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지방대 육성 정책을 파헤치다

이른바 ‘지방대 위기’가 가시화됐지만 누구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쟁 논리를 내포한 대학 구조조정 정책과 지방대 역량강화 사업은 오히려 지방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지방대는 그저 경쟁력 없는 대상인 걸까. 아니라면 위기의 탈출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The Y』가 역대 지방대 육성 정책의 허점과 시사점을 파헤쳤다.

 

대학 구조조정,
전체 대학 대상으로 진행해야

 

학령인구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 2020년 대학교육연구소(아래 대교연)에서 발표한 보고서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안」에서는 대학 입학 가능 인원이 2020년 45만 7천 명에서 2024년 38만 4천 명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교연 임은희 연구원은 “학령인구가 빠르고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2000년대부터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의 정원과 구조를 조정해왔다.

역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시장 논리에 기반한다.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경쟁에서 뒤처진 대학은 자연스럽게 퇴출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학평가 결과와 정원 감축 실정을 재정지원 사업에 반영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김병국 정책실장은 “등록금 동결 이후 정부 재정지원에 대한 대학의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입학 정원을 줄이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제한하는 식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매년 대학평가를 진행한 후 하위 15% 대학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및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해 재정사업 및 학자금 대출을 제한했고, 정원 감축을 이끌어 냈다. 박근혜 정부 또한 지난 2014년 1월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 발표 후 각종 재정지원 사업에서 정원 감축 정도를 반영했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으로 감축된 인원은 주로 지방대에 집중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당시 총 입학정원 감축 인원 중 78.5%가 지방대 정원이었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76.7%가 지방대 정원이었다. 지방대가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정원을 대폭 감축한 이유는 이들이 정부 재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지방대는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선 교육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의 구조조정”이라고 이야기했다. 실제 지난 2017년 교육부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와 재정지원 사업을 연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재정지원을 빌미로 인원 감축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며 비판했다.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김영철 교수는 “결국 경쟁력 없는 대학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조조정을 당하는 꼴”이라며 “‘자율적’이라는 단어가 가진 양면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자율’을 외치치만 사실상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애초에 대학 차원의 자율적인 인원 감축은 실현될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교육부는 지난 2019년 「대학혁신 지원 방안」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정원 감축 없이 대학이 스스로 판단하여 수립한 계획을 통해 ‘적정 규모’를 실현하도록 지원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임 연구원은 “대학 규모가 클수록 줄세우기식 평가에서 유리하고, 학생 수가 많을수록 등록금 수입이 높다”며 “대학 입장에서 적정 규모는 ‘최대한 많이’”라고 주장했다. 학생 등록금이 주요 수입원인 대학 입장에서 자체적으로 인원을 감축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입학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균형발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국 대학의 정원을 고루 줄이는 방식이다. 임 연구원은 “정원 감소를 통해 수도권 대학은 교육의 질을 높이고, 지방대는 정원 미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전 지역 대학이 이득을 보는 윈윈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대교연이 발표한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안」에 따르면 학생 1인당 도서 수나 도서관 좌석 등 일부 교육여건은 수도권대학이 지방대학보다 열악하다. 특정 시설에 많은 학생이 몰리다 보니 학생 개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드는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수도권 대학 인원이 감축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학습 여건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김 교수는 “수도권 대학과 정부는 지방대학의 위기를 방관한다”고 비판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수도권 대학도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기득권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불균형에 따른 구조적 문제까지 고려한 전체 대학 인원 감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방대 역량강화사업,
역별 맞춤형 사업에 집중해야

 

지방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원을 ‘감축’하면서도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이에 역대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지방대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임 연구원은 “사회수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개별 사업들이 꾸준히 존재해 왔다”며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의 기틀이 사회수요에 맞춰 개편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지방대학 특성화 산업을 하나로 묶어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으로 개편했다. 지난 2016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사회수요에 맞는 교육을 위한 정책 방안 연구」는 해당 사업이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한 대학 역할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역사회 및 산업의 수요에 맞는 인재 육성을 통한 지방대 위기 해결을 골자로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육성 사업이 단기성 프로젝트에 그친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의 일환인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과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의 기간은 3년이었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대학혁신 지원사업의 기간도 3년에 불과하다. 김 실장은 “교육을 바꾸기 위해선 장기적 과정이 필요하다”며 “사업이 3년 만에 종료돼버리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이경준 교육선전실장은 “지원 기간이 끝나면 기존에 하던 것들이 모두 종료돼 인프라 활용이 불가능해진다”며 “사업 종료 이후에도 학교가 독립적으로 실행할 능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사업의 실효성 측면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지역사회와의 상생이라는 목적과 달리 실제 사업 내용은 동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각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채 공학 계열 중심의 획일적인 학사개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이공계에 대한 집중화가 두드러졌다”며 “각 계열 간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 또한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이 공학 계열 학과들로 대거 전환됐다”며 “앞선 지방대 특성화 사업에 맞춰 특성화 정책을 추진하던 대학들이 방향성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이는 결국 지방대 자체의 경쟁력을 육성한다기보다는 사회의 필요에 맞게 지방대를 바꾸려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부의 시장 논리가 지방대 역량강화사업에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지역사회와의 상생이라는 본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지역별로 맞춤형 산업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지방 정부, 지방대학, 그리고 지역사회가 거버넌스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시행 단계에 들어선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이 그 대안이다. 이 사업은 최초로 개별 대학이 아닌 지방 정부를 통해 시행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각 지역의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공유형 대학을 구축하고, 지역 특화 산업 분야의 일자리까지 연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부터 추진 중인 ‘충청북도 바이오헬스산업 지역혁신 플랫폼’은 충북대를 비롯한 15개 대학을 중심으로 제약 바이오, 정밀 의료·기기, 화장품·천연물 등 3개 분야에 대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당 정책을 통해 지방대학이 지역사회의 새로운 동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방대의 위기는 곧 지역의 위기

 

지방대의 위기는 지역 불균형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2019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자 지방대학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주요 타깃이 됐다. 이와 관련해 임 연구원은 “지역소멸 현상은 지방대학 육성 정책을 포함해 그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수도권 중심의 경쟁력 강화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특히 사학 의존도와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현재 구조가 학령인구 감소라는 대외적 변화와 맞물릴 경우, 지방대의 위기와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가속화 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역고용동향 브리핑」에 의하면 전남, 전북을 포함한 지방 11개 지역에서 수도권으로의 청년층 순유출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인재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은 현재 지역 불균형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 소멸 지수 2019」에 의하면 전국 기초자치단체 228개의 42.5%가 소멸 후보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청년층 유출로 인해 지역의 인적 역량이 약화하고, 생산성이 하락하면서 수도권과 지방 간 삶의 질의 격차는 심화하고 있다.

지방대학의 위기가 대학을 넘어 사회 전반의 문제로 번지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형적인 현재 구조에 대한 첫 번째 대안으로는 공영형 사립대학이 있다. 현 정부의 공약이기도 한 공영형 사립대학은 지방 국립대에 투자를 강화하고, 일부 사립대를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해 육성하는 정책이다. 두 번째 대안으로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이 있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은 정부가 전 사립대의 재정의 절반 이상을 지원해 등록금에 의존해온 대학 재정의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책이다. 공영형 사립대와 정부책임형 사립대는 적용 대상의 범위에서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지역 불균형 현상을 해결한다는 방향성은 같다.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을 해소하고 지방대를 육성하기 위한 또 다른 정책으로는 ‘지방인재 우대정책’이 있다. ‘지방인재 우대정책’은 해당 지역에 있는 대학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졸업 예정인 사람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제도다. 지방인재 우대정책은 해당 지역 출신이더라도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면 우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에서 역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우대’정책마저도 수도권 쏠림 현상을 억제하지 못한다. 실제 공공기관 지방인재 채용제와 지방인재 채용목표제 모두 지방인재 채용 비율 목표치에 미달하는 상황이다. 임 연구원은 “지방인재 우대정책은 헌법이 보장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차별 해소 정책으로 봐야 한다”며 “수도권을 위한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면서 해당 정책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지방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격차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에 입각한 연대 정신을 펼쳐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권 대학 간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인정하고, 그 격차로 인해 발생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이 실장은 “현재 수도권에 비해 지리적으로 불리한 지방권 대학에 상대적으로 완화된 평가지표를 적용하는 것이 격차의 원리를 적용한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원리를 반영한 적극적 조치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현재 지방대는 경쟁력 없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지방대의 위기 이면에는 시장주의와 경쟁 논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담겨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 그리고 이에 따른 지방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방대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식을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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