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모 교수(우리대학교 글로벌창의융합대학)
양준모 교수(우리대학교 글로벌창의융합대학)

「연세춘추」는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킨 고마운 존재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젊은 그대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필자는 지난 1996년부터 지방대학에서 전임교원으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 수많은 글을 썼지만, 「연세춘추」에 글을 쓰는 일에 무게감을 느낀다. 세상살이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시장 구석에서 묵묵히 구두를 닦는 분보다도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총장을 지낸 분들이나, 유명한 교수님들의 글도 엉터리가 많다. 필자의 글도 십중팔구 엉터리일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믿음으로 뭉친 연세인이기 때문에 진리의 편린(片鱗)이라도 젊은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대학은 젊은 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필자가 봉직하고 있는 캠퍼스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캠퍼스다. 현재는 캠퍼스가 아닌 모양이다. 우리대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소속 대학의 이름이 세 번 변경됐다. 제자에게 부끄럽고 졸업생들에게 면목이 없다. 필자가 지금 무슨 대학에 소속돼 있는지 모를 정도다. 추상적인 단어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러분들은 대학에 다니면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적이고 구체적일수록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신뢰할 것이다. 진리는 구체적으로 발현한다.

경험적 진리에 익숙하지 않고 실험하지 않는 분야의 대학 교수들을 구체적 현상으로부터 추상적 개념을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적용하려는 작업에 익숙하다. 이런 분들의 말씀은 젊은 그대를 매혹시킬 수는 있어도 진리와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자로 칭송받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언젠가 필자는 존 롤즈(John Ralws)의 책에서 정말 한심한 주장을 접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계효용은 체감하기 마련이다. 존 롤즈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계효용이 체증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후대 학자들은 그의 주장만을 인용하는 현상이다. 허구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허구의 세상을 부여잡고 젊은 그대를 현혹한다.

오래된 미래를 칭송하고 과거의 원시사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20년 전보다 현재가 낫다. 인류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새롭고 풍요로운 세상이 오는데, 과거가 오늘보다 더 좋았다고 주장한다. 과거는 평등했는데,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위계질서 속에서 우두머리 자리를 다투는 동물의 세계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각색한다. 

반증할 수 없다고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거짓을 믿는 것은 자유지만, 젊은 그대들을 유혹하는 것은 죄악이다.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공유를 통해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대학에는 거짓으로 대를 잇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고여 있다. 사회주의 좌익이론들은 고인 물이 만들어낸 시대적 거짓말이다. 오늘의 필요에 따라 역사를 재단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이들은 학문의 자유 속에 숨어있지만, 상아탑을 벗어나면 자신의 행동과 말에 책임져야 한다. 젊은 그대들은 그들을 비판하면서 성장한다. 

공동체는 언제나 소중하다. 하지만 공동체가 개인을 억압한다면, 그 공동체는 혁신할 수 없다. 공동체는 개인들이 만들어낸 관계의 집합이다. 공동체는 다양한 차원에서 형성된다. 공동체 중에서 국가는 폭력적 수단을 가지고 개인과 개인들의 모임을 통제한다. 국가 권력이 통제되고 엄격하게 규율돼야 하는 이유다. 아름다운 명분으로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폭력을 통제하는 것이 개혁이다. 대학에서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언제나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헌신을 강요하는 사회는 노예사회다. 도덕은 소중한 것이지만 다수의 잣대로 도덕적 행위를 규정하고 법률로 강제하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다.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위선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목소리 높이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억압하고 있다. 젊은 그대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주인이 되길 바란다. 이것이 혁신의 출발이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도 동의하겠지만 인간은 공감을 얻지 못하면 살기 어렵다. 공감의 시대에서 감정의 유혹은 강력하다.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영혼이 없는 것이지만, 선택적으로 분노하는 것은 사악한 것이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고, 폭발하는 감정을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을 때, 진리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거짓과 선동의 사회에서 진리는 젊은 그대들을 자유케 할 것이다. 연세의 힘은 이 믿음에서 나온다. 다수의 횡포 속에서도 자유를 지키는 일도 진리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젊은 그대들은 연세인이기에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가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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