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교수(우리대학교 중국연구원)
김선자 교수(우리대학교 중국연구원)

숲은 수렵 민족의 공간이었다. 만주의 다싱안링(大興安嶺) 산맥 일대에 거주하는 퉁구스 계통의 민족들은 숲에 기대어 사냥하며 살았다. 남북으로 약 1천200㎞에 달하는 다싱안링 산맥은 만주와 몽골을 갈랐고, 북방민족의 마음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그곳에서 에벤키족이나 오로첸족, 다우르족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숲을 버리고 산 아래로 이주해야 했다. 정부의 정책이 그러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손에 든 사냥용 화승총을 내려놓아야 했다. 수렵 민족이 도시로 내려왔으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내려오면서 비어버린 숲을 밀렵꾼들이 채웠다. 정부 측의 관리가 아직 철저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밀렵꾼들은 산속으로 들어가 수많은 동물을 남획했고, ‘나그네비둘기’라는 새는 결국 멸종에 이르고 말았다. 이 일련의 과정은 숲을 ‘공유’의 공간으로 인식했던 사람들과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여겼던 사람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산에서 살아갔던 에벤키나 오로첸, 다우르족 사람들은 한정된 자원을 가진 숲을 훼손하면 생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위도가 높은 그곳에는 겨울이 일찍 찾아왔다. 나무가 굵게 자라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그들은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았다. 수액을 비롯해 나무껍질까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는 자작나무는 인간을 위해 희생한 구름 여신의 화신이었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버드나무는 생명을 가져다주는 여신의 상징이었다. 숲의 나무에는 그러한 여신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었다. 

동물도 마찬가지였다. 새끼를 밴 어미는 절대 잡지 않았고, 어미를 잃은 새끼도 잡지 않았다. 사냥은 먹기 위해 최소한으로 해야 했으며, 절대 취미가 돼서는 안 됐다. 사냥의 대상이 되는 동물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그들은 가족이 먹을 만큼만 잡으면 사냥을 멈췄다. 자신의 사냥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동물을 마구 잡아서 함부로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숲의 물을 오염시키는 행위도 금기였다. 숲의 주인인 산신(山神)에 대한 신앙은 그러한 사유에서 나왔다.

만주의 산신 ‘바인 아차’는 자애로운 흰 수염 노인으로 등장한다.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며, 때로는 자신이 호랑이로 변하기도 한다. 우리 전설에 자주 나오는 ‘은혜를 갚은 호랑이’ 이야기는 만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산신은 윤리적인 사냥꾼에게는 많은 것을 주지만, 비윤리적인 사냥꾼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숲의 자원을 씨족의 구성원이 공유한다는 인식에서 생겨난 산신 신화는 그 공유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들에게 숲은 살아있는 생명을 지닌 유기체다. 숲이라는 ‘공유재’를 훼손하면 산신이 징벌을 내린다는 신화는 공유의 숲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낸 지혜의 산물이다.

곰에 대한 신화와 신앙 역시 마찬가지다. 곰사냥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곰을 잡지만, 그들 사유의 바탕에는 곰과 인간의 영혼의 가치가 같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곰과 인간의 혼인에 관한 신화는 거기에서 비롯된다. 암곰과 인간의 남자가 혼인해 에벤키나 오로첸족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신화는 야만 시대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과 곰이 동등한 관계에 있다는 ‘대칭성사회’의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그러한 신화가 나온 것이다. 신화가 일종의 은유라면, 곰과 인간의 혼인 신화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숲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그저 사냥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닌,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이 일찍이 ‘공유지의 비극’에 대해 말한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은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인간의 개인적 욕망에 바탕을 둔 경제활동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 거주하던 숲에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사회에서 공유재인 숲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공유하는 자원공간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공유재에 대한 논의는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논의에서 공유재는 분배와 공유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만주의 숲속에서 공유재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단어가 아니다. 동물도 식물도 인간과 호혜적 관계에 있으며, 그 공간을 공유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유재라는 용어는 단순히 사물이나 자원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까지 포함한다. 그러한 사회에서 산신이나 곰에 대한 신화는 공유를 가능케 하는 핵심 동인으로 작동했다. 국가나 시장의 개입 없이도 신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공유 공간을 지켰던 그들은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특정 국가나 민족, 계층이나 종교에 대한 혐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답은 그 ‘너머’에 있음을, 그들의 신화가 말해주고 있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