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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산재 국가’ 뒤에는 누가 숨어있나?진짜 책임자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 이어져
  • 고병찬 홍지영 기자
  • 승인 2020.11.01 20:24
  • 호수 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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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5.5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아래 산재)로 목숨을 잃는다. ‘최악의 산재 국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에 시민사회계는 15년 전부터 꾸준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중대 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진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주로 시민사회계를 중심으로 입법 논의가 이뤄져 왔지만, 최근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달성으로 정치권으로 공이 넘어갔다. 산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며 처벌을 넘어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루 ‘5.5명’, 사람이 죽어도 달리는
‘최악의 산재 국가’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최악의 산재 국가’다.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우리나라에서 산재로 사망한 사람은 2천20명, 산재보험을 적용받은 사람은 10만 9천242명이었다. 하루 평균 약 299명이 산재를 당하고, 5.5명은 사망에 이르는 셈이다. 특히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그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통계청 ‘2019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근로자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는 유럽 29개국 평균 1.95명이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5.2명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들 산재 사고의 대부분은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있었더라면 예방이 가능했을 추락이나 끼임과 같은 재래형 산재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산재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중 약 40%는 추락이 원인이었다.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활동가는 “이런 형태의 산재는 기업이 조금만 비용을 투자하면 쉽게 예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산재 사고가 특정 기업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7월 KBS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1~2019년 사망 1명 이상 또는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산재는 8천57건 일어났다. 이들 사고가 일어난 사업장 279곳에서 2회 이상 중대 재해가 반복됐고, 그중 60곳에서는 3번 이상 반복됐다. 사람이 죽어도 공장은 돌아가고, 위험은 제거되지 않은 채 또 다른 목숨을 노리고 있다.

이처럼 많은 기업이 노동자의 죽음을 예방하지 않고, 심지어 누군가 죽더라도 조치 없이 방치하고 있다. 그 원인은 기업의 책임 회피를 쉽게 허용하는 현행 제도에 있다. 기업은 ▲위험의 외주화 ▲미비한 처벌의 빈틈을 파고든다.

위험의 외주화는 산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대기업들은 위험한 업무를 하청 업체에 떠넘기고 있다. 안전조치가 제대로 된 사업장인지 확인하지 않고 외주를 맡겨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산재가 없는 사업장이 된 대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산재보험료를 감면받고 있다. 정우준 활동가는 “위험을 외주화하는 것은 안전 조치 의무를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자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라며 “그 피해는 온전히 위험한 일을 견뎌야 하는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그 최악의 결과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 사망사고의 책임자에 대해 형사처분이 이뤄진다 해도 그 수위가 약해 경각심을 조성하기에 역부족이다. KBS와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지난 2018년과 2019년 우리나라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9%, 벌금형은 49.5%였다. 그나마도 평균 형량은 9.3개월이었고, 평균 벌금액도 458만 원에 불과했다. 누군가 다치거나 죽도록 내버려 둔 죗값으로는 터무니없이 약한 처벌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중대 재해를 일으킨 ‘진짜’ 범인을 찾아라

▶▶지난 10월 2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시민사회계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의 행태를 비판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산재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인식을 바꾸고, ‘진짜 책임자’인 기업을 처벌함으로써 산재 예방에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2006년 4월 28일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개최한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계기로 제기됐다. 이 법은 안전 조치 및 보건 조치의 의무를 위반해 중대 재해가 발생한 법인에 1~20억 원에 달하는 벌금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사고 발생 사업자뿐 아니라 원청의 최고경영자에게 최소 3년 이상의 형을 구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에서 정의하는 중대 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3개월 이상이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1명 이상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사고를 일컫는다.

이 법은 중대 재해의 책임이 법인, 사업주, 경영책임자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안전 조치와 보건 조치를 소홀히 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해왔다. 법이 제정되면 산재 예방의 책임이 개인이 아닌 기업에 있다는 인식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정우준 활동가는 “故김용균 노동자 유가족이 사측으로부터 처음 들은 말은 ‘용균이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했다’라는 말이었다”라며 “산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드러내고 처벌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산재 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나 있던 원청 사업자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현재 하청 사업장에는 형식적인 안전관리책임자가 존재한다. 실질적으로는 원청에 안전 조치와 보건 조치에 관한 결정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 사고 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것은 결정 권한이 없는 이들의 몫이다.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최정학 교수는 “현장의 안전관리책임자는 어떠한 결정권도 갖고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산재 사건에서 처벌을 받는 것은 이들”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통해 구조적 책임자인 원청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기업의 산재 예방 조치를 끌어내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평가된다. 산재가 기업에 치명적인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정재현 활동가는 “우리나라에 산재가 만연한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경시하는 기업 문화 때문”이라며 “이 법이 생긴다면 기업들이 10만 원도 안 하는 안전펜스를 설치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26일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었다면? 판결 다시 보기 토론회’(아래 토론회)에서 ‘법률사무소 이유’의 오수진 변호사는 “이 법의 가장 큰 효과는 예방”이라며 “책임 주체와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현장에서도 보호 조치 의무를 다하고 중대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기업에 대한 처벌을 통해 산재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호소한다. 절박한 마음은 제정 운동 참여로 이어졌다. 토론회에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허영주 공동대표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직접적인 행위 위반자, 하급 관리자만을 처벌하고 있다”며 “최고 책임자를 형사처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발 방지대책”이라고 말했다. 지난 28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선전전에는 업무 과다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산재 인정을 받은 故김일두 노동자의 부인 박소영씨가 참석했다. 박씨는 “산재가 인정되면 원인 제공자인 기업이 처벌받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라며 “법이 제정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목적, 다른 방법론
정치권의 역할 중요해

한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은 필요하지만,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먼저라고 말한다. 산재 예방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관리·감독기관으로서 전문성을 바탕에 둔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영국의 경우 정교한 산재 예방체계 구축 이후 세계 최고의 산재 예방 국가가 됐다”면서 “이를 더욱 엄격하게 제재하기 위해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인과실치사법」을 10여 년간의 논의 끝에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우 교수는 산재 예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법 구성이 엉성해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기업에게 산재 예방에 대한 방향성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진우 교수는 “법이 기업에게 행동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산업안전보건법」만 정교하게 재구성해도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과도하게 높이지 않으면서 산재 예방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부터 강화할 것이냐, 예방 지침부터 강화할 것이냐 그 순서와 방법론에 대해 견해차가 존재하지만, 산재 예방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정재현 활동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주장하는 이유도 결국은 산재를 예방하자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시민사회계의 취지를 반영한다면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 산재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기업을 적극적으로 관리 감독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계와 유가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민동의청원에 의해 국회에 법안이 상정된 상태다. 그러나 정의당 외에는 이 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정당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법안만 상정되고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19·20대 국회의 모습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6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반대의 요지는 “법률안 제정 시 과잉처벌 우려로 기업의 경영 활동만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명을 기업의 이윤과 맞바꿀 순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 있는 자세로 산재 예방을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글 고병찬 기자
kbc1986@yonsei.ac.kr

사진 홍지영 기자
ji0023young@yonsei.ac.kr

고병찬 홍지영 기자  kbc198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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