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찬 교수 (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요즘 대학생들은 바쁘다. 쏟아지는 과제와 실험 실습, 각종 퀴즈와 시험 준비에 늘 발걸음이 재다. 여기에 ‘가성비’가 최악인 그룹 과제라도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종교를 찾는다. 제발 ‘공신’을 파트너로 낙점해 주옵소서. 불성실한 조원은 연락이 닿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실력보다 운이 좌우하는 순간이다. 사실 캠퍼스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분주함의 끝은 대부분 학점을 향한다. 학점이 좋아야 취직도 잘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점은 아주 다양한 평가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학생들의 관심은 이력서에도 닿아있다. 각종 기술과 자격증, 수상 경력, 인턴 경력 등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애쓴다. 방학 때 농활을 다녀오고 무전여행을 했다는 부모님의 말씀은 전래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방학이야말로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AI 시대, 프로그래밍 언어도 필수다. 이제 겨우 파이썬에 입문했는데 같은 과 동기는 빅데이터 분석까지 한다는 소문이라도 접하면, 초조함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이쯤 되면 고3 때 ‘사당오락’을 소환해야 한다. “지금은 공부만하고, 대학가서 놀아라”라는 부모님 말씀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날지 모른다. 이 ‘희대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말이다.

정신없이 바쁘고 긴장된 삶. 그 뒤를 어김없이 따라오는 것은 스트레스다. 사실 스트레스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유스트레스’는 우리를 적당히 긴장시키고 집중력을 높여줘서 결국 삶에 도움을 준다. 반면에 ‘디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불편함과 해로움을 주는 나쁜 스트레스다. 그렇다면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예측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이다. 교수가 기말고사를 예고하면서 시험 시간과 범위, 그리고 예제까지 친절히 안내한다면, 시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때 난이도도 적절하다면, 감당할 만한 스트레스, 즉 유스트레스가 된다. 하지만 교수가 시도 때도 없이 퀴즈를 내 예측가능성을 허물거나, 박사나 풀 수 있는 문제를 내서 통제할 수 없다면, 디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문제나 도전에 직면할 때 예측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을 스스로 경주해야 한다. 기말고사의 예를 적용한다면, 학생들은 교수나 조교를 찾아가 면밀한 질문 등을 통해 시험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관련 준비를 미리 시작함으로써 통제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Walter Cannon)에 의하면, 나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우리의 신체는 위협을 느끼게 되고, 자동적으로 싸우거나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태세, 즉 ‘투쟁-도피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예컨대 길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싸우거나 도주하는 선택밖에 없다. 어느 경우든 필요한 것은 팔·다리의 ‘힘’이다. 대근육 쪽에 에너지를 급히 몰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폐는 빠른 호흡으로 더 많은 양의 산소를 흡입하고, 간은 연료인 포도당을 부지런히 내보내며, 심장은 박동수를 늘려 에너지를 신속히 전달한다. 호랑이와의 혈투 중에는 소화를 시킬 필요도, 또 피부를 뽀송뽀송하게 만들거나 머리카락을 자라게 할 필요도 없으니, 소화·배설기관, 피부 등에 가는 혈류는 대근육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한다. 또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 판단력을 높이기 위해 뇌는 최대한 각성시키고, 시각과 청각의 민감도도 최대치로 올린다.

우리는 길을 오갈 때 더 이상 호랑이를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호랑이와 같은 존재, 즉 호랑이 선생, 호랑이 상사, 호랑이 부모는 여전하다. 이들이 으르렁 화를 내면 우리 몸에서는 과거 조상들이 호랑이를 마주했던 때와 똑같은 반응이 일어난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은 두근거린다. 뇌가 각성해 잠을 잘 수 없고, 귀는 예민해져 아주 작은 소리에도 버럭 화가 치민다. 에너지가 갑자기 몰린 팔·다리는 붓고 저리며, 반대로 혈류가 빠져나간 위는 체기를 유발하고, 피부는 윤기를 잃게 되며, 탈모가 시작된다.

앞으로는 이 같은 신체 증상을 경험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우리 조상들을 위험에서 구한 생존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대신 호랑이와 맞닥뜨린 것만큼 내가 많이 놀라고 힘들어 한다는 것에 주목하자. 놀란 아이 달래듯 스스로를 이해하고 한껏 안아줘야 한다. 아무리 달래려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사람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어떨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내 탓이 아니라 이상한 생존 DNA를 물려준 조상 탓 아닌가. 이때 전문가의 조언이 크게 도움 되기도 한다. 학교 상담센터는 항상 든든한 우군이다.

오늘도 대학생들은 바쁘다. 하지만 그 바쁨이 점차 디스트레스로 느껴지고 신체 여기저기서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한다면, 잠시 멈춰 서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자아가 힘들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디가 어떻게 힘든지 진지하게 물어보자. 인생은 짧다고 하지만, 길기도 하다. 미국의 49대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Joe Biden)은 정계에 입문한 지 50년, 대선에 첫 도전을 한 지 32년 만에 꿈을 이뤘다. 우리 나이로 79세에 말이다. 이제 경쟁과 조급함에서 비롯된 바쁨은 뒤로 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와 동행하는 바쁨이 되기를, 더 나아가 혼자가 아닌 서로의 기쁨을 일구기 위한 바쁨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모든 학생들에게 평안과 축복이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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