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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시선] 누가, 어떻게, 어떤 청년을 호명하는가
  • 매거진부 이연수 기자
  • 승인 2021.03.28 21:12
  • 호수 1869
  • 댓글 1
매거진부 이연수 기자
(정외·19)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범람하고 있다. 『The Y』 또한 청년 시사 매거진으로 개편하면서 몰아치는 청년 담론에 발을 들였다. 청년과 가까운 위치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보자는 포부와 함께였다.

『The Y』의 기자로서 지켜본 청년 담론은 ‘뒤죽박죽’ 그 자체였다. 청년이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갈 참신한 인물로 지목되는가 하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계몽이 필요한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각자도생의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세대로 묘사되기도, 불합리와 불공정을 거부하는 적극적 주체로 그려지기도 했다. 동일한 집단에 대한 엇갈리는 해석이 이어졌다.

동시에 청년들을 만나며 청년 담론이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다양한 청년을 포괄할 하나의 담론은 불가능하다. 『90년생이 온다』는 90년생을 이해하고 싶은 기성세대에게 각광받은 책이다. 작가는 ‘지금의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서술했다. 이를 통해 청년의 적당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했다. 이 서술이 맞는 부분도 있다. 한 몸 건사하기 힘든 것이 많은 청년의 현실이기도 하다. 일 년 뒤의 자신도 쉽사리 상상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사회 발전이나 이상 실현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청년들도 많다. 용산에서 만난 한 청년은 N번방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신의 일상을 포기했다. 스펙을 쌓는 대신 N번방 관련 재판을 방청하고 제대로 된 재판이 이뤄지도록 힘을 더했다. 자기 것만 알차게 챙기는 대신 피해자와의 연대를 택했다. 장애인권 동아리를 운영하는 청년, 기후변화를 행동으로 알리는 청년, 학내 노동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청년 모두 청년이 맞다. 앞서 책의 서술처럼 청년이 자신의 안녕만을 챙긴다고 규정하는 담론이 그들에게 얼마나 힘 빠지는 이야기였을까.

‘낡은’ 정당의 이미지가 강한 국민의힘이 청년 이야기에 주력하는 ‘요즘것들연구소’를 만든 것도 지난 2020년이었다. 출범 후 첫 활동은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침이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들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펜’으로 상징되는 청년의 노력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58개의 청년 단체는 그 펜은 부러지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말 그 펜이 모든 청년의 노력을 의미하는지, 펜을 쥔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정당한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연희동에서 만난 한 청년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는 인천국제공항, 조국 사태 등 청년이 주체로 떠오른 공정 이슈에 목소리를 내기 주저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으로서 사회 전반의 불공정을 이야기하기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은 자발적 선택이었지만 사회는 이를 수동적 낙오라 전제했다. 노력하지 않은 청년이라고 인식되는 자신이 ‘청년의 노력을 무시했다’는 주장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서 사람들이 들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청년을 대변하기 위해 꺼내든 펜은 어떤 청년의 이야기를 지우는 펜이 되기도 했다.

다양한 청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청년을 단일하게 규정하는 담론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청년을 위해 ‘노력하는 꼰대’가 되겠다는 기성세대의 해석이 엇갈리고, 일부 청년만을 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지난 겨울 호텔 리모델링 청년 주택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일었던 공방이 떠오른다. 정부는 호텔 개조 임대주택에 대해 ‘청년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청년 주거비 경감과 라이프스타일에 알맞은 주택 정책이라 내세웠다. 반면 어떤 정치인은 청년을 ‘닭장 집’으로 몰아넣고 ‘호텔 거지’로 만드는 꼴이라 비판했다. 이들 중 누가 더 청년을 잘 대변했다고 볼 수 있을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청년 담론을 지켜보자면 그들이 정말 청년을 이해하고 대변하고자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청년은 이해관계에 맞게 내세워진 조어에 불과하지 않았나 의심도 된다. 이면의 동기가 어떻든 불완전한 청년 담론에 깊은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청년이 호명될 때 누가, 어떻게, 어떤 청년을 이야기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매거진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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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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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두팔 2021-03-29 00:11:22

    우리.나라.청년들 . 살기 힘든거 ..다 알지만.. 그래도.오늘두.화이팅.해서
    한.그루의.사과 나무를.심어 봅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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