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내 갑질, 이대로 괜찮을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상사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제보 이메일의 내용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폐쇄적인 공간에 묶여 괴롭힘에 시달리는 이들은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지난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아래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됐지만, 그 이름이 무색할 만큼 직장 내 괴롭힘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도, 괴롭힘도 우리 몫인가요?”
괴롭힘에 병들어 가는 노동자들

 

직장 내 괴롭힘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 같은 존재다.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만 20~64세 남녀 1천500명 중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은 73.7%에 달했다. 조사 결과 대표적인 괴롭힘 사례로는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부당하게 낮게 평가하는 경우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 힘들거나 과도한 업무를 주는 경우 ▲폭언·욕설·폭행 ▲공개적인 모욕 ▲사적 업무 지시 등이 있었다. 상당수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불합리한 괴롭힘을 경험해봤다는 뜻이다.

하루의 상당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자살 사망자 수 1만 3천216명 중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사망한 사람은 487명이었다. 또한 2020년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1천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괴롭힘 피해자의 35.1%는 두통·소화불량 등 신체적 피해를, 25.5%는 우울증·대인기피증 등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이에 지속적인 문제가 제기되자 지난 2019년 7월 16일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기존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징계하기 위한 조처들을 새로이 마련한 것이다. 일련의 법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됐다.

하지만 법 제정 이후에도 직장 내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20년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이상희 교수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의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노동자의 71.8%가 ‘직장 내 괴롭힘 문화에 변화가 없다’고 답한 반면 ‘괴롭힘이 줄었다’고 답한 노동자는 19.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괴롭힘이 늘었다’고 답한 비율도 8.4%에 달했다. 일례로 2020년 골프장 캐디, 지난 2월 통영해양경찰서 해양경찰관의 극단적 선택은 최근까지도 직장 내 괴롭힘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명무실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그 이유는?

 

괴롭힘 금지법 제정 이후에도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법 자체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에서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용자 주도로 사내에서 조사 및 조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주체는 사용자나 상사인 경우가 많다. 즉 가해자가 스스로 조사하고 징계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직장갑질119의 오진호 집행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사용자 혹은 상사가 권력 관계를 이용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괴롭힘 주체가 사용자가 아니어도 여전히 문제가 존재한다. 신고를 받은 사용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괴롭힘 금지법 중 하나로 제정된 「근로기준법」 제76조 3항은 사용자의 ▲사건 조사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피해복구 지원 ▲행위자에 대한 징계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괴롭힘을 예방하고 조치를 취하는 모든 과정이 사용자의 의무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결국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지난 2020년 7월부터 4개월간 접수받은 442건의 직장 내 괴롭힘 가운데 이를 사용자에게 신고한 건수는 86건, 신고했음에도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등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건수는 66건이었다. 신고한 피해자 중 76.7%는 사용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셈이다. 오 집행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의 위치가 누구보다 중요하지만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행 괴롭힘 금지법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전혀 없다. 다만 직장 내에서 자체적인 징계 조치를 권고할 뿐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폭력, 협박, 명예훼손 등 다른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직장 내 괴롭힘’만으로 가해자를 형사상 기소하거나 처벌할 방법은 없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총 7천95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종결된 사건 중 1.18%만이 고소·고발 등으로 검찰 송치됐고, 16.47%는 개선지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취하, 혹은 기타로 분류돼 종결된 경우가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이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 셈이다.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혁 교수는 “근로조건이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노동법의 역할”이라며 “괴롭힘에 관한 노동법의 적극적 역할과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조차 먼 나라의 이야기인 노동자도 존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특수형태근로종사자(아래 특수고용직) ▲하청 근로자가 대표적이다. 괴롭힘 금지법은 애초에 「근로기준법」 법령 개정을 통해 구현된 것이므로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은 사업장, 특수·간접 고용 노동자들은 해당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오히려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인 것이다. 오 집행위원장은 “괴롭힘이나 갑질이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는 근로자들이 적용 범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20년 안타까운 선택을 한 골프장 캐디 배모씨 역시 골프장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적용받지 못했다.

 

악습의 고리
확실히 끊으려면

 

이에 전문가들은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러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제190호 「폭력과 괴롭힘 협약」 제10조(d)는 ‘일의 세계의 폭력과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적절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한 예로 호주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해, 자살 충동 등을 초래한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10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1월 인권위는 이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에 법 개정을 권고했으나 고용노동부는 ‘가해자 처벌규정은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며 반대했다. 이에 권 교수는 “처벌이라는 제재수단이 함부로 남용돼서는 안 되지만 고의뿐만 아니라 과실이라 하더라도 반복적인 괴롭힘이 이뤄졌다면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사용자의 예방 의무를 강화하고,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 적용할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르웨이의 경우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하면 이를 위법행위로 간주해 최대 2년의 징역 혹은 벌금을 부과한다. 오 집행위원장은 “법적으로 부과된 사용자의 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처벌이 필요하다”며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조항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박주영 부원장 역시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 사업장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입법적 방치”라며 “사업주의 괴롭힘 행위에 대한 형사 처분 규정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피해자가 신고 이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월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경험자 중 62.9%는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회사가 신고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을 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지만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피해자 보호조치가 열악할수록 직장 내 괴롭힘을 겪는 노동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A씨는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됐다”며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만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괴롭힘에 고통받는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나아가 법을 넘어서 수직적 조직문화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선 이상희 교수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의 현황과 과제’에서 벌인 설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증가한 이유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문화’ 탓이라는 응답이 53.6%로 가장 많았고 ‘신고 체계 및 징계 규정 미비’라는 51.2%였다. 제도적인 개선과 더불어 건강한 직장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접수된 진정 건수 중 폭언이 44.8%, 부당인사가 20.9%, 따돌림이 14.8% 순으로 많았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이 중 39%를 괴롭힘이 아니거나 법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즉, 법의 요건을 충족하는 명백한 갑질이 아닌 미묘한 갈등으로 간주한 것이다. 오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직장은 여전히 군대, 유교,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있어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사회문화적인 요소로 인해 괴롭힘이 근절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법적 규제와 더불어 조직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금지’보다 ‘방치’에 가까운 현실이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 역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사내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괴롭힘 문제를 바라보고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그림 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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