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립서적, 『서로 다른 기념일』

 

가깝다고만 생각했던 사람과 ‘서로 다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를 구분하는 무수히 많은 경계선을 만든다. 그렇기에 매우 친밀한 사람과도 이따금 거리감을 느낀다. 『서로 다른 기념일』의 하루미치의 가족도 서로 다른 신체적 조건과 언어적 차이라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더 알아가기도, 더 멀어지기도 한다.

 

작가인 사이토 하루미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의 아내 마나미도 농인이다. 하루미치와 마나미는 농(聾)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들이 살아온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하루미치는 청인 가정에서 태어나 음성 언어인 일본어에 기초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마나미는 모든 가족이 농인인 집에서 태어나 수화 언어로 소통하며 자랐다. 서로 다른 언어 속에서 자라 왔기에 이들이 보는 세계도 완전히 다르다. 이처럼 같지만 서로 다른 이들에게는 청인인 딸 이쓰키가 있다. 세 가족 사이의 ‘경계선’은 가까워질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에게 ‘다름’은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도록 하는 하나의 동기가 된다.

하루미치는 청인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에 청인 중심의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가족 모두가 수어를 모어로 삼는 데프 패밀리(Deaf family)에서 자란 마나미의 사고방식과 차이를 느끼곤 했다. 이들의 경계선은 사소한 계기로 나타났다. 하루미치와 마나미는 자장가를 불러 이쓰키를 재운 후, 어린 시절 자장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미치에게 자장가란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였다. 그러나 마나미는 그의 어머니가 잠들기 전 지문자*로 히라가나를 한 글자씩 말해준 기억을 떠올렸다. 농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장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것이다. 하루마치에게 노래란 음성으로 부르고 귀로 듣는 것이었지만, 마나미에게는 손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읽어내고 상상하는 또 다른 표현의 수단이었다.

이들과 딸 이쓰키를 가르는 경계선도 사소하지만 분명하다. 하루미치와 이쓰키는 마트의 음악 소리에서 ‘서로 다름’을 느낀다. 이쓰키는 마트의 음악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하지만, 하루미치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미치는 이쓰키에게 수어로 그의 부모가 들을 수 없음을 알렸다. 이날 이쓰키는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와 자신의 경계선을 느끼게 된다. 뜻하지 않게 서로가 다름을 알게 된 그 날은 이들에게 ‘서로 다른 기념일’이 된다. 이후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게 된 기념일을 매년 맞이하게 된다.

같은 청각 장애인이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부모와 청인인 딸, 세 사람은 너무나도 달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달라서 즐겁다’고 말한다.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던 각자의 세계는 충분히 만날 수 있었다. 이해와 소통을 통해 그들의 평행선은 가까워졌다. 그들에게 신체적 조건과 언어라는 ‘다름’은 격차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경계선은 그들에게 성장의 원천이 된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에서 밝힌 수상 소감의 일부다. 영어권 영화 관계자들이 자막이 필요한 외국 영화를 기피하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전 세계가 문화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이에게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사소한 차이로도 경계선을 긋기도 한다. 언어의 차이를 드러내는 영화 자막뿐만 아니라 신체의 차이, 문화의 차이 등 수많은 차이 속에서 우리는 항상 ‘서로 다름의 경계선’을 만든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기념일』의 세 가족은 경계선을 넘었을 때 또 다른 경이로운 세계를 마주할 수 있음을 전한다. 경계선은 경계선일 뿐이다. 누군가 용기 내어 그 경계선을 넘었을 때 우리는 낯설다고만 여겼던 누군가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미치의 가족처럼 우리에게도 일상 속에서 스쳐 보낸 수많은 순간 중 서로의 차이를 느꼈던 ‘서로 다른 기념일’이 있었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평행선만을 그려왔을지도 모른다. 하루미치 가족은 서로 다른 기념일에 차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지만 우리는 차이를 깨닫고 타인과 멀어지기도 한다. 이전에는 서로의 차이를 느끼고 경계선을 그었다면, 이제는 그 경계선을 넘어보면 어떨까.

 

*지문자: 시각적 의사소통 수단의 하나로서, 문어의 자음과 모음의 철자 하나하나를 손과 손가락의 모양으로 나타내는 것

 

글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자료사진 사적인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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