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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핑] 국민 의식이 ‘건강한 법개정’으로 이어지려면국민정서법 이면의 장단을 짚어보다
  • 김서하 김채영 기자
  • 승인 2021.03.08 01:36
  • 호수 63
  • 댓글 0

지난 1월, ‘정인이 사건’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생후 16개월 된 아기가 아동학대로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국민적 공분은 해시태그 운동, 국민청원 등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 2월 8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아래 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아동학대 형량을 강화한다는 것이 본 개정안의 요지이지만, 아동학대 문제 해결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국민 여론에 힘입어 만들어진 ‘국민정서법’, 이대로 괜찮을까요. 『The Y』가 국민정서법을 둘러싼 쟁점과 시사점을 살펴봤습니다.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 있다?
국민정서법, 대체 뭐기에

미디어에서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민정서법이 대체 어떤 법이기에 우리나라의 최고법 위에 있다는 것일까요. 국립국어원은 국민정서법을 “어떤 행위에 대해 국민이 정서적이나 심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국민정서법은 정식 법률용어는 아니지만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사용어로 활발히 사용돼왔습니다. 특히 국민 여론을 통해 촉발된 이슈를 바탕으로 법체계에 변화가 생긴 사례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스쿨존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지난 2020년에는 ‘민식이법’*이 시행됐죠. 지난 2008년 경기도 안산시에서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이 심신미약을 주장해 감형된 것을 계기로 여러 조두순 관련법**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정서법’이라는 개념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 교수는 “국민 정서는 유동적인 개념이기에 명확하기 정의하기 어렵다”며 “여론은 특정 방향으로 유도되거나 왜곡될 수 있어 국민정서법을 인정하는 것에 매우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국민대 법학과 전해정 교수는 "법관도 사법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개인적 경험과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며 국민 정서를 비이성적으로 보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감성이 이성과 반대된다는 단순한 논리에 따라 국민 정서를 법적 판단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동국대 법학과 김상겸 교수는 “국민 정서라는 표현은 국민의 판단을 감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언론에서 ‘국민정서법’이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국민 여론이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원한다’와 같이 표현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민정서법 논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국민의 뜻에 따라 법이 바뀌어야 한다’ 혹은 ‘법체계가 여론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정서법’의 양면을 살펴봅시다.

‘국민’ 의식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다

법은 원칙적으로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지만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새로이 제정, 개정, 폐지되기도 합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국민 의식이 변화해 법이 바뀐 고전적인 사례로 호주제 폐지가 있습니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제도로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법에 도입됐습니다. 그러나 호주제는 현대 가족형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부계 혈통을 바탕으로 하며 이혼 및 재혼 가구에게 불합리한 조항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후 2000년대 초반 본격적인 폐지 운동이 이뤄졌고 마침내 지난 2005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전 교수는 이 호주제 사례를 “국민이 직접 법을 모니터링하는 참여자 역할을 한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전 교수는 “어떤 감수성으로 사건에 반응하는지에 따라 판단 결과가 달라진다”며 “사법판단자 스스로 감수성을 갖고 사건을 대할 때 보편적인 국민 정서와 결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8년 11월 29일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죠. 그리고 같은 해 12월 7일에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 두 법안은 우리가 흔히 ‘윤창호법’으로 알고 있는 법안입니다. ‘윤창호법’ 역시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공론화된 사례입니다.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를 지녔죠. 김 교수는 이 법에 대해 “음주운전 처벌이 강화됨으로 인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순간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국민 정서로 인해 개정된 법이 범죄 억제력을 일정 수준 높일 수 있다는 것이죠.

최근에는 SNS 발달로 국민들의 정치 참여가 활성화되며 이러한 순기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국민의 공분을 샀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SNS를 활용한 국민의 움직임은 지난 2020년 12월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의결하는 데에 기여했죠. 연세대 사회학과 백혜림씨는 “개인의 활동이 제도권 정치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개인의 정치적 효능감이 올라갔다”고 밝혔습니다. 연세대 사학과 김예지씨는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국민정서법의 순기능”이라 말했죠. 이처럼 국민정서법은 국민 참여를 통해 시대착오적인 법 문화를 개선하고 법체계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의의를 갖습니다.

여론 의식한 입법
부작용으로 이어지기도

국민 정서는 제도권 정치의 변화와 직접 민주주의 실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국민 정서의 부작용을 간과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국민 정서는 상식적인 동시에 즉각적·가변적이기 때문이죠. 하 교수는 “국민 정서는 실체가 불분명하므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차병직 변호사 또한 “국민 정서는 그때그때 일어난 현상에 대한 즉각적 반응”이라며 “표본조사를 거치지 않았기에 사회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시적 반응을 토대로 제정·개정된 법은 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응보 감정에 따른 분풀이용으로 형성되므로 가해자 처벌 강화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차 변호사는 “범죄자의 객관적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형벌을 부과하는 경우가 존재한다”며 “책임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다른 유사한 범죄의 형법과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실제로 우리 형법은 같은 살인죄라도 고의살인은 5년 이상, 과실치사는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식이법은 어린이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망했을 경우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라도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합니다. 하 교수는 “다른 법체계와 내용이 모순되는 체계 정합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처벌 강화가 범죄 예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시행됐음에도 이듬해 1월부터 8월까지 음주운전 사고 건수는 전년 대비 16.6% 증가했습니다. 차 변호사는 “처벌 강화는 동종의 범죄를 현격히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개인 처벌에 치중하기보다 범죄의 원인을 찾아 구조적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정서법이 실제 문제 해결에 필요한 논점을 벗어난다는 지적입니다.

이로 인해 국민정서법이 오히려 국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민식이법 시행 하루 만에 해당 법안의 개정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했으며 35만 명이 이에 동의했습니다. 충분한 고민 없이 ‘여론 잠재우기’ 식으로 제정된 법안의 허점이 드러나며 국민 정서가 뒤바뀐 것이죠. 김씨는 “민식이 사건 당시 여론에 좌우돼 법안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부족했고 법안이 지나치게 빠르게 제정 및 시행됐다”며 “법 제정 등의 대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김 교수 또한 “국회가 국민 정서의 동향에만 관심을 쏟아 발생한 부작용”이라며 “법을 제정할 때는 법 적용 이후의 결과까지 고려해 신중하게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목소리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 만큼 강력합니다. 그러나 특정 사안에 대한 피상적 접근이 대부분인 만큼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합니다. 국민 정서를 반영하면서도 체계성과 실효성을 갖춘 건강한 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 모두의 숙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민식이법: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에 등에 관한 법률을 일컫는다.

**조두순 관련법: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포함한다.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김서하 김채영 기자  seoha03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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