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왜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을까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맨스 드라마의 마지막 화에 으레 등장하는 내용이다. 지난 2020년 방영된 드라마 그놈이 그놈은 이러한 전형적인 결말에서 벗어나 눈길을 끌었다. 결혼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등을 빚은 현주지우는 마지막 회에서 결혼식 대신 비혼식을 연다. 사랑의 결실이 결혼만은 아니라는 요즘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청년들의 결혼 가치관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The Y가 청년의 비혼주의를 파헤쳤다.

 

결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당연시돼왔다. 결혼을 하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는 미완성으로 간주됐다. 성인남녀를 기혼 혹은 미혼으로 분류해왔던 것이 그 예다. 기혼은 결혼한 상태’, 미혼은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결국 미혼이라는 용어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못하거나 안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비혼 1세대의 탄생의 저자 홍재희씨는 미혼·기혼의 분류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총신대 아동학과 강유진 교수 또한 미혼과 기혼의 이분법적 분류는 결혼이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결혼하지 않은 집단을 구분하려던 것이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결혼과 출산이라는 동질적인 삶의 패턴을 이행해왔다고 분석했다.

최근 이러한 전통적인 결혼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8년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73.5%에 달했지만, 2020년에는 51.2%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남녀 중 결혼이 필수라고 답한 비율은 34.5%에 불과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8한국에서는 결혼을 성인이 되는 관문으로 여겨 통과의례로 간주했으나 미혼율의 증가가 지속되며 결혼을 당위적인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크게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에 힘입어 비혼을 선언하는 청년들이 등장했다. 비혼의 사전적 정의는 결혼하지 않음으로, 미혼과 기혼의 이분법적 분류에서 벗어나 새롭게 등장한 용어다. 환경적 여건이 따르지 않거나 개인의 신념을 지키고 싶어 결혼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 교수는 비혼이라는 단어에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성인의 삶도 있을 수 있다는 의식이 반영됐다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이 더 강조됐다고 분석했다. 홍씨는 기존의 결혼제도에 편입하지 않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실천하는 것 모두 비혼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이야기했다.

 

결혼 제도 둘러싼 남녀의 동상이몽

 

결혼은 제도지만, 비혼은 하나의 삶의 형태다. 모든 사람의 삶의 형태가 다르듯 같은 비혼주의자라도 비혼의 형태와 유형이 다르고, 비혼을 선택한 이유도 제각각이다. 특히 성별에 따라 비혼을 선택한 이유가 다르게 나타난다. 지난 20206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30대 미혼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비혼 이유를 조사한 결과 여성은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25.3%)’, ‘가부장제, 양성 불평등 등의 문화 때문(24.7%)’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반면 남성은 현실적으로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돼서(51.1%)’가 가장 많았다. 이는 성별에 따라 비혼주의 선택 이유 및 양상에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남성의 경우, 전통적인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서 경제적 여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비혼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주택마련, 육아 등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마련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에는 취업난과 고용 불안정이 지속되며 이러한 경향이 강화됐다. 강 교수는 능력 있는 남자라면 집 한 채 정도는 마련해야 하고, 번듯한 직장도 있어야 한다는 말들이 남성에게 결혼의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앞선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설문조사에서 성공하거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을 선택할 것이다라는 질문에 여성의 67.4%비혼을 선택했지만 남성은 76.8%결혼을 선택했다. 이는 남성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비혼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음을 의미한다.

반면 여성은 결혼제도로 인한 불이익으로 비혼을 선택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결혼제도는 오랫동안 여성에게 가정에 머물며 자녀를 양육하고 가사일을 담당하는 성역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합리적인 가사분담, 일과 가정 병행의 어려움, 남편 중심의 결혼 관계에 대한 부담 등으로 나타났다. 비혼여성공동체 에미프의 회원 강한별씨는 반반가사를 하는 경우 남성들은 아내의 업무인 가사를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이러한 인식이 여성에게 굳이 내가 결혼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홍씨는 기존의 가부장적 결혼제도는 말 그대로 아버지와 남편, 즉 남성이 중심인 제도라며 결혼제도 속에서 여성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돼왔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도 비혼주의 선언으로 이어졌다. 사회나 가족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비혼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에미프회원 이예닮씨는 혼자 있는 게 좋고, 외로움도 잘 느끼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더 불편하다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강승준(21)씨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번 돈으로 내 행복을 채우는 삶을 원해 비혼을 택했다고 이야기했다. 환경과 여건이 아닌 본인의 신념에 따라 비혼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결혼만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다. 청년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비혼을 선언한다. 그러한 선택에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가치관이 반영돼있다. 그렇기에 각각의 개인이 비혼을 택한 이유와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의 비혼 선언을 통해 변화하는 가족관과 삶의 형태를 들여다보고, 이러한 변화를 온전히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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