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키딩』과 굴절 없이 빛나는 사회

우울함으로 잠 못 이루는 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또는 이불을 뒤척이며 이렇게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렇게 선택하지 말아야 했는데어수룩한 선택들이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올바른 선택들로 괜찮은 삶을 만들어가는 이들을 보며 불쾌한 열패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당신에게 왓챠 익스클루시브 드라마 키딩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라고 응원하지 않는다. ‘유감이지만 이게 현실이야라고 말할 뿐이다.

 

좋은 말 두고, 나쁜 말 쓰지 말아요

 

키딩의 주인공 제프는 어린이 인형극 프로그램 진행자다. 30년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피클스 아저씨로 불리고 있다. 그의 프로그램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돼 그들의 자녀에게 다시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을 보여줄 정도로 제프는 어린이 프로그램계의 일인자다. 인형극 속 피클스 아저씨는 항상 웃고 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차를 훔쳐 마구잡이로 부수던 강도들이 그 차가 피클스 아저씨의 것임을 알자 빠르게 원상 복귀시킨 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이처럼 피클스 아저씨는 동심과 사랑의 상징이자 선한 영향력의 집합체다.

피클스 아저씨는 프로그램 속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 이상을 피클스 아저씨로 살아온 제프는 캐릭터와 완전히 동화돼있다. 카메라 뒤에서도 제프는 피클스 아저씨처럼 미소 짓고 따뜻한 눈으로 타인을 바라본다. ‘좋은 말 두고, 나쁜 말 쓰지 말아요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그는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성인군자 같다. 세상이 완벽한 원형이라고 믿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또한 제프는 정상의 교과서 같은 사람이다. 친절한 아내와 착한 쌍둥이 아들을 돌보는 온정적 가장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

그러나 제프에게 예기치 못한 비극이 찾아온다. 고장 난 신호등으로 인해 아내와 두 아들이 타고 있던 차가 아이스크림 트럭과 부딪치고 이로 인해 쌍둥이 아들 중 한 아이가 죽는다. 아내는 아이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 여겨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프와 별거한다. 무너지는 가정 속 살아남은 아이는 마약에 손을 대며 방황한다. 제프는 피클스 아저씨로 아이들에게 어떤 감정이든 느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본인의 슬픔과 비극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쁜감정들과 비정상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려 애쓴다. 이렇게 제프는 피클스 아저씨와 분열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보이는 피클스 아저씨’, 숨겨지는 제프

 

혼란 속에서 제프는 피클스 아저씨를 제프화시키는 것을 택한다. 프로그램에서 꿈과 희망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상실을 다루는 것이다. 제프는 아이들에게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가 아닌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방송 책임자인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요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리고 제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안에 두 사람이 있어. 한 명은 피클스 아저씨지. 11,200만 달러짜리 라이선스 사업으로 이 작은 자선 단체를 굴러가게 해.
다른 한 명은 제프야. 별거 중인 남편이자 슬픔에 잠긴 아버지. 장담컨대
두 사람은 만나면 안 돼. 그러면 둘 다 망가져

 

가족, 방송국 사람들, 제프 자신까지 제프의 아픔을 제쳐 둔다. 그리고 제프는 카메라 앞에서 다시 착한 웃음을 짓는다. 슬픈 제프와 행복한 피클스 아저씨로 동시에 살아가며 그의 분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형적으로 표출된다. 동료의 반려 새를 죽이고 온갖 사물을 깨부수고 심지어 헤어진 아내의 애인을 차로 쳐 다치게 한다. 인정하지 못한 채 억압된 분노는 오랜 시간 끓어오른 화산처럼 큰 폭발력으로 주위를 파괴한다. 이처럼 부정적 감정에 익숙하지 않고 이를 표출하지 못하는 것은 제프만이 아니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라는 노랫말이 구시대적이라 생각하지만, 이러한 긍정성의 강요는 전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투명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현대사회에서 부정성과 이질성이 억압된다고 말한다. 성과와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이 중요한 가치가 됐기 때문이다. 투명성을 통해 신뢰가 형성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공유됐다. 비밀이 없어진 사회에서 모든 것은 즉각 공개되고, 부정성과 이질성은 신속한 일처리를 막는 걸림돌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투명한 사회에서 눈에 띄는 불편함, 나쁜 감정, 다름을 드러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이렇게 모든 것이 드러나는 투명사회에서 부정성은 감춰지고 긍정성만 드러난다. 마치 현실의 제프는 숨겨지고 피클스 아저씨만이 가시화되는 키딩처럼 말이다.

 

굴절 없이 빛날 수 없다

 

투명성의 시스템은 스스로를 가속화하기 위해 모든 부정성을 폐기 처분한다.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기보다 긍정성 속에서 질주하는 것이다

 

제프는 투명하다. 그의 존재는 사회 어느 곳에서도 환히 드러난다. 어디를 가든 그를 아는 사람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이혼 후에도 결혼반지를 뺄 수 없고 아무와 데이트를 할 수도 없다. 언제나 시그니처같은 단정한 머리와 옷차림을 유지한다. 자신의 우울함과 파괴된 가정이 티 나지 않도록 보기 좋은 모범 답안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투명사회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내면 깊숙이 은폐되고 기형적인 분노로 변질된다.

우리 역시 투명사회를 살아간다. 투명사회는 현대사회를 디지털 파놉티콘에 비유한다. 과거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제시한 파놉티콘은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효율적으로 죄수를 관리하는 체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디지털 파놉티콘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주민들은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노출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디지털 파놉티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SNS를 통해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갔는지 거리낌 없이 수많은 타인에게 노출한다. 어디를 가든 환히 존재가 드러나는 제프처럼 우리의 존재 역시 SNS 속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제프처럼 분노와 다름은 숨기고 보기 좋은 것만을 전시한다. 인스타그램을 주제로 한 노래의 가사처럼 SNS 속에는 잘 난 사람들만 넘쳐나고 똑같은 사랑 노래만 울려 퍼질 뿐이다.

키딩은 제프가 분노와 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전개하며 부정성과 이질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존재하고 굴절을 해야 빛이 생길 수 있다. 철학자 니체에 따르면 인간 영혼의 깊이, 위대함, 강인함은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면서 나온다. 헤겔 역시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곁에 머무를 때 정신이 숭고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긍정성 속에 질주하는 현대사회는 부정적인 것을 드러내지도 머무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분노와 슬픔을 차분히 인정하고 말할 수 없다면 우리 역시 제프처럼 피폐해질 것이다.

 

깜깜한 밤 이불 속에서 이뤄지는 후회, 분노, 자책은 아마 끝나지 않을 것이다. 키딩은 고통스러워하는 당신에게 이를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디든 부정성과 이질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이야기한다. 우리는 항상 웃고 있는 사진이 될 수 없다. 당신의 입체성을 인정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 이를 통해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빛 속에서 어둠을 볼 수 있으리라.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사진제공 왓챠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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