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사회 외치기 전, 공정의 정의부터 논의해야

“국민의 삶 전반에 존재하는 불공정을 과감하게 개선하여
‘공정’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은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공정’을 37번 언급하며 공정 사회를 향한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 새로운 의제로 떠오르자 국민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공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정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다르지만, 정치권은 단일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공정 사회를 부르짖기에 앞서, 과연 청년 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공정’이란 무엇인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
무엇이 문제인가

 

공정의 사전적 정의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개인마다 옳고 그름에 관한 기준이 다르기에 공정은 주관적인 가치 판단을 내포한다. 따라서 ‘공정’의 개념은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공정을 ‘평등’과 ‘비례’라는 두 모순되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평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보편적 복지 등을 우선시한다. 반면 비례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하이트는 저서 『바른 마음』에서 “보수파는 공정을 비례의 원칙으로 이해하고, 진보파는 평등의 원칙으로 이해한다”며 공정을 바라보는 두 시각이 있음을 드러냈다. 이는 공정 담론이 일원화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비례의 원칙과 능력주의라는 좁은 영역만을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이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TV조선 뉴스7 ‘앵커가 고른 한마디’에서 앵커는 “기회는 평등하되 결과는 평등해선 안 된다”며 “노력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공정”이라 전했다. 또한 지난 6월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에서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은 “현 여당은 어떤 놀이기구를 탈 때는 줄을 안 서도 되고, 다른 어떤 놀이기구를 탈 때는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말한다”며 “본인들이 정의롭고 선하기에 과정이나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독단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는 경쟁 과정상의 공정, 노력에 따른 합당한 결과로서의 공정을 전제로 한 발언이다. 기성 정치권과 언론은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집합적 심성이 비례의 원칙에 따른 보상에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비례의 원칙과 능력주의로 일원화된 공정 담론이 진정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공정의 개념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정을 하나의 거시적 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양한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청년이 말하는 공정

 

『The Y』는 각기 다른 청년들을 만나 공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래는 19학번 대학생 양모씨, 연세대 경제학과 17학번 김현동씨, 전국금속노동조합 청년조합원 김규백씨, 새내기 직장인 장모씨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Q. 공정이 화두가 된 이슈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양씨: 건강보험 혜택에 관심이 쏠린다. 이 혜택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는지 갑론을박이 계속된다. 또한 건강보험비와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 관광’을 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유튜브 크리에이터 국가비씨는 해외 장기체류자로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았음에도 혜택을 받으려 입국해 논란에 휩싸였다.

현동: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장학금 특혜 논란이다. 여러 대학의 총학생회(아래 총학)가 조국 전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입시 불공정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경북대 총학의 성명이 기억에 남는다. 경북대 총학의 성명처럼 사회 전반의 불공정 문제를 재고할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조국 전 장관 사퇴를 둘러싼 편 가르기로만 이어져 아쉬웠다.

규백: 인천국제공항(아래 인국공) 정규직 전환 사태다. 개인적으로 공정과 직접 연관된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잘못된 고용 형태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문제의 본질은 동일한 업무를 해도 임금이나 고용 안정 등에 있어 차별받는 데 있다.

장씨: 취업을 하며 공정 채용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정부가 공공부문의 공정 채용을 목표로 여러 방안을 마련했지만, 채용 비리가 계속된다는 점이 의아하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공정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개인적으로 인국공 사태를 바라보며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Q. 개인적으로 경험한 불공정이 있다면.

양씨: 대학생 입장에서 소득분위에 따른 장학금 제도가 불공정한 것 같다. 금전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만, 단순히 부모의 소득분위로 장학금 수여 여부를 결정하는 점은 아쉽다.

현동: 개인적으로 경험한 불공정은 없다. 다만 인국공 사태를 보며 우리 세대가 인식하는 공정이 기성세대와 매우 다르다고 느꼈다. 청년은 공정을 능력주의에 전제해 인식하는 것 같다. 청년이 왜 이러한 공정을 이야기하게 됐는지 원인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규백: 공정보다는 ‘평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성적에 따라 인문계 혹은 특성화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결정됐고, 선생님은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할 학생들을 차별 대우했다. 이때 처음으로 불평등을 실감했고 지금도 공정보다 평등에 관심이 많다.

장씨: 취업을 하며 지역인재 채용 의무화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기관마다 약 30%까지 해당 지역 또는 지역의 대학 출신자를 채용해야 한다. 오히려 수도권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인 것 같다.

 

Q.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양씨: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돼야 한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사회적 약자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를 다방면에서 바라보며 공정을 찾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현동: 결과의 공정과 절차의 공정이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과정에서의 공정만 강조한다. 그리고 과정에서의 공정이 결과의 공정과 대립한다고 본다. 결과에서 불평등을 시정해주면, 경쟁 과정의 공정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함께 이루는 것은 가능하다. 사회적 약자의 상황을 시정하는 제도가 선행된 후 정당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면 된다.

규백: 공정보다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내국인과 외국인 등의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된다. 차별 속에서 또래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로 일하다 죽어간다. 임금, 복지뿐 아니라 생명까지 차별받는 일이 반복된다.

장씨: 상대적인 개념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공정한 사회는 불가능하다. 최대한 많은 이들의 상황을 개선해주는 것이 공정이 아닐까 싶다.

 

Q.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방안은.

양씨: 모두가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고위직 직군에 남아 있는 학연, 지연, 혈연 관련 문제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현동: 공공성을 추구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성취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적 배경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규백: 평화롭고 활발한 논의가 오가야 한다. 토론과 숙의를 위해 문화로서의 민주주의가 전제돼야 한다. 학교, 일터, 가정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 노동자 입장에서 직장 내 민주주의 실현을 강조하고 싶다. 일하는 사람과 일하게 될 사람들의 권리가 신장돼야 한다.

장씨: 직장인 입장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이 제고됐음 한다. 우리나라 기업 중 중소기업 수가 99.9%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는 사회적 자원이 계속 대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내일채움공제*와 같은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

 

획일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공정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이처럼 청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정을 인식한다. 사회경제적 배경은 서로 다른 경험과 이해관계로 이어지며, 이는 공정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다.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공정에 대한 서로 다른 함의를 지니는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일컫는 ‘청년의 공정’이 다양한 청년 중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특정한 청년의 공정이 옳다고 단정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공정을 연구해온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김범수 교수는 “공정의 의미를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며 “공정은 기본적으로 규범적 성격의 개념”이라 설명했다. 규범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가치 개입이 불가피하며, 정의에 대한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공정 개념은 현대 정치 철학의 중요한 논점이다. 김 교수는 “결과의 보정을 통한 불평등 완화, 기회의 균등한 분배, 경쟁 절차의 공정 등 학자마다 입장이 다르다”며 “구조적,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공정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다. 기회와 결과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넘어, 분배에 영향을 주는 억압적 요소를 규명하는 것을 공정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처럼 공정은 하나의 측면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공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다양한 공정의 기준 속 중첩된 부분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사회 구성원이 최대한 인정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회 균등 전형’은 공정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사례다. 기회 균등 전형은 지리적, 경제적으로 대학 입시에 불리한 교육 취약 계층을 우대해 선발한다. 이는 경쟁 절차의 공정성 측면에서 불공정한 요소가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기회 균등 전형을 ‘용인 가능한 수준의 불공정’으로 합의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정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며, 용인 가능한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넓혀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합의되지 않은 공정은 ‘동상이몽’을 초래한다. 모두 공정을 원하지만, 각자 다른 사회를 그리는 것이다. 공정은 우리 사회의 선결과제로 부상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제대로 묻지 않았다. 사회 구성원이 어떤 공정을 원하며, 어떤 기준으로 공정을 판단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조차 찾기 힘들다. 청년이 원하고 사회가 합의하는 공정은 무엇인가. 다양한 공정의 목소리를 반영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일채움공제: 중소기업 사업주와 핵심인력이 공동으로 정립한 공제금을 중소기업 재직자에게 지원하는 제도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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