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은 안전하게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

 

“이기적이다” “바로 인스타 언팔했다” “빼박인데 당당하네”

 

누가 어떠한 잘못을 했길래 비난을 받았을까요? 바로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조이입니다. 조이는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지난 8월 조이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날 조이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걸그룹의

페미니즘 논란

 

걸그룹을 둘러싼 페미니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8년에 여성연예인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은은 ‘GIRLS CAN DO ANYTHING’이 적힌 휴대폰 케이스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린 후 비난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도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죠. 걸그룹 멤버가 페미니즘을 지지하면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도서 『탈코르셋』을 쓴 이민경 작가는 “어린 여성 연예인, 특히 걸그룹 멤버일수록 비난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중년 여배우 김혜수는 이번에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조이가 입었던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공식 석상에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김혜수는 조이 만큼의 큰 비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 유독 걸그룹 멤버에게만 거센 비난이 쏟아지는 것일까요? 걸그룹은 성적 매력 어필이나 귀여운 소녀 이미지 등 ‘여성성’을 부각한 상품으로 남성 소비자들에게 소비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에 발매된 걸그룹 EXID의 노래 『위아래』는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춤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성적 행위를 연상케 하는 춤이 소비자를 공략했기 때문이죠. 예능 프로그램에서 걸그룹 멤버에게 애교를 시키는 모습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성인의 애교 문화는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합니다. 서양에서는 애교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귀엽다’라는 개념이 아기나 동물에게만 사용되기 때문이죠. 영어로 애교를 칭하는 단어가 없다 보니 이 개념을 번역해야 할 때 ‘aegyo’라고 표기한다고 합니다. 귀엽고 어린아이 같은 여성을 매력적이라고 평가하는 우리 문화와 독립적이고 당당한 여성을 매력적이라 보는 서양 문화가 대조적인 걸 알 수 있죠. 그 문화의 정점에 서 있는 걸그룹은 의존적인 아이의 모습과 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갖춘 상품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상품을 만드는 기업, 소속사는 걸그룹을 보호하기는커녕 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예시가 바로 지난 7일 진행된 신인 걸그룹 파나틱스의 라이브 방송입니다. 방송 중 짧은 의상을 입은 멤버의 다리가 노출되자 한 스태프는 멤버들의 다리를 가릴 수 있는 겉옷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그때 한 소속사 관계자가 “보여주려고 하는 건데 왜 가리냐”라고 말했고 이는 영상에 그대로 송출됐습니다. 멤버는 당황한 표정으로 덮고 있던 겉옷을 다시 걷어냈죠. 소비자와 판매자의 공모로 ‘상품’ 걸그룹은 사람이 아닌 말 못 하는 인형이 됩니다.

이런 인식은 페미니즘 논란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일부 남성 팬들은 페미니즘 관련 논란이 있는 걸그룹 멤버의 개인 SNS 계정이나 언론사 연예 기사에 “남성 팬이 있는 걸 기억하라” 식의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해당 발언은 일부 남성들이 소비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소비하던 ‘인형’이 ‘목소리를 가진 여성’으로 느껴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남성 소비문화에 대해 『괜찮지 않습니다』를 쓴 최지은 작가는 “일부 대중들은 걸그룹 멤버를 자신에게도 일종의 지분이 있는 소유물이라고 여긴다”고 전했죠. 또 이작가도 “일부 대중들은 걸그룹의 안위가 자신의 구매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며 “걸그룹을 향한 과도한 잣대와 억압을 소비자 권력으로 착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여성 아이돌 산업,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K-POP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그 선두엔 아이돌 스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그 확장세를 넓히다 보니 우리 사회의 아이돌 산업은 기형적으로 자라났습니다. 아이돌 그룹은 단순히 노래를 파는 가수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상품화해야 하죠. 그중에서도 걸그룹은 외모에 대한 강박적인 주문을 받습니다. 『걸 페미니즘』의 공동저자 알랑씨는 “걸그룹 멤버는 외모를 부위별로 평가 당한다”며 한국 아이돌 산업 속 여성 연예인이 외모 강박으로부터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꼬집었습니다. 외모 강박은 섹시한 동시에 귀여운 인형이 되려면 피할 수 없는 공정인 걸까요.

문제는 더 나아갑니다. 남성 소비문화가 인형을 예뻐해주는 것을 넘어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고, 심지어는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걸그룹은 특정 신체 부위만을 자극적으로 촬영한 직캠이나 딥페이크 음란물의 표적이 됩니다. 삐뚤어진 성 관념과 아이돌 산업이 만나 여자 아이돌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작가는 “일부 대중들이 걸그룹 멤버의 성적 대상화를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들이 특히 걸그룹 멤버를 표적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즐기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선 여성의 신체가 재화가 되는 아이돌 산업 구조를 와해해야 합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관계자 이효린씨는 “사이버성폭력은 성 착취 산업구조와 문화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알랑씨는 “소속사에 대한 법적 규제와 법적 처벌을 강하게 해야 한다”며 “소속사에서도 강경하게 대처해 여성 연예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속사를 제재해도 문화가 제자리라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죠. 소비가 있다면 공급도 계속될 것입니다. 산업의 ‘진짜’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소비자인 우리 모두의 역할입니다. 이씨는 “우리 사회의 문화인식 개선이 필요하며 개개인들의 변화가 곧 구조 해체의 시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걸그룹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아이돌’이 겪고 있는 갖은 어려움의 교집합입니다. 이들은 개인 SNS 공간에서까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는지 검열당합니다. 걸그룹 멤버들은 과연 한 사람으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걸그룹 멤버가 페미니스트인 것이 죄가 되지 않을 날은 언제쯤 올까요?

 

글 변지후 기자
wlgnhuu@yonsei.ac.kr
송정인 기자
haha2388@yonsei.ac.kr

 

<자료사진 조이 인스타그램 계정>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