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립서적,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우리는 어제 주문한 상품이 오늘 배달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전날 밤 먹고 싶은 음식의 재료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새벽 배송을 선택한다. 눈을 뜨면 문 앞에 놓여있는 재료를 이용해 늦은 아침 식사를 해먹을 때, ‘정말 좋은 세상이야!’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 편리함 뒤엔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움직이는 택배 기사가 있다. 새벽에도 일하고, 총알처럼 일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세상’일까.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택배 기사 4천여 명이 파업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분류 작업을 거부하기로 한 것이다. 택배 기사는 물류 터미널에서 택배를 구역별로 세분화하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작업에 근무시간 중 절반 정도가 할애된다. 그러나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이 시간은 급여로 환산되지 않는다.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공짜 노동’이 과로로 이어지는 상황에 택배 기사들이 ‘분류 작업 거부’라는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의 첫 페이지는 진짜 현실 속에서 택배기사를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택배기사인 필자는 ‘사람들은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물건을 정리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말한다. 문뜩 며칠 전 SNS에서 본 ‘현재 물류센터 상황’이라는 사진이 떠올랐다. 택배 상자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책은 독자를 사진 속으로 데려가, 물류센터 속 택배 기사의 한숨을 상상케 한다.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은 22년간 택배 일을 해온 기사가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아온 일상을 꾸밈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일화를 보면, 모두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만을 기다린다. 그들에게 택배 상자 뒤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가을은 택배 기사에게 ‘쩔배의 계절’이다. 택배 기사들은 절인 배추를 ‘쩔배’로 표현하곤 한다. 소금물을 잔뜩 머금은 절인 배추는 보통 한 상자당 10~20kg 정도다. 게다가 절인 배추는 한 집에 몇 박스씩 배송이 된다. 어느 가을,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5층의 집에 절인 배추 8박스를 배송했다. ‘누구라도 도와준다면, 아니 그저 불안하게 주정차된 차라도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집주인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2박스씩 4번을 오르고 내리자 현관문은 집주인처럼 차갑게 닫혀버렸고, 물 한잔 달라는 말은 목 언저리에 맴돌았다.

배송 올 물건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한 치의 오차도, 감정도 없는 배송 기계를 바라는 듯하다. 그들의 고려 사항 속에 택배 기사가 흘리는 땀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사정은 없다. 교사였던 한 고객은 학교 행정실에 택배를 맡겨 달라 요청했다. 문제는 행정실 직원이 이를 극구 거부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행정실 앞에 놓고 간 택배에 행정실 직원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택배 기사를 자르라는 항의 전화였다. 기사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는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색종이’처럼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항의 전화에 ‘마음은 잘리고 이상하게 붙어’버린다.

그래도 분명 물건보다 사람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저자는 책에서 택배 기사가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님’을 말하고자 한다. 저녁 7시에 들른다는 연락에 6시 50분부터 매번 상을 차려놓던 노부부와 스페어 키를 숨겨둔 장소를 알려주며 기사를 믿어주는 고객들이 있다. 박카스를 건네던 스님과 천원을 꼭 쥐여주던 할머니가 있다. 그들에게 택배 기사는 단지 배송을 해주는 서비스가 아니다. 그들은 택배 박스 뒤에 가려진 사람을 본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 덕에 저자는 ‘타인이 하기 싫은 일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유일하게 전하는 프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물 한잔을 부탁드리겠습니다’로 마무리되는 기사의 이야기는 배송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거뜬히 지탱해주는 택배 기사는 위태로운 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만 같다. 택배 기사는 ‘하청의 하청’이라고 볼 수 있다. 택배 회사가 대리점과 위탁 계약을 맺고, 대리점은 또다시 개인사업자인 택배 기사에게 배송 업무를 위탁하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라는 점에서 노동법의 보호에서도 밀려난다. 이어지는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소식은 얼음판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알린다.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많지만,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은 고객인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물 한잔과 같은 배려가 얼음판에 발 디딘 그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자료사진 이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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