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가정 청년’ 위한 홀로서기 지원책 필요성 제기돼

 

완전한 단절이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정 청년당사자 한윤진(정외·19)씨가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탈가정의 이유다. 탈가정 청년은 살아남기 위해가정을 떠난다. 누군가에겐 아늑하고 든든한 보호처인 가정이 이들에겐 한시도 머무르고 싶지 않은 지옥이다. 그러나 탈가정 이후의 삶은 퍽퍽하기만 하다. 이들은 제도적 지원을 받기는커녕 사회적으로 호명조차 되지 않고 있다.

 

탈가정 청년
그들이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탈가정 청년은 지난 2020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자립TF에서 처음 의제화한 개념으로 가정폭력, 가정불화, 성폭력, 아웃팅, 파산 등으로 인한 탈가정 경험이 있거나 이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청년 혹은 탈가정을 희망하는 청년을 말한다. 원가정에서 더는 살아갈 수 없기에 부모와의 완전한 단절을 실행하거나 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청년정책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탈가정 청년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를 진행한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은 탈가정 청년의 최소 정의는 가정폭력, 파산 등 다양한 이유로 원가족과 갑작스럽게 단절돼 긴급하게 자립해야 하는 상태에 있는 청년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원가정을 떠나 홀로 서야만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가족으로부터의 폭력과 구속 원가족과의 가치관 갈등 경제적 궁핍 혹은 착취가 탈가정의 주요한 이유였다. 김 연구원은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가정의 이유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라고 응답한 이들도 많았다라며 그러나 동시에 폭력’, ‘파산’, ‘갈등등의 사유를 함께 선택한 경우가 다수이므로 여기서 자유는 방종이 아닌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가까운 의미라고 말했다.

탈가정을 하게 된 청년들은 가족들과 주거 분리 경제적 단절 정서적 단절을 한다. 언뜻 독립과 비슷한 상태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원가정과의 단절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당사자로서 청년자립TF에서 탈가정 청년 의제화를 이끈 박주현씨는 탈가정은 준비되지 않은 채 외부요인에 의해 긴급하게 독립해야 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본인의 의지와 준비된 정도에서 독립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사회에 내던져진 청년
정서적 어려움에 몸부림

 

급작스레 사회로 내던져진 탈가정 청년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신음할 수밖에 없다. 빈손으로 마주한 현실은 어둡고, 막막하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가정 실행 후 이들은 경제적 문제 신체 및 정신 건강 악화 생애주기 경로로부터의 이탈 정책으로부터의 배제와 같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먼저 겪는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청년들은 일정한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원가정에서 받던 지원이 끊기면 생계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해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8.6%가 소득과 자산 부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한씨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알바를 못 구하고 있다생활비로 모아둔 돈도 없어 최소한의 비용만 가지고 산다고 말했다. 특히 목돈이 드는 주거비용 감당은 막막하기만 한 문제다. 박씨는 주변에도 쫓겨나듯이 나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잘 곳이 없어서 학생회관에서 자거나 친구 집을 떠돌아다니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서적 어려움은 이들에게 끝없는 무력감을 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가정 실행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40.9%가 정신적인 우울감, 불안 증세 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당사자들은 또래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사실과 원가정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정신적 상처가 정서적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박씨는 탈가정 청년은 공통적으로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겪는다남들은 동아리하고 스펙을 쌓을 때 생계유지를 위해 알바를 하며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수는 없는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소하지만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도 존재한다. 원가정으로부터 전수받아야 하는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태조사에서 A씨는 보험은 어떻게 가입해야 하고, 가계부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하나 찾아서 공부해야만 했다집 계약을 할 때도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고 말했다.

 

논의의 장은 만들어졌지만
사각지대 속에서 지원책은 전무

 

탈가정 청년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만,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애초에 탈가정 청년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논의되기 시작했을뿐더러 지금까지 청년 지원 정책은 주로 원가정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J씨는 “LH 청년주거비 지원이나 국가장학금도 원가정 소득 분위 때문에 지원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당사자들은 긴급자립청년통합센터를 제안한다. 통합 센터에서 탈가정 청년 정책을 연구하고, 청년의 자립을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박씨는 전문가들이 모여 청년 자립을 연구하는 공론장을 만들고 이곳을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갑작스럽게 사회로 나온 청년들에게 집을 구하는 법, 세금 내는 법 등을 가르쳐주고, 최소한의 지원 정책들을 큐레이팅해주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궁극적으로 탈가정 청년 논의를 통해 청년 정책의 목표가 취업에서 자립과 독립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원은 청년에게 성인의 권리나 성원권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와 정책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탈가정 청년담론의 장기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명의 설문조사 응답자 중 45.9%가 탈가정을 실행하거나 희망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박씨는 탈가정 청년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흔하다다들 흠이 될까 걱정해 말을 안 할 뿐이라고 말했다.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청년이 안전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글 고병찬 기자
kbc198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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