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과 가족 다양성 담론의 현주소를 짚어보다

비혼에 대한 사회 인식을 분석한 비혼과 만혼의 사회적 담론 연구에 따르면 비혼인은 화려한 싱글로 묘사되곤 한다. 경제적 부담, 육아 부담 등 가정을 이룰 때 발생하는 책임들로부터 벗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 속 비혼 출연자 역시 종종 자유로운 영혼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The Y가 만난 비혼인과 전문가는 비혼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가족에 대한 논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비혼, 당신은 자유로운 영혼?

 

비혼은 결혼 의사가 없는 삶의 형태다. 이러한 비혼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이 있다. 비혼은 구속이나 속박을 피해 선택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나아가 이기적이고 책임감 없는 선택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기혼자인 이모(51)씨는 가족이라는 구속이 부재하면 책임감과 의무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비혼공동체 에미프의 강한별(33)씨는 전에 인터뷰한 비혼 기사에 세금을 축내지 말라는 댓글들이 난무했다고 말했다. 에미프 지나리(29)씨 또한 비혼인이 사회에 무인 탑승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모든 비혼을 자발적 선택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청년의 비혼을 연구한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오영은 연구교수는 남성은 경제적 요인, 여성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으로 비혼을 선택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20206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30대 미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부장제, 양성 불평등이 여성이 결혼을 꺼리는 두 번째 이유로 지목됐다. 반면 절반이 넘는 남성은 결혼 비용과 조건의 문제에 어려움을 표했다. 오 교수는 비혼을 선택하기까지 청년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어떠한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행복한 삶과 가족의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며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는 것이라 덧붙였다.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여성을 돌봄 전담자로 보는 전통적 성역할이 사회에 여전히 공고하며 청년의 비혼 선택에 있어 이를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비혼을 개인의 가치관 변화나 가족 부양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로만 볼 수 없다.

결혼을 기피하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요인은 정상가족규범에 기반을 둔다. 김희경의 저서 이상한 정상가족에 따르면 정상가족은 단순히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형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정상가족 규범 속에 전통적 성역할이 내재돼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청년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회와 가정을 보며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정상가족 규범이 결혼을 꺼리는 사회문화적 요인을 형성했다는 지적이다.

 

정상가족 중심 제도, 소외되는 비혼

 

제도 또한 정상가족 중심으로 형성돼왔다. 지난 201711월 정부는 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생애 단계별로 주거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책은 생애주기맞춤형 주거지원 보완방안을 제시하며 생애주기를 청년-신혼부부-다자녀가구-고령자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결혼 제도에 속하지 않는 비혼 인구는 소외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주거복지로드맵 외에도 정상가족 규범에 의거한 정책은 비혼인의 제도적 소외로 이어진다. 이에 비혼 선택이 자유로운 삶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매체에 비춰지는 화려한 싱글이 현실에선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에미프 이예닮(26)씨는 젊은 1인 가구는 청약에서 불리하다고 말했다. 청약 가점 제도는 무주택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기간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며 부양가족 수는 가장 가점이 높은 항목이다. 비혼 선택이 삶의 기본적 조건들을 보장받는 것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비혼인은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도 크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유화정 연구위원은 여전히 위기 상황에서 혈연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연결된다며 병원에서 직계가족만 보호자로 상정하고 시신인수 및 장례 권한을 갖는 연고자가 결혼 또는 혈연관계로 제한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이어 유 연구위원은 개인의 권리가 가족을 매개로만 보장된다면 비혼을 포함한 다양한 삶의 형태는 사각지대에 남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비혼 인구를 1인 가구와 동일시하는 제도 역시 정상가족 규범과 결부돼있다. 비혼은 독신주의가 아닌 결혼 제도를 거부하는 삶의 형태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에서 가족 구성을 하거나 충분한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된 공동생활을 하려면 결혼이나 혈연이라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공동으로 생활하는 비혼인은 제도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고 이에 따라 자유롭게 공동생활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씨는 비혼인이 어떤 삶의 형태를 살아가고자 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 교수는 정상가족 중심의 생활양식에 집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다양한 공동체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비혼으로 삶을 지속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가족에 대한 논의와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필요하다.

 

변화하는 가족 담론,
실질적인 가족의 의미 재고할 때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제도권에서 가족 다양성은 어떻게 논의되고 있을까. 청년의 변화하는 가족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가운데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는 지난 126일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당시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본 계획안에 대해 가족 다양성 증가를 반영해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 조성에 초점을 뒀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도권에서 현행 가족정책 체제를 바꿀 것임을 시사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한편 지난 202011월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은 공식적 혼인을 통한 출산이 당연시되던 시각에 균열을 냈다. 당시 보건당국은 비혼 출산이 현행 성문법상 불법이 아니라고 밝혔고 의료계에서는 사실혼 부부에게도 보조생식술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같은 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전국 만 13세 이상 약 38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응답자의 30.7%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범위는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당시 발표됐던 공청회 자료에 언급된 다양한 가족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유 연구위원은 제도권에서 지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여가부의 발표를 두고 동성애를 일컫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난과 지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빠져있다는 지적이 상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동거사실혼 부부, 노년 동거 부부, 아동학대 위탁 가정 등 비교적 사회적 반향이 작은 형태의 가족들은 제도권이 지원하는 범위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그 외의 가족들은 또다시 논의에서 소외될 수 있다. 유 연구위원은 오랫동안 다양한 가족이라는 어구를 논하면서도 정상가족을 중심에 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순간들이 포착됐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205월 긴급재난지원금이 세대주가 신청해 받도록 설계돼 논란이 일었다. 세대주와 세대원이 따로 거주하거나, 갈등 관계에 있거나, 이혼 소송 중인 가구 등 세대주가 대표하지 못하는 가족들은 별도 이의신청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렇다면 가족 담론에 있어 제도권과 실생활 사이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필요한 관점은 무엇일까. 인권사랑방 민선 활동가는 가족구성권을 소수자의 권리보다 돌봄과 친밀함의 공동체로서의 가족으로 접근할 때 효과적인 관점의 전환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 연구위원은 기존의 정상가족 규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 관점으로 꾸준히 논의돼 온 가족 실천(family practices)의 관점에 대해 설명했다. 병간호와 경제적 부양 등 실제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행위를 바탕으로 가족을 정의하자는 관점이다. 한편 오 교수는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인 모델링과 소통 능력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청년세대가 결혼과 비혼 중 무엇을 택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가족과 사회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욕구와 의사를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비혼이라는 선택의 결과만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요인을 파악해 지원하는 공동체가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청년들은 자라온 환경에서 독립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일구고자 한다. 그 보금자리는 가족일 수도, 혼자 사는 공간일 수도, 일터일 수도, 친밀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공간일 수도 있다. 이들이 각자 자신의 삶에 필요한 친밀한 관계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 427, 국무회의를 통해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변화한 가족제도가 모든 가족을 존중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어떻게 확산시켜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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