 불평등하다고 말한다. 20대 여성 정모(20)씨는 “여성들의 권리 주장이 점점 활발해지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며 “여성들은 남성만큼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이에 남성들이 불만을 느끼는 상황이 서로에 대한 혐오를 낳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이준한 교수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적대시하고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며 남녀 간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입장 차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수면 위로 드러났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확산과 맞물려 젠더 갈등을 가속화했다. 지난 2020년 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청년 관점의 ‘젠더 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는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모든 남초·여초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즘’이 핵심 화제로 부상했다’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청년들의 재생산권, 성폭력 문제 등 다양한 젠더 이슈에 대한 실천이 온라인의 경계를 넘어 확장했고 그에 대한 반격도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경험을 통해 누적된 인식 격차가 온라인 커뮤니티 상의 논쟁으로 번지며 젠더 갈등이 가속화됐다는 분석이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이진옥 대표는 “세대갈등, 계급 갈등이 젠더 갈등으로 비화했다”며 “온라인상의 논의가 과다 대표된 경향이 있으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만 바라볼 순 없다”고 진단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도 젠더 갈등이 가시화됐다. 지난 2019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발표한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서는 20대 여성을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 감성의 진보집단’으로 규정했다. 반면, 20대 남성은 ‘경제적 생존권과 실리주의를 우선시하며 정치적 유동성이 강한 실용주의 집단’이라고 진단했다. 4월 재보궐선거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20대 남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남녀평등복무제 도입을 주장했고 전용기 의원은 군가산점제 재도입을 논의하겠다며 젠더 갈등에 불을 붙였다. 이 교수는 “‘젠더’가 새로운 갈등의 축으로 등장했다”며 “젠더 갈등은 일회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될 것”이라 이야기했다.

 

젠더 갈등에 ‘재 뿌리는’ 정치권?

 

과거부터 이어진 성평등 정책은 여성에게 특정 몫을 배분하는 방식을 바탕으로 한다. 여성전용주차장, 생리공결제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으로는 젠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의 성평등 정책이 오히려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여성 우대 정책은 여성이 얼마나 무능한지 제도적으로 인지시켜주기에 여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여성이 특혜를 받는 집단이라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의 「경기도민의 여성전용주차장에 대한 인식과 향후 과제」에서도 ‘여성우선전용주차장이나 여성전용주차장이라는 명칭은 여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위치시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며 ‘명칭이 여성을 약자로 보는 온정주의적 성차별을 내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역대 정부에서 시행해온 여성 우대 정책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정치권에서 여성 우대를 표방한 정책을 남발하지만, 여성이 직면하는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숙의 없이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정책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일례로 지난 2013년 7월 서울시는 택배기사 사칭 범죄를 방지하고자 거주지 인근 지역에 무인택배함인 ‘여성 안심 택배함’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여성과 남성 모두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 택배를 받을 수 있다. 여성 우대 정책이 아님에도 정책 전면에 ‘여성’을 내세운 것이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해당 정책은 ‘시민 안전’ 정책이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표면적으로 여성을 강조하는 것은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다.

현 정부의 성평등 정책이 실질적 효과가 미미했으며 젠더 간 갈등만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통령 후보 시절 성평등 공약을 내세우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부의 성평등 정책에 실체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통령 직속 성평등 위원회의 설치는 무산됐으며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 중간값 격차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성평등 정책에 큰 진전이 없음에도 정부에 의해 내세워진 여성주의 정책은 20대 남성의 반발로 이어졌다. 이에 신 교수는 “대통령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선언을 시행할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면서도 “당선 이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중적 태도가 남성과 여성 모두 차별받는다는 인식으로 이어져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의미다.

재보궐선거 이후 정치권에 의해 젠더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먼저 정부, 여당의 여성주의 정책으로 인해 20대 남성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신 교수는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기조는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정부 차원에서 여성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분석은 정치적 목적으로 20대 남성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라 비판했다. 징병 관련해 모병제, 남녀평등복무제, 가산점 제도가 포퓰리즘의 양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교수는 “포퓰리즘은 실현 가능성이 적은데도 특정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책들이 남발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정책은 숙의가 필요하고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며 “지금은 이러한 과정 없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책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는 20대 남녀 간 대결 구도를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20대 소통을 기반으로
정치권이 새로운 방향 모색해야

 

젠더 갈등을 조장하지 않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를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20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합의의 단초를 마련하고 이를 성평등 정책 수립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타났다. 지난 2020년 발행된 경기연구원의 「젠더 갈등을 넘어 성평등한 사회」 보고서는 합의의 단초로 ‘공정성’을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대는 대부분 적극적 우대 조치를 비판하며 특정 성별을 우대하는 것보다 공정성에 입각한 성평등을 지향한다. 실제 2019년 한국리서치 설문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68%, 20대 여성의 43%가 여성할당제를 ‘역차별’이라 답했다. 보고서는 이 결과를 두고 ‘공정성에 입각한 성평등 정책이 젠더 갈등을 방지한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사례로 지난 4월 ‘2021년도 국가우수장학금(이공계) 업무처리기준’에 명시된 ‘총 선발 35% 수준의 여학생 선발 권고’가 논란이 됐다. 이모(22)씨는 “우수라는 단어가 들어간 만큼 성별과 무관하게 성적순으로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이공계에 재학 중인 조모(23)씨는 “장학금 관련해 혜택이 주어지면 이후 동등하게 평가받지 못할 것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임모(23)씨는 “여성 할당이라는 단어를 내세우기보단 남성과 여성의 진출이 동등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이 성평등 정책을 수립할 때 공정성을 고려해야 하며 이를 통해 차별을 근본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넘어 20대의 다양한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임씨는 “일상에서 젠더 갈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며 “취업, 부동산 등 눈앞에 맞닥뜨린 문제들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군 복무 중인 김모(23)씨 또한 “사회적 풍조를 보면 성 대결이 극에 달한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 이를 느낀 적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는 “군 복무에 상당한 박탈감을 느낀다”며 “군인 처우 개선을 위한 실행 가능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치권이 젠더 갈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청년의 삶과 인접한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대 내부의 소통 노력도 필요하다. 이 교수는 “20대 남성과 여성의 소통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서로 적대시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을 제안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20대 내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성평등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제시하든 특정 성별을 우대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20대 내에서 타협점을 만들고 정치권에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 또한 “남성과 여성 서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거시적 관점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대는 ‘이대남’과 ‘이대녀’로 분열됐고 갈등은 정치권을 통해 재생산됐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갈등에 정치권이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통합과 평등의 사회에 가까워지기 위해 젠더 갈등을 넘어서는 정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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