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희망을 전하는 김리리 동화작가를 만나다

빳빳한 표지를 넘기면 등장하는 커다란 글씨들. 동화라 하면 으레 어린아이들을 위한 단순한 이야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혹시, 어린 시절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이나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가. 과거에 읽었던 동화들을 펼쳐보면 종종 잊고 있던 생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메시지들이 새롭게 읽히기도 한다. 김리리 작가를 만나 동화가 가진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동화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A. 동화작가 김리리이다. 20년 넘게 동화를 쓰고 있다. 대표작으로 만복이네 떡집, 장군이네 떡집, 소원 떡집이라는 떡집 시리즈가 있다.

어릴 때 똑똑해지고 싶어 책을 탐색하다 동화책에 재미를 붙였고, 내가 쓴 이야기를 친구들이 재밌게 읽어줘서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청소년기를 거치며 한동안 동화를 잊고 지내다 대학생 시절 동화작가 수업을 들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특히 권정생의 몽실언니와 린드그렌의 사자 형제의 모험을 읽으며 큰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다면 동화에 내 삶을 바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뒤로 열심히 동화쓰기에 매진하게 됐다.

 

Q. 작품에 동물이나 전통적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동화의 소재나 영감을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하다.

A.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마당에는 닭과 오리가 넘나들었고, 소와 염소도 키웠다. 아이들이 많지 않은 시골이었기에 동물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들을 이야기에 담게 된다.

전통적인 소재에 주목하게 된 데는 조금 특별한 계기가 있다. 10여 년 전쯤 엄마는 거짓말쟁이라는 작품이 스위스에 번역돼 세계 그림책 전시에 초청을 받았다. 외국 독자들이 한국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한국 부스를 찾아가 보니 문화적 특색을 살리기에 너무 부족했다. 충격을 받아 한국을 더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우리 문화를 뿌리에 둔 판타지에도 관심이 많다. 판타지는 외국 장르라는 인식이 많지만 한국에도 신화나 옛이야기 등 고유의 판타지가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한국적 소재를 동화에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Q. 지금까지 써온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A. 만복이네 떡집이다. 떡을 소재로 한국적인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떡은 여러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돌잔치 때는 아이에게 복을 빌어주기 위해, 제사 때는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개업식 때는 액운을 떨치기 위해 떡을 올린다. 또 떡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 이러한 의미들을 담아 만복이네 떡집을 발간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이후 장군이네 떡집, 소원 떡집을 시리즈로 발간했다. 앞 작품에서 이미 너무 다양한 떡이 등장해 소재가 고갈됐을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떡 종류가 350가지나 되더라. 이야기 속 주인공뿐 아니라 내게도 복을 가져다준 떡이다.

 

Q. 동화를 쓰기 위해 어린이에 대한 탐구도 많이 할 것 같다. 동화작가로서 주의 깊게 살피는 어린이의 특성이 있는가.

A. 아이들의 욕망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은 흔히 어린이는 모두 착하고 아름답다고 착각한다. 이러한 편견을 바탕으로 동화를 쓰면 아이들은 선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글이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욕망이 있다. 욕구가 억압되거나 결핍되면 욕망이 생겨난다. 이때 동화는 놀이와 상상을 통해 아이들의 욕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Q. 저학년 동화, 고학년 동화, 청소년 소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위해 글을 써왔다. 독자로 설정된 어린이의 연령대에 따라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아동문학 작가는 일반 문학과 달리 독자의 연령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학년별로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학년 동화를 쓸 때는 문장을 간결하게 쓰고, 불필요한 내용을 최대한 줄인다. 저학년 아이들은 글이 길거나 구조가 복잡하면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학년을 위한 동화는 소설체로 쓰며 좀 더 깊이 있게 다가가려 한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어렸을 때 고민했던 부분들을 작품에 녹여내고자 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가졌던 욕망과 지금 아이들의 고민이 맞닿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어떤 욕망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실제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과 떨어져 살던 어린 시절에 밤마다 소원을 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청소년기 친구들과 연애 고민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썼다.

 

Q. 어린이들에게 어떤 동화작가이자 어른으로 남고 싶은가.

A. 동화작가의 역할에는 세 단계가 있다. 가장 하위 단계는 선생님이다. 주로 훈계를 하고 재미보다 교훈을 추구한다. 두 번째 단계는 친구.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이상적인 단계는 샤먼*’이다. 이 단계에 놓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영혼이 위안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고 힘이 난다.

샤먼의 역할을 하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지만 내 힘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열심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들의 억압과 결핍을 해소해주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샤먼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훗날 재밌는 동화작가 할머니로 기억됐으면 한다.

 

Q. 동화는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울림 있는 메시지를 남긴다. 아동문학은 오늘날 청년과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A. 동화는 위안과 희망을 주는 존재다. 동화에는 작고 힘없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동화 속에서 조력자들을 만나 성장하고 빛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희망적인 내용이 20, 30대 청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고 비교당하며 살아간다. 동화 속의 희망적인 이야기는 이들에게 때론 힘없고 작은 존재일지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며 함께 성장하고 빛이 될 수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렇듯 동화에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많은 분이 동화를 읽고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깨알코너: '어른'의 눈으로 '아동'문학**을 재해석하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이 그렇듯 아동문학 또한 시대와 장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이에 아동문학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아동문학 비평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아동문학 비평의 시사점은 무엇이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아동문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아동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인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원종찬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Q. 우리 사회에서 아동문학을 비평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아동문학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가치 있는 작품을 선별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동문학은 오랫동안 연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내용이 쉬우니 해석의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시민적 관심의 밖에 놓이며 아동문학의 선별 과정이 불공정해졌고 거대 권력이나 주류 담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됐다. 실제로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강아지똥몽실언니가 교훈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금기시됐다.

이러한 불공정한 선별 과정에 벗어나 최상의 동심과 교훈을 지닌 작품을 판별하기 위해 아동문학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비평은 선별 과정에 개입하는 행위다. 아동문학을 둘러싼 이면의 문제들을 논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다. 아동문학 명작 고전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선별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Q. 아동문학에 대해 낭만적이고 교훈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아동문학이란 아동을 어떻게 그려내고 어떠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오늘날은 높아진 시민의식 덕분에 아동문학이 작고 귀엽고 어여쁜이미지 일색이지는 않다. 언뜻 보기에 동심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아이들에게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 이처럼 아이들을 수동적 존재로 길들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때, 아동문학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도 답할 수 있다. 진실에는 아이의 것이든 어른의 것이든 높낮이가 없다.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인간의 진실을 품은 작품들은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울림을 전한다. 우리 시대의 가치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데 있다. 아동문학의 지향점도 이와 같다.

 

Q. 최근 어른을 위한 동화가 각광받으며 동화는 어린이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30 세대는 간결한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으며 동화에 관심을 보인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동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A. 동화의 형식으로 어른에게 이야기를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뜻한 온기나 시원한 산소 같은 치유를 원한다면 어린이를 위한 동화 가운데 어른도 감동을 맛볼 수 있는 것들이 상당하다. 특히 그림책은 어린이만의 전유물이 아닌 새로운 예술 갈래로서 오늘날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현실의 피로감을 낭만적으로만 해소하려는 이야기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원 교수는 아동문학 작가와 비평가는 어린이와의 쌍방향 소통을 소망한다고 전했다. 그가 교훈을 내세우는 것을 경계하고 작품의 다의성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역시 대화적 태도를 중시하는 데 있다. 아동기를 졸업한 지 한참이라도, 동화 속에 그려진 인간의 삶을 펼쳐보며 위로와 공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샤먼: 영적으로 교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문학이나 예술에서 초현실적인 텍스트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작가를 일컫는다.

**아동문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과 정서를 위해 창작한 문학. 동요, 동시, 동화, 아동극 따위를 포괄한다.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사진제공 김리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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