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를 통해 영화의 국적 논란을 짚어보다

지난 2월 재미교포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나리가 제78회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외국어영화상 수상과 동시에 작품상 심사에서 배제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에 정이삭 감독은 가족들이 말하는 언어는 영어나 외국어로 규정할 수 없는 진심의 언어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정이삭 감독은 왜 이런 소감을 남겼을까요. The Y미나리를 둘러싼 영화의 국적 논란을 살펴봤습니다.

 

국내외로 퍼져가는
미나리의 국적 논쟁

 

미나리가 작품상 심사에 배제된 이유는 대화의 반 이상이 영어가 아니면 외국어 영화라는 골든글로브의 규정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영화의 국적 정의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졌습니다. 미나리의 작품상 심사 배제는 단순한 영화 국적 논란을 넘어 인종차별이라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지난 2010년 골든글로브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거친녀석들은 영어 대사가 전체의 30%도 안 됐지만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에 많은 언론과 영화인들은 영화 국적 기준의 모호함을 비판했죠.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은 나는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오직 영어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구식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나리의 국적 논란은 국내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기생충과 달리 미나리에는 아카데미 수상 관련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 이주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배우 대다수가 한국인이지만 아카데미 기준 한국 영화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해 영진위 측은 미나리는 미국 영화제작사에서 지원해 미국인 감독이 만든 순수한 미국영화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기준이 적용된다면 미나리는 국내 영화제 수상도 어려워집니다.

국내 영화제에서 국적 논란은 미나리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313일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 단편 경쟁 본선에 선정된 허지예 감독의 Save The Cat선정을 취소했죠. 선정 취소 이유는 허 감독의 국적이 한국이 아닌 홍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허 감독은 2019년 이미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장편 경쟁 본선에 올라 유니온투자파트너상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이에 허 감독은 개인 SNS를 통해 전주 측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때와 지금의 담당자가 달라졌다는 답변만을 받았다한국 국적을 가진 감독이라는 배제적 규정이 얼마나 부당한지 인지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뒤죽박죽 영화의 국적 기준
누가 정할까?

 

영화의 국적 논란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국적의 결정 기준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드라마, 코미디, 뮤지컬 부문 작품상은 모두 영어 영화로 한정됩니다. ‘영어 영화의 기준은 전체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입니다. 한국 영화제는 영진위 기준에 따라 영화 출자 비율로 영화의 국적이 결정됩니다. 공동 제작 영화의 경우 한국 영화사가 일정 비율 이상 출자한 경우에만 한국 영화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제작사, 언어, 소재 등의 항목별로 분류된 심사 기준표를 통해 총 100점 만점에 25점 이상일 때 한국 영화로 인정받게 되죠. 이처럼 영화의 국적 기준은 시상식에 따라 모두 다르게 규정됩니다.

영화의 국적은 영화계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례로 지난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비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였습니다. 이에 국내에서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을 주요 뉴스로 내보내며 한국 영화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처럼 영화의 국적은 동일한 국적의 관객들에게 자부심과 소속감을 줍니다. 한편 관객에게 영화의 국적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미나리의 작품상 심사 배제에 대한 관객의 입장은 양면적입니다. 일부 한국 관객들은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골든글로브의 규정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대학생 임수아(23)씨는 단순히 대사에 영어 비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선정이 취소됐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미나리를 바라보는 한국 관객의 양면적인 시각에서 영화의 국적을 정의하는 관객의 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계가 명시한 규정이든, 관객의 인식이든 국적에 대한 기준은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영화 제작 방식이 크게 변화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투자, 기획, 제작, 출연 모두 하나의 문화권 내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나라가 다양해지면서 영화의 국적을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워진 것이죠. 지난 2020년 개봉한 영화 결백의 경우 출연 배우는 모두 한국 배우지만 투자배급사는 소니픽쳐스라는 일본 기업이 미국에 설립한 영화사입니다. 영화 곡성도 출연 배우는 모두 한국인이지만 투자배급사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인 20세기폭스입니다. 이처럼 배우와 감독, 제작사와 자본의 국적이 다른 사례가 늘면서 영화의 국적은 점차 모호해지는 추세입니다.

 

간단한 국적 기준으로
모호함 해결할 수 없어

 

이처럼 다국적 제작이 늘어나며 영화의 국적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주체마다 국적 기준을 다양하게 상정하고 기준의 타당성에 대해 모두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수상 후보, 지원에 영화의 국적이 고려될 경우 잡음이 생기는 것이죠. 미나리Save The Cat처럼 정당하지 않게 수상에서 배제됐다는 목소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뒤죽박죽 국적 기준,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먼저 영화의 국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작, 투자, 배급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제작하고 자본을 가장 많이 투자했는지 기준이 되는 것이죠. 언뜻 보면 간단하고 편리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작, 투자, 배급의 국적성이 관람 경험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백이나 곡성이 그 사례입니다. 너무나도 한국적이지만 제작, 투자, 배급 관점에서는 한국 영화라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기준으로 국적을 결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홍석경 교수는 대표는 독일인, 자본은 프랑스, 소재는 런던인 제작사의 국적을 어떻게 따져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본의 경계가 희미해진 세계에서 제작, 투자, 배급의 관점에서 국적을 설정하는 것이 까다롭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의 국적, 영화의 촬영지 또한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국적 기준을 정하는 것은 어떨까요. 씨네21 송경원 기자는 말과활아카데미를 통해 영화가 누구를 대상으로 서비스되는지도 국적의 기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영화는 국경을 넘나들며 수출, 수입됩니다. 또한 영화관이 아닌 OTT 서비스로도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관객의 국적이 단일하지 않다는 의미이죠. 만약 관객을 기준으로 현시대의 영화 국적을 따진다면 세계국적을 가진 영화들이 너무나도 많을 것입니다. 송 기자는 영화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단계라며 이제는 이런 식의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기준을 찾아서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영화 국적을 구분해야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작품이 어떠한 국가의 시스템 상에서 제작되는지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Save The Cat은 한국에서 자라난 감독이 한국 영화 시스템에서 영화를 배우고 제작했기에 한국 영화라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에 송 기자는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 정체성, 문화적 바탕으로 국적이 결정돼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어디서 만들었는지, 누가 보는지, 또는 스태프의 국적이 무엇인지를 떠나 그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네마의 측면이 있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풀어나갔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라 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영화의 국적을 나누며 경계를 짓는 것을 점차 지워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미나리정이삭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는 단순히 국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예술성의 관점에서 성취한 영화에 대해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밝혔습니다. 홍 교수 또한 국내 시장을 보호하려는 정책적 이유로 국적 규정은 유효할 것이지만 예술적 성취를 수상하는 분야에서 국적을 따지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시상식에서도 국적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죠.

 

영화의 국적은 특정 기준에 의해 분류되고, 이에 따라 자국에서 지원 대상이 되거나 수상 기회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즉 영화의 국적이 나뉘는 한 공정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복잡해지는 영화의 국적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하나의 국적을 정하는 것이 세계를 무대로 하는 영화 시장과 부합할 수 있을까요?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는 영화 국적 논쟁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사진제공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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