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들며 소외된 목소리에 귀 기울인 예술가를 만나다

제국주의로 인한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동아시아. 동아시아인은 오랜 기간 ‘너’와 ‘나’의 구분 짓기로 분열돼 있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도미야마 다에코는 동아시아 지역을 주 무대로 소외된 자들의 아픔에 주목하고, 타자와 공명하고자 했던 예술가다. 우리대학교 박물관은 지난 12일부터 기획전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에서 전 생애에 걸친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기획전은 오는 6월 30일까지 우리대학교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후 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다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경계를 넘다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 1921-)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경계 넘기’다. 때로는 피해자로, 때로는 가해자로 존재했던 동아시아 각국은 피해와 가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설명될 수 없다. 도미야마의 삶과 작품도 그랬다. 1921년 일본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녀는 전쟁의 참혹함을 절실히 느꼈다. 전쟁이 남긴 상흔은 이후 그녀의 작품 세계를 단단히 받치는 축이 된다. 「찢긴 자들」 연작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조선인들의 모습을 담았고, 「바다의 기억」 연작은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한을 풀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일본으로 돌아와 여자미술전문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뒤, 1950년대 탄광을 주된 테마로 작품 세계를 일궈나갔다. 그녀는 깊고 어두운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석판화를 통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냈다.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특수를 누렸던 석탄 산업은 종전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이내 많은 탄광들이 문을 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직한 노동자들은 라틴 아메리카로 이주한다. 도미야마는 노동자들을 따라 이주해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당시의 기억은 이후 1970년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와 빅토르 하라(Victor Jara) 등을 모티브로 한 석판화의 바탕이 된다. 이렇듯 도미야마의 작품은 국가의 경계를 넘는다.

전시 개막일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맡았던 신지영 교수(국학연구원·동아시아문학과사상)는 그녀의 작품 활동을 ‘미술운동’이라고 표현했다. 도미야마는 아름다움 대신 탄광 노동자의 투쟁, 한국의 민주화 운동, 일본군 ‘위안부’ 여성 등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담기 어려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신 교수는 “도미야마의 작품은 자기 안에서 벗어나 타자와 공감하는 방식이자 상황을 알리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삶은 예술과 사회운동의 경계 또한 넘나든다.

 

▶▶ 「광주의 피에타」 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표현한 도미야마의 작품들.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대하고자 하는 그녀의 뜻을 담고 있다

 

오늘날 도미야마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

 

지난 1970년대 한국을 방문한 도미야마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김지하 시인과 교류하며 그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김지하의 시 「황톳길」을 읽고 그린 석탄화를 비롯해 시화집 『심야』를 내기도 했다. 또한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 사건’에서 구명 운동을 벌이면서 보편적 인권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벽 안의 원한」이라는 작품에서는 형무소에서 죽어간 윤동주를 기렸다. 도미야마의 작품 세계에서 시인들은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대하고자 하는 그녀의 뜻은 지난 1980년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린 작품들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광주의 피에타」는 희생된 시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을 비롯해 광주의 비극적인 사건을 전하는 「쓰러진 자를 위한 기도」 연작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던 현장의 폭력성을 생생히 드러낸다.

신 교수는 최근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언급하며 도미야마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얘기했다. 도미야마는 문제 상황을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자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 교수는 “도미야마가 식민지 시대가 끝난 후에도 아시아 기생관광을 얘기했던 것처럼 미얀마의 상황에서 가려진 로힝야족 문제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감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악화된 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일관계, 램지어 교수의 논문으로 재조명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까지. 우리 사회에서 ‘편가르기’는 여전하다. 팬데믹 상황으로 물리적, 심리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지금, 도미야마의 작품은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한편 이번 기획전은 오는 6월 30일까지 우리대학교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박물관 학예팀 윤현진 차장은 “작년 기획전은 감염병으로 인해 관람이 어려웠다”면서 “이번 전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에는 박물관을 찾아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글 김민정 기자
bodo_elsa@yonsei.ac.kr

사진 윤수민 기자
suminyoon122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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