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추락한 부수 인증 제도, 개편 필요해

 

 

K-POP에 이어 ‘K-신문열풍이 붑니다. 갓 인쇄된 따끈따끈한 우리나라 신문들이 동남아의 길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읽혀야하는 신문들이 해외로 팔려나가 재래시장 포장지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해외로 수출된 신문의 양은 지난 2019469톤에서 202017694톤으로 1년 새 334.9%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K-신문열풍은 축하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우리 언론의 자화상입니다. 신문 수출은 신문 대금 압박을 견디지 못한 신문 지국의 생존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신문 지국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직면했습니다. 신문 구독자는 큰 폭으로 줄었지만, 신문사에서 요구하는 판매량은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20 언론수용자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종이신문 구독률은 6.3%, 201029%에 비해 78.3% 감소했습니다. 이에 지국들은 신문 대금을 감당하기 위해 남은 신문을 폐지로 수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신문사들은 지국에 감당하기 힘든 판매량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현재 신문사의 주 수입원은 기업과 정부의 광고입니다. 광고는 얼마나 주의 깊게 신문을 보는 독자가 많으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열성 독자가 많을수록 광고 효과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돈을 주고 신문을 구독할 정도로 열성적인 독자 수를 가늠하는 신문 유료부수는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당연히 효과는 광고 단가로 이어집니다.

유료부수는 비단 사기업의 광고를 받는 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는 각 신문사를 유료부수 규모에 따라 A, B, C 등급으로 나눠 정부 광고 단가를 정하고 배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유료부수는 신문사 수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신문사가 유료부수를 계속 유지하도록 지국을 압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최근, 신문은 인쇄되자마자 폐지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료부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신문사들은 몇 년째 수익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신문사들의 유료부수는 줄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마법이 가능했던 이유는 신문사들의 믿는 구석덕분입니다. 신문사들은 공식적인 유료부수를 인증하는 ABC협회(아래 협회)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종하고 있습니다.

협회는 지난 1989년 설립된 이후 회원 신문사들이 얼마나 돈을 받고 신문을 판매했는지 인증해왔습니다. 협회가 공인한 유료부수는 광고주와 신문사가 합리적인 광고 단가를 산정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됐습니다. 특히 2010년 정부가 정부 광고를 협회의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사에만 배분하기로 결정하면서 협회의 중요성은 커졌습니다. 이에 2010280여 곳에 불과했던 회원사는 2021년 현재 총 1628여 곳에 육박했습니다.

유료부수에는 신뢰성이 가장 중요한데도 꾸준히 협회를 둘러싼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협회 인원 구성과 부수 인증 범위의 공신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협회 이사 총 23명 중 주요 신문사 출신이 무려 11명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협회는 감사 대상에 외려 종속된 구조입니다.

심지어 현재까지 협회장도 한국일보부사장을 지낸 이성준씨입니다. 감시를 받는 대상이 동시에 감시하는 상황인 셈입니다. 협회가 유료부수 산정에 활용하는 자료의 범위도 점차 확대됐습니다. 지난 2010년 이후 기업이 신문사에 후원을 명목으로 단체 구독하는 부수, 6개월 무료 구독 부수, 지국에서 끼워 넣기한 부수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도저히 돈을 주고 산 신문으로 볼 수 없는 신문도 유료부수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진 합리적 의심에 불과했습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지난 202011월 협회 전 사무국장 박용학씨가 내부고발한 이후입니다. 원래 유료부수를 인증할 때는 신문사가 제출한 유료부수 자료를 바탕으로 협회가 지국에 현장 조사를 나가는데, 신문사의 요청으로 현장 조사 대상 지국을 사전에 협의했다고 폭로한 것입니다.

이 고발을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는 본격적인 실태조사에 나섰고, 지난 316일 협회의 유료부수 자료가 조작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사 결과 2019년 인증받은 조선일보116만 부, 중앙일보67만 부, 동아일보73만 부의 유료부수는 실제론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2019조선일보의 유료부수는 116만 부가 아닌 58만 부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죠.

이와 같은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자 전문가들은 문제의 원인으로 광고에만 의존하는 신문사의 기형적 재정구조와 미디어 생태계 변화에 따른 새로운 영향력 지표의 부재를 꼽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ABC협회 부수조작은 엄중한 범죄, 철저하게 조사하라라는 성명에서 협회 부수 공사 인증제는 의미가 없다신문·디지털 통합지수 등 새로운 언론 영향력 평가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열악한 신문사의 재정구조도 보완하면서 정확한 영향력 지표를 정하기 위해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미디어 바우처를 만들어 국민들이 직접 신문사를 후원하도록 해 영향력을 측정하자는 것입니다. 해당 논의를 이끄는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만 18세 이상 국민 3천만 명에게 연간 3만 원의 미디어 바우처를 지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민은 좋은 기사 혹은 신문사에 바우처를 후원하고 이를 기준으로 지원금을 배분한다는 계획입니다.

국민 여론도 긍정적입니다. 지난 4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바우처 제도 인식조사 결과 제도를 찬성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76%, 참여 의향을 표한 응답자는 78%에 달했습니다. 무엇보다 언론의 영향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정량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국민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죠. 기존 광고비와 지원금 책정이 유료부수라는 간접적 지표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국민들이 직접 언론을 지원할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디어 바우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언론계 자체의 자성도 필요합니다. 그 어느 조직보다 신뢰가 중요한 언론사에서 대국민 사기극과 다름없는 행태를 보였다는 것부터 사과해야 합니다. 지난 2004년 미국에서 일어난 부수 조작 사건은 우리 언론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사례입니다. 당시 미국 댈러스모닝뉴스5개 신문이 전체부수의 1.5~5%가량을 부풀려 조작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당시 댈러스모닝뉴스는 이를 인정하고 광고주들에게 276억 원을 환불했습니다. 엄격한 기준으로 조작에 대한 사과를 한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두 배가량 부수를 조작한 국내 매체사들은 이보다 더한 금액을 환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 2월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부수 조작 시 광고비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언론 탄압이라며 몸서리칩니다. 정부가 자신들에 반대하는 언론사를 위축시키기 위해 철퇴를 휘두른다는 겁니다. 이런 반발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법으로 언론사에 손해배상을 강제하기 시작하면,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미디어 바우처 등의 방안을 바탕으로 언론 생태계 자체를 뒤집을 대책을 마련해야 민주주의와 언론의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종이신문 구독자는 줄어들었지만, 종이신문·모바일 인터넷·TV 등까지 포함한 결합열독률은 지난 2020년 기준 89.2%로 여전히 높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언론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거론되는 현실은 우리 언론이 처한 처참한 모습입니다. 부수 조작을 깨끗이 인정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 언론이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는 묘수를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