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뒤돌아서면 돌아오는 시험 기간처럼 다시금 여성 징병제가 국민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의 군 가산점제위헌 결정 이후 여러 차례 논란이 된 이 해묵은 이슈가 다시 사회 전면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간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는 결국 젠더 갈등으로 귀결됐습니다. 일부 남성은 병역법31항의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복무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헌법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여성도 똑같이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여성은 사회에 엄존하는 성차별은 도외시 한 채 기계적 평등만을 요구하는 행태라고 맞섰습니다. 결국 논의는 나도 힘드니 너도 힘들어야 한다는 논리로 공전을 거듭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기성세대나 정책 결정권자는 이 논쟁을 가볍게 소비했습니다. 지난 201791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 의무를 남녀가 함께하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재밌는 이슈 같아요라고 보인 반응은 기성세대나 정책 결정권자들이 이 이슈를 어떻게 취급해왔는지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는 말이 나옵니다. 인구 절벽으로 인한 20대 남성 인구 부족이 여성 징병제론에 설득력을 더할 변수로 추가됐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는 남성만으로는 병력 규모를 유지하지 못하기에 여성도 징병해야 한다는 새로운 논리가 가능해진 것이죠. 실제로 연도별 출생자 수로 추산해보면 현재 우리나라 병력 구조상 필요한 병력은 30만 명인데, 당장 2025년 가용자원인 20세 남성의 숫자가 29만 명으로, 2033년이면 1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불과 10년 뒤 우리나라 병사의 숫자가 반 토막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재 30만 명의 병력 규모를 더 줄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30만 명이라는 숫자도 이미 현대전의 특성을 고려해 군의 병력구조를 변화시킨 국방부의 국방개혁 2.0’으로 기존 병력에서 10만 명 넘게 줄어든 상태라고 말합니다. 또한, 북한은 120만 명가량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아예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군사훈련을 받자는 남녀평등복무제가 등장했습니다. ‘남녀평등복무제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제안한 제도로 온 국민이 남녀 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 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것이 요지입니다. 인구가 부족하니 모병제로 15만에서 20만 명가량의 잘 훈련된 정예군을 두고, ‘남녀평등복무제를 통해 유사시를 대비한 예비군을 육성해놓자는 것이죠.

언뜻 보면 남녀평등복무제는 인구 절벽으로 텅텅 비게 생긴 군대도 정상화하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병역을 수행하는 합리적인 제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적인 제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4.7 재보궐선거 직후 제안이 나왔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모병제와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기초훈련 모두 단기간에 시행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먼저 모병제는 이전부터 활발히 논의됐으나 여전히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힘듭니다. 막대한 비용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안보 현실에 적합한지 따져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병욱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처럼 다 와도 부족한데, 모병제를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국가전략연구원 김대영 연구위원도 군인 월급이 직장인과 비슷한 타이완의 경우도 모집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병제를 논하기엔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또한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언급됐듯이 모병제로 군대가 빈민의 군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군대가 고소득 일자리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집안 형편이 어려운 저학력자들이 모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공평과 정의에 민감한 우리나라 정서에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들이 남성과 함께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것은 어떨까요? 이 역시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여성 병사를 받아들이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상명하복식 군대 문화에 여성들이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가 가장 큽니다. 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이스라엘에서 지난 2017년 여군의 15.6%가 군 복무 중 성범죄를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군의 14%가 성희롱 피해자를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군대의 남성 위계적인 문화가 일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면 여성도 군대에 갈 여건이 마련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여성은 절대 군대 가면 안 되는것으로 귀결되는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가는 것과 가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일부 여성계는 오히려 과거부터 여성도 군대에 가자고 주장해왔습니다. 남성 독점의 군대가 가부장적 문화와 성차별의 근원지라며 여성들도 징병제에 참여해 이를 극복하자는 주장입니다. 이번 21대 국회에 여성계 비례대표로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과거 논문에서 군대가 있는 한 여성의 입장에서 군대는 외면하는 것이 최선인 조직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도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여성의 53.7%가 자신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 인구 절벽으로 인한 안보 상황의 변화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도 병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기에 다양한 방안을 장기적으로 논의해볼 필요는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는 여러 가지 안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토론해보되, 지금 당장 존재하는 20대 남성들의 박탈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근시안적인 젠더 갈등을 넘어서서 일이 되게해보자는 것이죠. 20대 남성들은 병역의 의무를 지며 많은 부조리를 바로 지금경험합니다. 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19년 작성한 병역담론의 전환을 위한 기초 연구에 따르면 20대 전역자 중 군 복무 당시 겪었던 일로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44.3%, ‘군대는 시간낭비라고 답한 사람은 59.8%, 군대에서 수행한 업무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지 않다라고 답한 사람은 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더 시급한 논의는 현재 군대에 있거나 군대에 갈 20대 남성들이 직면한 열악한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현역 복무자는 박탈감에, 사회복무요원 복무자는 열등감에, 대체 복무자와 여성들은 혐오의 굴레에 빠졌습니다. 사실상 모든 국민이 징병제라는 이름 아래에서 고통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이에 복무 기간 동안 사회와의 단절감을 해소해줄 방법을 찾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적절한 대우를 해주며, 징병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고 요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지금 20대 남성들이 느끼는 억울함과 열등감을 해결하고 향후 병역 제도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경향신문정동 칼럼을 통해 군대는 고치고 바로잡을 게 너무 많다라며 국가는 국방개혁부터 해야 한다. 국민의 의무를 늘리는 건, 그다음에나 생각해볼 문제다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철마다 돌아오는 여성 징병제논의. 이번에는 달라야 합니다. 장기와 단기의 과제를 구별하고, 당장 우리가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하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는 우리의 군대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이기에 지금 당장은 후진적 병영 문화와 처우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다음의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고병찬 기자
kbc1986@yonsei.ac.kr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