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늑장 입법’, 실효성엔 물음표

스토킹 피해자들은 매 순간 공포의 순간에 놓여있다. 언제 어디서나 가해자가 몰래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스토킹은 고작 과태료 최대 10만 원짜리 경범죄였다. 다행히도 지난 324, 스토킹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겠다는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아직도 피해자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안 만나줘
일상을 갉아먹는 스토킹 범죄

 

#1. A씨의 사례
직장인 A씨는 지인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가해자는 시도 때도 없이 A씨에게 접근했다. 결혼해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전화번호를 몰래 알아내 수시로 문자와 전화를 남기는 것은 예사고, 예고없이 집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말 한 번 나눠보지 않았지만, 주변인들에게는 마치 가약이라도 맺은 양 소문을 퍼뜨렸다. A씨는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처럼 나도 위험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힘들었다둘 중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끝날까 싶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2. B씨의 사례
대학생 B씨는 1년간 만난 전 애인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전 애인은 B씨에게 다시 만나달라며 집, 아르바이트 장소, 학교 할 것 없이 불쑥 나타나 대화를 요구했다. 불쾌감을 느낀 B씨가 중단을 요구했지만, 가해자는 멈추지 않았다. B씨는 아직도 혼자 길거리를 걸으면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불안하고 두렵다고 말했다.

 

두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스토킹 유형이다. 가해자들은 전화와 문자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하고, 직접 찾아가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명백한 범죄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은 순애보로 포장됐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여성폭력방지본부 김미순 본부장은 우리나라에서 스토킹은 구애, 호감 표시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일로 가볍게 여겨졌다가해자가 아무리 피해자를 괴롭히더라도 스토킹 외 다른 혐의가 없다면 누구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토킹은 강력 범죄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12년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와 그의 언니를 살해한 울산 자매 살인사건’, 2016년 여성이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 그리고 지난 3월 노원구에서 발생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은 모두 스토킹 범죄에서 시작한 강력범죄였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가 발표한 친밀한 파트너 관계 살인의 특징연구 결과,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죄 1심 유죄판결 1185건 중 약 12%에 해당하는 143건이 스토킹 범죄로 드러났다. 변호사 김모씨는 스토킹은 제지하는 힘이 없으면 점점 더 집착이 심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법적 제재를 통해 초기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점차 스토킹에 대한 경각심은 커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신고 건수는 지난 20182772건에서 20195468건으로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들어 스토킹이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하며 신고가 늘어난 것이다. 김 본부장은 본래 우리나라에서 스토킹이 강력한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으나 사회적으로 큰 이슈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곳곳에 구멍 뚫린 처벌법
법망의 사각지대 존재해

 

스토킹의 위험성과 처벌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324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아래 스토킹처벌법)이 첫 발을 내디딘 지 22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오는 1021일부터 스토킹 행위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스토킹처벌법을 대표 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스토킹처벌법 통과로 우리 사회가 젠더 폭력 없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기대와 달리 피해자는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스토킹처벌법의 조문이 모호하게 구성돼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처벌이 어려울 수 있고, 신고 이후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보호 조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해당 법안은 스토킹 범죄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스토킹 유형으로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연락을 취하는 행위 물건을 도달하게 하거나 물건 등을 두는 행위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 놓인 물건을 훼손하는 행위를 명시한다. 언뜻 자세하게 규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열거된 행위들이 구체적이지 않을뿐더러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비판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2년 만의 스토킹처벌법 제정, 기꺼이 환영하기 어려운 이유라는 논평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발생하는 범죄는 없고, 그 범죄는 어떠한 사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단 한 번의 행위만으로도 피해자는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만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 역시 법률상의 문구가 추상적이라며 예를 들어 접근하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행위인지 등 기준이 불명확해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와 B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핸드폰과 SNS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스토킹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난 3월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발표한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에 따르면 20대 여성 903명 중 온라인 스토킹 피해를 당한 응답자는 715명으로 79.2%를 차지했다. 온라인 스토킹 피해 유형 역시 개인정보를 알아내 저장하기 사생활 캐내기 원치 않는 글·이미지 전송하기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온라인 스토킹에 해당하는 행위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글··그림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라는 모호한 규정으로만 명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다양한 양상의 온라인 범죄를 전체적으로 의율*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스토킹으로 인정돼도 피해자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해자가 합의를 요구하며 피해자에게 협박할 여지가 있다. 김 변호사는 이미 지속적인 접근에 상처받은 피해자들이 합의를 계기로 또 다른 측면의 접근에 노출될 수 있다반의사불벌죄 조항은 스토킹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스토킹 범죄로 고통받은 피해자에게 원만한 합의라는 또 다른 부담을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스토킹처벌법의 맹점,
피해자 보호는 어디에?

 

스토킹은 개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는 범죄인만큼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인들 역시 범죄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울산 자매 살인사건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 역시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범죄를 가했다. 그러나 관련 처벌 규정이 미비하고, 보호 조치도 소홀한 실정이다.

현재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해도 경찰은 스토킹 행위자에게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내리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스토킹 가해자가 위반해도 형사처벌이 아닌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뿐이다. 실질적으로 가해자의 접근을 완벽히 차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심사 없이 법원에 바로 보호명령을 청구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 제도 역시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제외됐다. 이에 A씨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확실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해하기 어렵다피해자라면 공감하겠지만 가해자의 그림자도 마주치기 싫다고 강조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 동거인까지 포함한 보호절차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토킹처벌법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만을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로 인정한다. 따라서 동거인과 가족은 스토킹 행위의 대상일 뿐 실질적인 보호 조치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 미국의 경우 피해자와 그 가족의 생명 또는 신체를 보호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자녀의 학교까지도 접근금지명령의 대상에 포함된다.

한편 스토킹처벌법이 국내 스토킹 인식 변화의 첫걸음이라는 희망적인 관점도 있다. 규정의 문제는 논의를 통해 점차 보완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지난 413일에 열린 정의당 의원총회에서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지만 지금의 처벌법에는 피해자의 일상을 보호할 조치들이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다후속 입법을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본부장 역시 과거 스토킹 피해자들은 의료비 지원, 심리상담 등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스토킹처벌법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비록 곳곳에서 허술한 지점이 노출되고 있지만, 스토킹 범죄를 가시화한 뼈대가 처음 등장한 만큼 판례와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점차 사회적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은 열 번 찍힌 나무의 입장은 헤아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강요하는 스토킹은 개인 간의 가벼운 애정 문제가 아니다. 조금만 빨랐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스토킹 범죄, 더는 똑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의율: 법원이 법규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일

 

여성긴급전화 1366’ 및 전국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소’, ‘해바라기센터등의
보호시설에서 스토킹 피해자에게 관련 서비스를 우선 제공 중이다.

연세의료원 해바라기센터: 02-3274-1375

서대문가정폭력관련상담소: 02-364-0413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사진자료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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