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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이 아니라 탈출이에요, 우리가 갈 곳은 없나요?‘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제도 및 인식개선 이뤄져야
  • 정영은 기자
  • 승인 2020.11.15 23:26
  • 호수 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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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꿈은 비싸다. 부모 없는 애한테는 더 비싸진다.
가상한 노력만 가지고는 절대로 못 산다. 내 꿈은 가격이다.”

드라마 『인간수업』(2020)은 가정 밖 청소년의 삶을 다뤄 화제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가정 밖 청소년은 ‘가출 청소년’ 내지는 ‘비행 청소년’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들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반항심에 의한 가출?
어쩔 수 없는 탈출

지난 2017년 여성가족부는 가정 밖 청소년을 약 27만 명으로 추정했다. 청소년이 탈가정하는 주된 이유는 가족 간 갈등이나 폭력 때문이다. 2018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가정 밖 청소년의 실태와 자립지원 방안 연구’에서 조사 대상 청소년(730명)의 49.7%가 가출의 이유로 ‘가족과의 갈등’을, 24.5%가 ‘가정폭력’을 꼽았다. 우리대학교 김재엽 교수(사과대·가족복지)는 “가정 밖 청소년이 집에서 나온 이유는 대부분 가정폭력이나 가정 내 불화 등으로 집 안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가정에서 받아야 할 보호와 사랑, 건강하게 성장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정 밖 청소년은 사춘기, 반항심 등에 의해 집을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가출은 살기 위한 ‘탈출’에 가깝다.

안전을 위해 거리로 나왔지만 거리 또한 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김 교수는 “가정 밖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불평등을 경험하는 약자”라며 “의식주를 포함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온전한 교육을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가정 밖 청소년이 집 밖에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보호시설에 입소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청소년 쉼터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 일시적으로 머물 공간을 제공하며 학업, 자립 등을 지원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쉼터 입소 또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민법 제914조는 미성년자의 거소지정권이 부모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친권자인 부모에게 미성년자 자녀를 보호하고 지도할 권리 및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정을 피해 밖으로 나온 청소년에게 해당 규정은 오히려 폭력적이다. 제주여자단기청소년쉼터 고민좌 소장은 “쉼터 입소 시 아동학대를 제외하고는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스스로 나갔기 때문에 고생을 해봐야 한다며, 아이를 입소에 동의해주지 않는 부모도 있다”고 말했다. 가정 내 불화 등을 피해서 집을 나온 청소년이 부모의 동의를 받고 쉼터에 입소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같은 문제에 시달리거나, 거리를 배회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절대적인 시설의 수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쉼터는 전국에 125개 있다. 지난 2019년 기준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은 3만 2천402명으로 전체 가정 밖 청소년 중 약 27%에 해당한다. 시설에 입소하지 못한 나머지 73%가량은 거리를 배회하는 셈이다. 어렵게 시설에 들어가도 오래 머물기는 힘들다. 청소년 쉼터는 일시, 단기, 중장기로 구분돼 있다. 중장기의 경우 3년 정도 머무를 수 있고, 단기는 최장 9개월밖에 거주하지 못한다. 고 소장은 “청소년쉼터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또 단기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을 중장기 쉼터로 이관하는 데도 절차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설을 퇴소하는 가정 밖 청소년도 많다.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청소년쉼터 유형별·퇴소사유별 인원 현황’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청소년쉼터를 찾은 2만 9천256명 중 55.9%(1만 6천352명)가 청소년 쉼터를 무단이탈하거나 퇴소했다. 하지만 이들이 시설을 나와 어떻게 생활하는지 추적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쉼터를 퇴소한 청소년 중 추적이 가능한 비율은 41.1%에 불과했다.

집 나와서 돈은 없어, 어려서 일은 못 해
우리는 어떡하나요?

쉼터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에게 닥친 첫 난관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지난 2018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같은 연구에 따르면 가정 밖 청소년의 59.3%는 아르바이트를 포함해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하는 주된 이유로 ‘용돈 포함,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84%)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비행 청소년’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일해 본 가정 밖 청소년 중 약 20%는 구직 시 차별을 경험했다. 차별 이유로는 ‘집을 나왔다는 편견 때문’(31%)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희진 선임연구위원은 “가정 밖 청소년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집을 나온 것에 대한 편견에 부딪힌다”며 “취업이 거절돼 스스로 돈을 벌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미성년자라는 신분도 가정 밖 청소년에겐 걸림돌이 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만 15∼18세 아동은 부모·후견인의 동의를 받으면 아동의 건강·안전·윤리를 위협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일하려 해도 법에서는 ‘부모의 동의’를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합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소년은 불법적인 경로로 생계수단을 마련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 청소년은 이 과정에서 성매매·성폭력의 위험을 마주한다. 서울시 ‘가출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수도권의 가정 밖 여성 청소년 218명 중 18.3%가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성매매를 처음으로 경험한 나이는 평균 14.9세에 불과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관계자 A씨는 “가정 밖 청소년은 상대적으로 성매매로 유입되기 쉽다”며 “이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착취 목적을 가진 자들은 ‘가출팸’과 같은 무리에 잠입해 성매매를 권유하는 수법을 자주 사용한다. 고 소장은 “가정 밖 청소년이 숙식 제공을 빙자한 성매매 목적의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성매매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가정 밖 청소년은 생계형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전남 여수에서는 10대 청소년 4명이 전국을 돌며 40여 차례 고급승용차 등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입건됐다. 이들은 가정 밖 청소년으로 생활비가 필요할 때마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 밖 청소년 보호를 위한
지원 확대 및 인식개선 필요해

가정 밖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 대책은 가정폭력 등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청소년 가출의 주된 원인은 가정에 있다”며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에는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공교육 기관이 가정폭력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학교는 가정폭력 등 청소년이 겪고 있는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는 학교사회복지사가 비정규직이라 권한이 적은 점 등의 문제가 있어 청소년의 어려움을 잘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불가피한 이유로 탈가정한 청소년들을 보호할 사후 대책도 필요하다. 먼저 가정 밖 청소년 쉼터에 대한 지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가정 밖 아동·청소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아동가족복지 지출은 GDP 대비 0.8% 수준으로, OECD 평균인 3%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고 소장은 “운영비 책정 방식이 청소년 수에 근거한 것이 아닌 직원 수에 따른 산출방식”이라며 “운영비 책정 기준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시설에 대한 금전적 지원과 더불어, 가정 밖 청소년의 사회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2019년 서울연구원의 ‘홈리스 청소년 경로분석을 통한 정책제안’은 “가출청소년의 자립 과정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탈가정은 일탈로, 청소년은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김 연구위원은 “아직 가정 밖 청소년을 비행이나 일탈 청소년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집을 나올 수밖에 없는 청소년을 가정 대신 사회에서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 밖 청소년이 비행 청소년이라는 공식은 어느 정도 성립한다.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이들을 비행 청소년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를 그저 반항심 많은 청소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면 가정 밖 청소년이 설 곳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정에서 탈출한 청소년들의 쉼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정영은 기자
eh5586@yonsei.ac.kr

그림 민예원

정영은 기자  eh558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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