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he Y
[문화,人] 달빛에 우주를 담는 예술, 서예청년 서예가 인중 이정화를 만나다
  • 김지원 김채영 기자
  • 승인 2021.03.28 23:19
  • 호수 64
  • 댓글 0

미술 작품이라 하면 흔히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진 그림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 그림이 아닌 글씨로, 흑과 백 두 가지 색만으로 이뤄지는 예술이 있다. 바로 서예다. 서예는 흰 종이에 검은 먹으로 물드는 글자들로 보는 이의 마음 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서예는 어떻게 자연과 고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일까. 우리의 전통예술을 계승하는 젊은 서예가 인중 이정화를 만났다.

Q. 청년 서예가는 흔치 않다. 어떻게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됐는가.

A.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서예를 시작했고, 어릴 적부터 서예를 좋아했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중국어 통역사라는 꿈도 있었지만, 서예가가 돼 사람들에게 서예를 알리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해 서예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특별한 사명을 갖고 시작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걷게 된 길이다.

Q. ‘인중(仁中)’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호인가.

A. 인중은 『논어』에 나오는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에서 따온 이름이다. ‘넓게 공부하고 생각을 가까이하며, 끊임없이 물어 실천한다면 인은 그 안에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인(仁)은 사랑이라는 뜻을 갖는다. 인(人)과 이(二)로 이루어진 글자를 ‘나를 위해 상대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상대를 위해 나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나와 타인에게 평등한 사랑을 주는 자세를 지키라는 뜻으로 대학 시절 지도교수님께서 지어주셨다. 호에는 그 사람이 가진 특성도 넣지만 부족한 점을 채워 넣기도 한다. 교수님께서는 “네가 가진 인품이기에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러한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크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쓰고 있다.

▶▶이정화作, 「미·사·고」, 스티로폼에 먹과 토치라이터

Q. 서예를 할 때 고전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가.

A.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한자 산 산(山)과 물 수(水)를 이용해 작업한 작품이 있다. 자연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으며,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해주지 않는가. 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과 다르게 한지가 아닌 스티로폼에 작업했다. 먹으로 스티로폼에 글자를 쓰고 나머지 부분은 토치로 녹였다. 작업이 끝난 직후에는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 중 하나였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내 작품이 진정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싶어 스티로폼으로 작업한 것이 결과적으로 자연에겐 쓰레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자연에 영감을 받아 작업하며 보다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Q. 서예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도 연관이 있다. 서예가 어떤 면에서 마음 수양의 기능을 하는가.

A. 서예는 ‘흑과 백’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단순한 색으로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과정이 수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먹은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쓰기도 한다. 같은 글들을 한 장, 열 장, 백 장까지 쓰다 보면 이 문장을 마음으로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서예를 단순히 글자를 적어 나가는 예술이 아닌, 창작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서예의 의미가 변화해도 서예가 글과 함께해야 하는 예술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서예의 본질이 수양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Q. 서예는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계승되고 발달한 예술이다. 한국 서예만의 차별화된 특징이 있는가.

A.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서예를 칭하는 이름이 각기 다르다. 우리나라는 ‘서예(藝)’, 중국은 ‘서법(法)’, 일본은 ‘서도(道)’라 한다. 중국의 서법은 법첩*을 중심으로 정법적 계승이 이뤄졌다. 일본의 서도는 서풍이 비교적 날카로워 그들만의 분명한 법도가 느껴진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서예는 예술적 요소가 가미돼 있으며 차분하고 정제된 서풍이 두드러진다. 오늘날의 서예는 형태가 조금 변화하기도 했지만, 전통적 서예를 살펴보면 정갈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Q. 아리랑 유랑단 소속으로 해외에 다녀왔다. 기억에 남는 일화와 느낀 점이 있는가.

A. 지난 2013년도에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한국문화외교사절단을 꾸려 15개국 29개 도시로 세계 일주를 다녀왔다. 음악, 영상, 서예 등 각자의 전공을 살려 세계에 아리랑을 알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할머니께서 공연 후 우리 손을 붙잡고 우시며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모습이다. 사실 일정이 끝나갈 무렵이라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는데 그토록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큰 격려를 받았다.

아리랑 유랑단으로 세계 일주를 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한국의 서예를 알린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꼈다. 또한 모든 사물을 서예와 예술에 빗대어 바라보는 연습도 하게 됐다. 지금도 그때를 돌아보면 굉장한 경험이고 감사하다.

Q. 자신만의 언어로 서예를 정의한다면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A. 달빛에 우주를 담는 예술이라 정의하고 싶다. 한지는 은은한 달빛의 색을 닮았고, 먹은 어두운 우주의 색을 닮았다. 그저 글자를 적어 나가는 예술이라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이유는 없다. 나의 마음 안에 있는 우주를 담아내는 예술이기 때문에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Q. 한국의 전통예술인 서예를 계승하는 젊은 서예가로서 남달리 느끼는 점이 있는가.

A. 호의적인 반응에 취해있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젊은 서예가로 함께 활동하는 이들이 꽤 있다. 동료들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를 굉장히 예쁘게 봐주신다. 계속 전통을 이어가는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진중한 자세로 작품 활동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자칫 잘못하면 지금까지 잘 지켜왔던 전통의 흐름이 깨질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서예만의 매력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A. 서예의 특징이자 매력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키보드로 쓴 글은 백스페이스를 누르면 지워진다. 연필과 펜으로 쓴 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먹으로 쓴 글은 태우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러한 서예의 특징은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워지지 않는 먹처럼 나의 말과 행동도 남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신중해야 한다. 붓과 먹으로 글을 쓰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이 서예만의 매력이라고 전하고 싶다.

<인중 이정화가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

# 허난설헌의 시 「곡자」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슬픈 마음을 표현한 시이다.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너의 무덤에 술을 따르리”라는 구절을 그저 흰 종이에 정갈한 글씨만으로는 충분히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종이를 힘껏 구기고, 뚝뚝 떨어지는 먹물과 거친 필획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글자를 모를지라도 마음으로 내용이 읽히리라 생각한다.

# 「시간」

이 배는 닻을 놓더라도 멈추지 않고, 그저 앞으로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타고 가는 이 배의 뒤꽁무니에 생기는 물결은 후세의 길잡이가 되고, 배에 대한 평판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시간'을 시계가 아닌 다른 것으로 표현했다. '흐르는', '멈춰질 수 없는',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 그리고 ‘바른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법첩: 옛 명필의 글씨를 익히거나 감상할 목적으로 모범이 되는 글씨를 모아 책으로 만든 것

**지전: 죽은 이에게 저승으로 가면서 쓰라는 의미로 관에 넣는 지폐

글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사진 본인제공>

김지원 김채영 기자  l3etcha@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