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를 실험하는 작은 공간

 

이름만 들어도 싱그러운 새싹이 떠오르는 독립서점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1일 서초구 양재동에 문을 연 신생 독립서점 ‘책방 책읽는 정원’(아래 책읽는 정원)이다. 나무로 된 외관의 따뜻함과 초록 식물들의 생생함이 공존하는 이곳은 보통의 독립서점들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바로 민주시민교육 기획 단체인 ‘밸류가든’이 이 책방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The Y』는 책읽는 정원의 책방지기 네 명과 밸류가든 최은영 사무국장을 만났다.

 

 

 

Q. 책읽는 정원의 소개를 부탁한다.

꽃뱀: 여섯 명의 책방지기 각각이 운영하는 서가와 독립출판물만을 다루는 서가, 총 7개로 나뉜 서가가 특징이다. 각 책방지기의 관심사와 그들만의 세계를 책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책읽는 정원만의 매력이다.

고래: 밸류가든과 같이 ‘함께 살기’를 실험하는 작은 책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함께 살기’라는 단어 안에는 여섯 명의 책방지기가 함께하며 동네 주민들 사이에 조화롭게 섞여 들어가자는 목표를 담고자 했다.

 

Q. 책읽는 정원이 강조하는 ‘함께 살기’란 무엇인가.

최 사무국장: ‘함께 살기’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느슨한 공동체를 이어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책읽는 정원은 연간 계획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매년 책방지기가 바뀌기 때문에 유연한 공동체 생활을 느껴볼 수 있다.

 

Q. 책방지기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꽃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꽃뱀’이다. 꽃뱀인 이유는 꽃을 사랑하는 뱀띠이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부정적으로 쓰이는 ‘꽃뱀’이란 단어를 소독하고 싶은 마음에 사용하게 됐다. 페미니즘과 비건(Vegan) 관련 책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고래: ‘고래’라는 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주애다. 서가의 주제는 여성의 삶과 글이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출산한 30대 중후반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 사건을 겪은 후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게 됐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다시 정의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해석하고 싶은 여성이 많을 것 같아 여성주의 이야기 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밸류가든과 인연이 닿아 책방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구슬: ‘구슬’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김경애다. 미술과 미술가라는 주제로 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미술과 미술가의 이야기, 그리고 미술사에 관심이 많아 다른 이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사람들도 좋아할까?’란 호기심을 갖고 시작했다.

분홍: 분홍색을 좋아해서 ‘분홍’이라는 별명을 쓰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다룬다. 네 명의 딸을 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니 그림책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할머니가 되면 작은 그림 책방을 열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와 이렇게 책방 운영에 참여하게 됐다.

 

Q. 여섯 명이 만날 수 있게 된 계기인 ‘밸류가든’이 어떤 단체인지 궁금하다.

최 사무국장: 밸류가든은 시민참여 활동을 기획, 조직 및 운영하는 단체다. 어떻게 하면 인권이나 다양성, 여성주의와 같은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회적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가치들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단은 인문학과 예술적 콘텐츠라 생각했고, 그 결과 책과 영화 등의 예술·문화 활동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더 나아가 프로그램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상업공간인 서점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 여섯 명의 책방지기들은 모두 책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Q. 한 달 남짓 책방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분홍: 내가 처음 운영하던 날이었다. 첫 손님은 우리 책방을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 찾아온 분이었다. 우리 책방에는 책을 사면 ‘북카드’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을 적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 손님은 ‘1년 동안 책읽는 정원을 잘 가꿔주세요’란 글을 남겼다. 매우 감동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구슬: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찾아온 적이 있다. 들어와 한참을 머물던 그들을 보며, 나 또한 그들과 이 공간 속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다. 책을 굳이 사지 않아도 책과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Q. 독립서점의 주인을 생각하면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데, 실제 책방지기의 하루는 어떨지 궁금하다.

꽃뱀: 서점을 관리하면서 디제잉을 한다. ‘이번엔 무슨 노래를 틀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SNS에 올리는 책방 일기에도 매번 듣고 있는 곡을 소개한다. 언젠가는 ‘꽃뱀’이 있는 날엔 클래식을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책방을 방문하는 손님이 있길 꿈꾼다.

고래: ‘책방 주인’하면 책에 둘러싸인 채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일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많이들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내가 입고한 책도 미처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책방 운영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아 독서할 시간이 부족하다. 나에게 책방 주인에 대한 로망은 아직 먼 이야기다. 그보단 조금 더 현실적인 공간,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으로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구슬: 혼자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와 불이 꺼진 광경을 마주하는 순간, ‘책들이 자고 있다가 내가 들어와서 깨는 걸까?’, ‘책들은 밤새 놀다 자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웃음) 아직까지는 이렇게 현실의 끈을 잠시 놓는 상상을 통해 현실적인 어려움과의 간극을 잘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Q. 책방을 열고 얻게 된 것이 있는가.

구슬: 다른 책방지기들이 골라온 책을 읽으며 그들의 세계를 엿보는 일이 흥미롭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인 책방 운영을 하며 자신감도 얻었다. 내가 좋아하는 길로 나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다. 내 아이에게도 “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

 

Q. 다른 독립서점과 차별되는 책읽는 정원만의 매력을 꼽자면.

고래: 서가의 주제가 책방지기별로 분명히 나뉘어 있다. 날마다 다른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책읽는 정원만의 가장 큰 매력은 서점을 방문하는 손님이 언제든 책방지기가 될 수 있는 곳이란 점이다. 이곳을 여러 번 방문하며 사랑하게 됐다면 내년에 책방지기를 꿈꿔 봐도 좋을 듯하다.

 

Q. 마지막으로 책과 책방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꽃뱀: 현재 우리 사회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쉽게 용인되던 ‘혐오’는 허락될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통해 깊고 넓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구슬: 책을 읽는 행위는 책에 담긴 작가의 결실을 얻는 일이다. 책 속의 감정들이 독자들과 공유됨으로써 더욱 큰 진폭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분홍: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할 때 책이 그 매개가 됐으면 한다. 모두가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책방 책읽는 정원’ 추천 독립서적,

‘고래’ 윤주애의 『여성의 자아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고래: 『여성의 자아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는 지난 2017년 9월 8일부터 12월 1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진행된 내면 여행 모임입니다. 여섯 명의 모임 벗과 한 명의 모임지기가 12주 동안 매주 모여 세 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그 여정을 기록합니다.

 

여섯 명의 벗들과 함께한 12주간의 기록

 

『여성의 자아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는 책방지기 ‘고래’가 직접 쓴 독립출판물이다. 그녀는 책을 통해 자아를 찾는 모임을 현재까지 네 번에 걸쳐 해왔고, 지난 1기 때 나눴던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해당 책은 페미니즘 서적을 읽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생애 주기별로 돌아보는 내용을 담았다. 모임 전에 책을 읽고 질문을 던지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일종의 기록집 형태로 남긴 책이다.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공감과 위로를 느낄 수 있다.

많은 신화 속에서 대지는 ‘여신’으로 묘사된다. 이는 잉태와 출산이라는 여성의 육체적 기능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출산이 모든 생명체에게 축복인 동시에 여성에겐 또 다른 억압이 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정을 돌보는 일은 비단 여성들만의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부장적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의 자아실현은 쉽지 않다. 결혼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담은 이 책은 기혼 여성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할 것이다. 책의 저자인 책방지기 ‘고래’는 본인의 책을 “어설픈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삶의 길라잡이가 돼줄 수 있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글 변지후 기자
wlgnhuu@yonsei.ac.kr

사진 박민진 기자
katarina@yonsei.ac.kr

<사진제공 윤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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