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V 백신, 낮아지는 접근성 극복해야

“HPV 백신 꼭 맞아야 하나요?” ‘자궁경부암을 검색하면 자주 보이는 질문이다. 사비를 써가며 3회에 걸쳐 접종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HPV 백신 접종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 오래다. 국가는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HPV 백신 접종을 꾸준히 권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한 보장은 부족한 실정이다.

 

자궁경부암 백신
있어도 여전히

 

자궁경부암은 자궁의 입구인 자궁경부에 발생하는 암이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비정상적인 출혈, 간헐적인 하복부 통증, 배뇨통 등이 있다. 초기엔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다른 질병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자가 진단이 어렵다. 계명대 의학과 장태규 교수는 자궁경부암은 본인이 자각하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설명했다.

자궁경부암은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발생률과 사망률이 계속 감소추세에 있지만 세계암관측소(Global Cancer Observatory)에 따르면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 여성의 암 발생률과 사망률에서 모두 4위를 차지할 만큼 위험하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지난 2018년 전 세계 31만 명의 여성들이 자궁경부암으로 목숨을 잃었고, 57만 명이 새롭게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조병구 공보위원은 자궁경부암은 치명도가 높아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HPV)로 알려져 있다. 자궁경부암의 99% 이상에서 HPV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부인종양학회가 지난 2006부터 2011년까지 국내 HPV 감염률을 조사한 결과, 여성 중 감염률은 34.2%에 달했다. , 여성 10명 중 3명 이상이 HPV에 감염됐을 만큼 흔한 질병이라는 뜻이다. 감염됐을 경우 대개 자연 치유되지만, 16, 18형과 같은 고위험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자궁경부암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백신 접종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서바릭스 가다실 가다실9 총 세 종류의 백신이 공급되고 있다. 각각 2, 4, 9HPV 유형에 대한 항체를 가진다. 경희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정민형 교수는 “2, 4, 9가 모두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으며 항체 종류가 많은 4가와 9가의 경우 곤지름, 성기 사마귀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중 가다실9는 시중에 나온 백신 중 유일하게 HPV 6, 11, 16, 18, 31, 33, 45, 52, 58형까지 총 9개 유형의 HPV를 예방할 수 있다.

 

 

HPV 백신이 있는데,
왜 맞지를 못하니?

 

백신과 자궁경부 세포 검사의 발달로 매년 자궁경부암에 걸리는 환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국가암등록사업 연례 보고서 (2018년 암 등록통계)’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환자는 지난 1999년 여성 10만 명 당 9.7명에서 20185.3명으로 꾸준히 줄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 발생자 수가 지난 19994488명에서 20093839명으로 꾸준히 줄어든 것에 비해 2009년 이후로는 10년 넘게 신규환자 3500명 미만이라는 장벽을 깨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HPV 백신 관련 보도자료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면서 접종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HPV 백신은 12세 미만 여아에 한해서만 2회 무료 접종이 제공된다. 이에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청년들은 백신에 접근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민지(21)씨는 주변 친구들도 가격 때문에 접종을 꺼리는 모습을 많이 봤다접종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강유진(20)씨 역시 비싼 가격에 백신을 맞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대학생처럼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가다실과 가다실9를 보급하는 한국MSD가 가격을 인상하면서 청년 백신 접종률이 더 저조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국MSD는 지난 4월부터 공급가를 15% 인상하겠다고 공지했다. 실제로 병·의원 후기 앱인 모두닥에서 전국 산부인과 314곳을 조사한 결과 예방접종 가격은 3회 기준 평균 526130원이었으며 최대 796500원에 이르렀다. 기자가 인근 산부인과 15곳을 취재한 결과 가격 인상 이후 가다실9 평균 접종 비용은 369만 원에 달했다. 정 교수는 가다실9 가격이 높아지면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가격이 15% 인상돼 접종을 받지 못하는 인원이 분명히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이주(22)씨는 기존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해 매년 접종을 미뤄왔는데 가격이 인상됐다니 허탈하다고 전했다.

 

남녀 모두 안전하려면
백신 접종률 향상이 관건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비용 지원과 인식 개선이라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접종률이 저조한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HPV 백신을 국가가 앞장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가가 HPV 백신을 권장하려면, 그만큼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자궁경부암의 진단 및 치료는 급여 항목이지만, 백신은 비급여 항목이다. 지난 2019년 열린 우리나라 성인 예방접종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서울대학교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자궁경부암 치료는 급여인데 재정 절감에 더 큰 도움이 되는 백신이 비급여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HPV 백신에 대한 가격 부담이 큰 만큼 국가가 나서서 가격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해 HPV 백신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진 탓에 여성용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20대 남성 A씨는 자궁경부암 주사라는 이름 때문에 자궁이 없는 남자는 당연히 맞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HPV는 자궁경부암 외에도 항문암, 성기암, 두경부암 등을 일으키는 만큼 남성도 감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또 성접촉 및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이므로 남녀 한쪽만 백신을 접종한다 해서 감염 위험을 피할 수는 없다. 정 교수는 여자만 백신 접종하는 것은반쪽짜리 백신에 불과하다백신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집단면역을 달성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HPV 백신 무료 접종자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12세 여아뿐만 아니라 12세 남성도 무료 접종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역시 보도자료에서 “HPV는 성적 접촉을 통해 남녀 누구나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여아뿐만 아니라 남아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김병기 교수는 “HPV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원하는 113개국 중 40개국은 여아는 물론 남아까지 접종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자궁경부암 백신대신 ‘HPV 백신이라는 이름이 통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HPV 백신이 여성과 남성 모두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장 교수는 “HPV 백신은 여자만 맞는 것이라는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이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은 처음에는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명칭을 도입했으나 최근에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HPV 백신으로 부르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작용 등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백신 불신역시 해소될 필요가 있다. 이는 접종률을 낮추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질병관리본부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2003년생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8%부작용 우려를 이유로 들어 접종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와 달리 HPV 백신이 국가예방접종 지원 사업에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접종으로 인한 사망 등 중증 이상 반응은 전무하다. 정 교수는 “HPV 백신 접종 후 미열과 감기 증상은 있을 수 있다국내 HPV 백신 부작용 보고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 없는 우리나라를 위한 지름길이지만 여전히 그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백신 접종에 대한 지원과 인식 모두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우리 모두 HPV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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