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기 앞의 생』과 인간의 유대

 

누구에게나 살아가며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타고난 기질,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예기치 않게 찾아온 병 등은 노력해도 바꿀 수 없기에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렇게 스스로 감내해야 할 몫으로 주어진 삶은 때로 우리에게 외로움을 안겨 준다. 로맹 가리(Romain Gary)의 원작 소설을 재구성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자기 앞의 생』의 모모와 로사의 삶도 그렇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의 삶에 서로를 들여놓으며 이전에 없던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인간과 인간의 유대가 이미 결정된 것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삶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모모와 로사 앞에 놓인 생

 

모모는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읜 세네갈 출신 14살 남자아이다. 로사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자 오랫동안 매춘부들의 아이들을 돌봐온 노인이다. 오갈 곳 없는 모모를 맡아 길러온 의사가 로사에게 모모를 부탁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의 첫 만남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반항적인 모모는 로사의 집에 묵는 것을 거부한다. 로사 역시 경제적, 체력적인 한계를 이유로 거절하다 마지못해 모모를 집에 들인다. 자신의 삶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서로는 짐이 될 뿐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바꾸고 싶어도 체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을 산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예컨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모모는 돈을 벌기 위해 마약상에서 일을 시작한다. 어느 날엔 로사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친구 이오시프의 어머니가 이오시프를 데리러 온 장면을 목격하고 슬픔에 빠진다. 이러한 장면은 모모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유복하지 않은 환경과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삶의 아픔을 드러낸다.

한편 로사에게는 유년 시절 겪었던 홀로코스트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녀는 마음이 불안해질 때면 아무도 없는 지하실로 남몰래 내려가는 습관이 있다. 로사의 내면이자 안식처의 표상인 이 지하실에는 그녀 자신 외에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노환으로 인해 건강이 쇠약해지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는 그녀의 삶의 단면이다.

 

유대가 쌓이며 생기는 변화

 

각자의 불안정한 생은 두 사람 사이에 벽을 만든다. 하루는 두 사람이 거리를 걷다 경찰이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경찰의 모습에서 과거의 기억을 상기한 탓에 마음이 복잡해진 로사는 모모를 방으로 올려보낸 뒤 지하실로 향한다. 그러나 모모는 몰래 그녀의 뒤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섰고, 로사는 소스라치게 놀라 모모를 쫓아내 버린다. 모모에게 자신의 상처와 내면을 드러내기를 거부한 것이다. 한편 모모 역시 자신의 내면을 로사에게 쉽사리 표현하지 않는다. 로사의 내면을 드러내는 소재로 지하실이 있다면 모모에게는 암사자가 있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암사자의 환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로사가 지하실에서 모모를 쫓아냈듯이 모모 또한 로사에게 암사자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그러나 로사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로사가 자주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모모는 애타게 의사를 찾기도 하고, 또래의 동네 할아버지에게 로사와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로사 역시 차츰 모모에게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네게 된다. 엄마와 함께 떠난 이오시프를 보고 속상하고 화가 난 모모를 달래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온 유년 시절의 추억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간절한 부탁을 모모에게 전한다. 입원 치료가 필요해지는 날이 오더라도 결코 병원에 자신을 두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영화의 말미에는 마약상 일을 그만두고 로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온 힘을 다해 그녀를 간호하는 모모가 그려진다.

 

‘함께’가 가진 힘

 

영화는 모모와 로사의 서사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 바꿀 수 없는 운명적인 부분, 그리고 그럼에도 변화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사람 간의 유대가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불행을 깨끗이 지워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 앞의 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두 사람은 결코 서로의 삶을 바라는 대로 바꿔놓을 수 없었다. 모모는 로사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니고, 로사 또한 모모가 그리워하는 어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모모의 대사는 운명을 수용하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난 행복에 목숨 걸지 않을 거다. 행복이 찾아오면 뭐, 좋겠지. 
근데 안 찾아오면 뭐 어때? 각자 생긴 대로 사는 거지.”

 

그러나 바꿀 수 없는 운명 속에서도 연대는 한 줄기 빛을 더해주고, 이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로 이어진다. 모모는 마음을 다해 로사를 간호하며 마침내 그녀에게 생애 최고의 선물을 주게 됐다. 로사 또한 모모에게 진심 어린 믿음을 보여줌으로써 아이가 바른길로 걸어가도록 이끌었다. 이처럼 『자기 앞의 생』이 보여주는 두 사람의 유대는 기적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함에도 “서로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 가진 힘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는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내 지난 2년을 떠올리게 했다. 2년 전,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며 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최소화하고 공부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생활을 택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되뇌며 달렸지만, 시험을 며칠 앞뒀을 때쯤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듬해에는 학교생활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두 해를 거치며 나는 마음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삶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깨달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 2020년 본지에서 연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사회적 교류 축소’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 경험한 우울감의 원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각자도생이 당연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모모와 로사의 이야기는 유대 없는 인간의 삶이 불가능한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우리는 지나온 과거를 바꿀 수 없고 앞으로도 뜻대로 되지 않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함께 있다면 종종 찾아오는 행복을 나눌 수 있고 슬플 때 어깨를 빌려줄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모와 로사가 전하는 위로가 닿기를 바란다.

 

글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자료사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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