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의 청년들을 만나다

지난 4월 30일, 19개의 청년 단체들이 모인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가 정치권이 호출하는 세대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이들은 20대 젠더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인천대 페미니즘 모임 ‘젠장’의 안지완(26)씨, 노동자 권리 보장 단체 ‘노동‧정치·사람’의 한빛(가명)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자기소개와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안: ‘젠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지완이다. 지난 2020년 하반기부터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에서 활동 중이다. 2020년 의사 파업 이후 청년세대를 논할 때 공정성이 화두가 됐다.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는 언론에서 ‘공정성’을 모든 청년의 논제로 상정하는 것이 문제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청년들이 실제로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빛: ‘노동‧정치·사람’ 청년사업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한빛이다. 같은 세대에 속한 사람을 일반화하는 세대론의 모순적인 성격에 대해 고민해왔다. 가령 청년 문제를 다룰 때 공정한 경쟁이 중요시되지만, 청소년과 청년 트랜스젠더 집단은 경쟁의 출발선에 제대로 서기조차 어렵다. 또한 제도권에서 호명하는 청년들의 삶은 절대 균일하지 않다. 그렇기에 경쟁을 통해 자원을 얻는 것 자체가 공정한지 고민했고, 절차적 정당성에 매여있는 담론에서 벗어나 평등을 논하고자 했다. 이를 계기로 시국선언에 참여하게 됐다.

 

Q. 올해 서울연구원에서 진행한 인식조사 결과 20대 응답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사회갈등으로 ‘남녀 갈등’을 꼽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안: 젠더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확언하기 어렵지만 가장 즉각적으로 와닿는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페미니즘 운동이 현재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대중화됐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성별에 따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대중적인 인식이 확산됐다. 또한, 젠더 갈등이 수면 위로 오르며 그동안 당연시됐던 성별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지는 것이다.

한빛: 20대에서 젠더 갈등이 격화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남성들은 반페미니즘적 정서로 결집하고 여성들은 남성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단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성별에 따른 구분이 굳어지고 있다. 예컨대 4, 5년 전만 해도 성 소수자 모임에 나가면 여성 동성 커플과 남성 동성 커플, 트랜스젠더가 함께 대화를 나눴으나 최근에는 각자가 구분돼 별도로 소통한다. 지난 2020년에 있었던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 사건 역시 젠더 갈등이 심화되면서 트랜스젠더가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Q.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20대 남녀 투표 성향이 화제다.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20대 여성의 44%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선택했듯이 20대에서는 타 세대보다 성별에 따른 투표 양상 차이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안: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우리나라의 협소한 정치 지형 속에서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그렇기에 남성 중심 체제의 획일화를 지향하는 남성들은 보수 진영의 오 후보를 선택했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박 후보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성들은 최악보다 차악을 고르자는 맥락에서 박 후보에 44%의 표를 던졌다. 이 밖에도 15%의 여성들은 제3정당을 선택했다. 남성들의 표심이 거대 정당으로 결집하는 것에 비해 여성들은 현실 정치가 우리 삶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더 많이 공유하는 것 같다. 이렇게 표심이 성별을 기준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며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느꼈다.

한빛: 이번 선거를 판가름한 것은 정치 성향이 아닌 ‘성별’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남성은 보수화됐고 여성은 진보적이라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여성이 민주당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가 아니라 ‘여성이 민주당에 44%의 표밖에 던지지 않았다’고 해석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들 사이에서 여성의당 투표율이 높았던 이유는 여성의당이 진보 진영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보수 양당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Q. 온라인에서 다뤄지는 젠더 갈등 논의의 파급력이 크다. 20대 젠더 갈등에 온라인상의 논의가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한빛: 과거에는 젠더 갈등에 대해 특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폭력적인 이야기가 오갔다면 지금은 논의가 네트워크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러한 온라인상의 논의는 현실 공간으로 퍼진다. 디지털 공간에서 이처럼 폭력적인 담론이 오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다.

안: 깊이 공감한다. 지금 온라인 내에서 오가던 논의와 표현은 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아 현실에서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사람들이 디지털상의 표현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로 학습하는 장면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어떻게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오프라인에서 어떤 방향으로 담론을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온라인상의 논의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Q. 이대남, 이대녀 담론이 보여주듯 젠더 갈등은 언론에서 20대 청년을 조명하는 프레임으로 자주 등장한다.

한빛: 이대남, 이대녀를 상반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문제다. 이대남은 정당성을 확보한 신진세력으로, 이대녀는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스트 정당을 지지하는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묘사하는 보도들을 목격한다. 이는 이대남과 이대녀가 같은 크기의 목소리를 내도 사회가 이대남의 요구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이대녀의 요구는 시끄러운 투정 정도로 여기게 만든다. 이대녀를 지나치게 특수한 집단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안: 분석이라기보다는 소비에 가까운 논의다.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내실 있는 접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Q. 시국선언에서 “보수 양당이 청년의 사회적 요구를 회피하기 위해 세대론과 성별 갈등을 활용해왔다”는 발언이 있었다. 성별 이슈에 대해 정치권이 대응하는 방식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한빛: 성별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하는 것은 ‘분배’의 문제다. 직장 내 자원의 분배, 가정 내 역할에서의 분배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제도권에서 논의되는 군가산점제, 여성 주차장 같은 정책은 성별과 맞닿은 문제들을 피상적으로만 접근한 결과다. 또한, 정치권은 대학생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이대남’, ‘이대녀’를 규정하기에 이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배제되고 있다. 

안: 제도권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 접근한다. 예컨대 지난 2020년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자 해결책으로 전화 상담 서비스가 제시됐다. 그러나 개인이 겪는 고충을 해결하고자 사후적 대처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야 한다. 성별과 맞닿아 있는 고질적인 사회 문제들은 수면 위로 드러난 지 오래다. 임신중절, 주거, 생활 동반자, 돌봄과 가사노동 등의 문제해결에 주력해야 한다.

 

‘이대남’과 ‘이대녀’로 표상된 20대 젠더 갈등은 소모적인 공방전으로 변질해 실질적으로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을 가린다. 그리고 성별이라는 구분선이 명확해지는 가운데 누군가는 갈등 현장에서 소외된다. 세대론이라는 단일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젠더 갈등에 접근해야 한다.

 

글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사진제공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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