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세월 속 잊힌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한기씨는 누구입니까?”

이만교 작가의 소설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속 기자 이만기씨는 예순여섯 명의 인터뷰이에게 묻는다. 임한기씨는 참사 당일 망루에서 뛰어내린 후 행방이 묘연해진 인물이다. 어떤 이는 그를 앞장서는 철거민으로, 또 다른 이는 그를 용역 끄나풀로 저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인터뷰를 통해 과연 임한기라는 인물은 누군지, 만약 죽었다면 그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를 쫓는다.

 

용산참사
그날의 기억

 

사람이 죽었어요!”
저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떨어져 죽었어요!”
……
사람들이 소리쳤어. 그래서 끔찍하지만, 더 끔찍한 사태로 이어지진 않겠구나 하는 기대가 내심 없지 않았어.
사람이 죽었으니, 진압 상황이 좀 진정되겠구나 싶었지. 그런데도 이놈들이 그대로 밀어붙이는 거야.”

 

임한기씨가 망루에서 뛰어내렸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최루탄에 숨쉬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불쑥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망루가 겨우 모양을 갖추자마자 시작된 경찰의 무지막지한 진압의 틈바구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철거민들이 망루 위에 올라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칼같이 손익을 계산하는 시공사의 입장에서는 철거민에게 보상하기보다 용역을 동원해 쓸어버리는 것이 경제적이다. 망루에 올라가 목이 터지라고 외쳐야 그제야 조금씩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한다. 그마저도 그들의 처지에 마음이 동해서라기보단 철거민들의 반발이 거셀수록 용역비가 비싸져 경제성이 떨어지는 탓이다. 철거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섰다. 소설 속 인터뷰이들은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에 시달린다.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곳의 공사 현장과 빌딩. 하늘을 찌를듯한 빌딩과 쉼 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일상 속 참상이 담긴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곳의 공사 현장과 빌딩. 하늘을 찌를듯한 빌딩과 쉼 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일상 속 참상이 담긴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소설 어디에도 용산이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은 명징하게 12년 전의 용산을 떠올리게 한다. 기자가 발걸음을 옮긴 남일당 건물터 역시 2009120일 그날의 참상이 담긴 건물은 온데간데없었지만, 아득할 만치 높은 고층 빌딩 숲 사이 외딴섬으로 남겨져 있는 터는 여전히 철저히 고립된 철거민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진압은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협상을 요구하는 세입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일반 경찰이 아닌 특공대가 투입됐다. 물대포와 최루탄이 사방에서 날아왔고 폭행과 구타가 이어졌다. 이와 같은 폭력적인 진압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경찰은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018, 참사 발생 9년이 지나서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는 경찰 지휘부가 화재 발생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으나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서울경찰청장이던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이 6차례나 상황을 보고받았으며 안전대책이 미흡한 상황임에도 진압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사 과정에서 과잉 진압과 편파수사의 증거가 드러났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

용산참사는 우리에게 잔혹한 진압 장면으로 기억됐지만, 문제의 본질은 재개발 과정에 있다. 재개발은 시공사, 건물주, 세입자 등 여러 이해관계가 집합된 사안이다. 그만큼 장기간의 계획과 논의를 통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우후죽순 이뤄지는 재개발 사업에 밀린 철거민은 논외였다. 철거민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적절한 보상을 받기 위해 망루로 올랐지만 무차별한 진압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무리한 재개발이라는 본질은 흐려졌고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선 이유는 관심 밖으로 벗어났다. 참사는 자본이 낳은 비극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씻기지 않는 상처

 

감옥살이가 힘든 게 아니라, 재판 과정을 통해서조차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나라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힘들었어.
그때 그 불길에 휩싸여 유명을 달리한 분들에겐 참 죄송한 말이지만, 그때 그냥 죽는 게 더 나았을 거 같아.

나는 나의 모든 걸 잃었어. 건강했던 몸, 열심히 일했던 내 가게, 단란했던 우리 가족 모두, 자식 걱정만 하시던 어머니

 

소설 속 잔혹한 폭력의 피해자인 철거민들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연대 농성에 참여한 이들은 공동정범으로 구속돼 옥살이를 하고 동지들의 죽음에 대한 자책과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못한 억울함에 얼룩진 인생을 산다. P 지구 부위원장 김종범씨는 아직까지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꾼다고 호소했다. 매번 가위에 눌리는 것은 일쑤고 불안감에 불쑥 울화가 치밀어 갑자기 경련이 일기도 한다. 당구장을 운영하던 현미씨는 당구장에 몰려온 용역들에게 당한 그날 이후 부정맥이 생겼다. 큐대를 내려치고 협박하는 이들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딱딱하게 굳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잔인하다. 몸에 밴 트라우마는 쉬이 잊히지 않고 여전히 생생하기만 한 그날 속에 갇혀있다. 지난 2019, 용산참사 당시 망루 농성에 참여했던 40대 남성이 서울 도봉산 끝자락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징역형을 선고받고 4년간 옥살이를 한 후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호소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아래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그는 출소 후 생계를 잇기 위해 치킨 배달을 하면서도 높은 건물로 배달을 갈 때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트라우마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진상규명위는 그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며 “10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철거민들만 죽음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쓴 채 살아가도록 떠민 경찰, 검찰, 건설자본과 국가가 그를 죽였다고 일갈했다.

 

우리가 열 시간을 당하다가 십 분만 참지 못해도
결국은 폭력 집회로 보도가 돼

 

철거민들이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동안 당시 책임자들은 책임을 망각한 채 이들을 불법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며 서슴없이 2·3차 가해를 가했다. 참사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는 불법 시위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당시 시장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과도한 그리고 부주의한 폭력행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력 투입으로부터 생겼던 사건이라며 재개발 과정에서 전철연이라는 시민단체가 가세해 매우 폭력적 형태의 저항이 있었다고 발언했다. 그들에게 용삼참사는 그저 바로 잡아야 할 불법 시위에 지나지 않았다. 12년이 흘렀지만 무고한 죽음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여전히 철거민들에게 향해있다.

 

그날의 악몽
반복되지 않으려면

 

그러고 나서 그 사실을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잊고 있었던 걸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잊은 거지?

 

용산을 잊은 것은 책임자들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국민의 기억 속에서도 용산참사와 이것이 보여준 자본주의의 야만성은 잊혀갔다. 소설 속 이만기씨가 철거민에게 연락받았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를 뒤로한 채 장위동 재개발 구역엔 공사 현장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를 뒤로한 채 장위동 재개발 구역엔 공사 현장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기자가 발을 옮긴 장위지구에서 일부러 잊은 거냐는 만기씨의 물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용산참사 당시 뉴타운개발 바람이 불었던 이곳엔 다시금 재개발 신화가 소생하고 있었다. 5년 안에 36만 호의 신규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스피드 주택공급1번 공약으로 내세운 오 시장의 당선은 해제됐던 뉴타운 사업의 정상화를 예상케 했다. 심지어 노른자입지인 장위 8·9구역이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이곳의 호가는 껑충 뛰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이곳저곳 빠른 부동산 공급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편승해 정부와 정치인들은 앞다퉈 하나같이 주택 공급 활성화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앞세운 정책 그 어디에도 2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한 대책은 언급되지 않는다. 장위지구 공사장에서 힘없이 펄럭이던 강제퇴거를 멈추라는 경고의 현수막은 12년 전과 달라진 바 없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줬다.

 

▶▶성북구 장위동 공사 현장에는 현장마다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성북구 장위동 공사 현장에는 현장마다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그래서 저는 절망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 뒤에는 이들을 뽑아준 바로 우리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래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이 일으켰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말이죠.”

 

용역 뒤에는 경비업체가, 경비업체 뒤에는 정비업체가, 그리고 그들 뒤에는 재벌 시공사가 버티고 있다. 그 뒤엔 또다시 서장, 국회의원, 시장과 대통령 마지막으로 이들을 뽑은 우리까지 마치 하나의 연결고리처럼 연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살아나는 재개발 신화가 제2의 용산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용산참사는 남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연결고리의 말단에 위치한 우리 역시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잔혹한 과거가 반복될지는 또다시 우리 손에 달려있다. 소설 속 이만기씨의 말처럼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일으켰다는 경각심으로부터 변화의 물결은 시작될 수 있다.

 

용산참사의 비극은 12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의 처지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행방조차 묘연해진 한기씨에 대한 진실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기억 저편에 잊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로부터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기억될 것이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사진 김다영 기자
dy383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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