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들의 포근한 사랑방으로 언제든 찾아오세요

여행과 책은 흔히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여행과 책, 이 두 가지를 한 곳에 담은 특별한 독립서점이 있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책방 여행마을’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아지트 같은 소담한 동네에 자리 잡은 이곳은 지난 2017년 4월에 문을 열었다. 동네 마을 사람들을 위한 사랑방이기도 한 ‘여행마을’의 이장 정지혜씨를 만나봤다.

 

 

 

Q. 간단한 책방 소개 부탁한다.

A. 여행 독립출판물 전문 책방이다. 지난 2016년 11월부터 준비해 2017년 4월에 오픈했다. 주로 여행 관련 책을 구비해두며, 그중 90%는 독립출판물이다. 여행을 매개로 손님들과 소통한다는 점이 우리 책방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강연이나 글쓰기, 책 만들기 등 다양한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모두 여행과 관련된 주제다.

 

Q. 여행과 독립서점을 묶어서 책방을 열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내가 가장 즐겁게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마을은 지난 2016년 11월부터 12월까지 준비 기간을 두 달 정도로 길게 가졌다. 책방을 준비하면서 전국에 있던 204곳의 독립서점을 다 돌아다녔다. 각 책방의 운영 시간과 요일, 북 큐레이션 방식, 인테리어 등을 메모하며 여행마을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구상했고, 우리 서점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Q. 책방의 이름처럼 여행에 관한 책이 많다. 본인에게 여행과 책은 어떤 의미인가.

A. 여행과 책은 어찌 보면 ‘양극단에 서 있는 취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활발하고 동적인 반면, 독서는 조용하고 정적인 취미다. 나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연결고리를 찾았던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겐 여행과 책처럼 양면성을 띠는 성격과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신나고 즐겁기만 하다가, 어느 날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우울하고 기분이 축 처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여행과 책의 공통점을 꼽자면, 둘 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Q. 책방 마스코트인 고양이 ‘뚱이’에 대한 일화가 있을까.

A. 뚱이는 여행마을에서 나와 함께 책방을 지키는 주인 2호이자 이곳의 마스코트다. 올해 두 살이 된 뚱이와는 길바닥에서 처음 만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고양이가 길가에 처량히 버려져 있었다. 동물에 큰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그 새끼고양이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키울지, 입양을 보낼지는 나중 일이었고 일단 조심스레 품어 가게 안으로 데려왔다. 200g 남짓한 아기고양이였던 뚱이와 그렇게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됐고, 뚱이는 벌써 6kg의 건강한 ‘돼냥이’가 됐다. 뚱이는 낯가림도 없어서 책방 손님들에게 먼저 다가가 무릎에 얼굴을 비비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뚱이가 없었다면 내가 책방을 어떻게 꾸렸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Q. 어엿한 동네 책방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기억에 남는 손님들도 있을 것 같다.

A. 책방에는 참 다양한 손님이 오고 간다. 슬리퍼를 끌고 동네 한 바퀴 마실 나온 손님부터 SNS를 보고 찾아왔다는 지방 손님까지.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손님은 경기도 수원에서 한 달에 두세 번씩 찾아와주시는 젊은 여성분이다. 매번 책도 구매해 주시고 맛있는 요깃거리나 뚱이 간식도 챙겨와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낯가리는 성격인 내게 매번 올 때마다 즐거운 이야기를 한 꾸러미 가져오신다. 덕분에 현재는 영업이 끝나면 같이 치킨에 맥주를 마시곤 하는, 오래 알고 싶은 인연이 됐다.

 

Q.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연차가 오래될수록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이상적인 서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과연 가능할지는 아직 의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바로는 대형서점과 독립책방이 서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형서점은 많은 물량과 편의성이 장점이고, 동네 근처에 있는 독립책방은 뛰어난 접근성과 책방 주인과의 허물없는 소통이 매력이다. 특히 독립서점의 경우 손님들은 책방이라는 공간 자체와 책방 주인에게 동시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특징을 잘 살려서 서점과 손님 모두가 원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싶다. 매일 한식을 먹지만 가끔 햄버거나 분식이 당기듯, 독립서점과 대형서점이 서로 공생하는 관계로 오래 살아남는 공간이 앞으로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Q. 책방을 열고 얻게 된 것이 있는가.

A. 여행마을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주변에 비슷한 동네서점이 ‘살롱드북’ 한 곳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며 페미니즘 서점 ‘달리, 봄’, 영화서점 ‘관객의 취향’, 취향 서점 ‘엠프티폴더스’ 등 관악구에 다양한 동네서점이 생겨났다. 다른 지역처럼 관악구의 독립서점을 한 데 묶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 어느 날 무작정 각 책방에 찾아가 사장님들과 얼굴을 틔웠다. 그 일이 시발점이 돼 각 책방과의 교류가 늘었고, 작년에는 ‘동네북페스티벌’이라는 관악구 최초의 독립출판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나의 작은 소망 하나가 이뤄진 것 같아 뿌듯했다.

 

Q. 다른 서점들과는 다른, ‘책방 여행마을’이 가지는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A.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지닌 책방이라는 점 아닐까. 간혹 손님 중에 왜 책방 이름이 ‘여행마을’인지 묻는 분들이 계신다. 원래 ‘지구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는데 에버랜드에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었다. 그러다 여행에 관련한 책들이 있으니 ‘여행이 이곳에 다 있다’는 의미에서 ‘여행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정하게 됐다. 북 큐레이션은 다른 서점과 달리 대륙별로 정리했다. 여행 서적의 특성상, 특정 감정이나 주제에 따라 묶는 것보다 지역이나 대륙별로 묶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국가 이름) 책 있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각 큐레이션 옆에 대륙이나 국가의 사진도 함께 비치했다. 손님들이 사진 속 나라를 궁금해하면 그 책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마치 정말 여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Q. 책방 1주년을 맞아 직접 쓴 『책방 여행마을, 이제 곧 망할 듯?』에 이어 최근에는 펀딩을 통해 신간을 발행한다고 들었다.

A. 성격상 나는 많은 사람과 함께 ‘하하호호’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인지라 조용하게 지나가고 싶었으나 그래도 1주년은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방을 차리게 된 계기, 책방에서 겪었던 에피소드, 책방을 통해 변화되는 가치관과 고민 등을 서술한 『책방 여행마을, 이제 곧 망할 듯?』을 발간하게 됐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운 좋게도 책방 단골손님과 눈이 맞아 올해 2월 결혼을 하게 됐고, 3주년을 맞이해 이번에는 책방 손님과 결혼하게 된 계기, 결혼을 준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결혼 준비 비용 등의 내용을 엮은 『2천만 원으로 결혼을 한다고?』를 준비 중이다. 현재 열심히 집필 중이고 올해 6월 말에 발간할 예정이다.

 

Q. 독립출판물 중 딱 한 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A. 홍지 작가의 『질문의 여행』을 추천한다. 흔히 여행책이라고 하면 여행지에 가서 겪은 이야기 위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여행 이야기가 전혀 없고 여행에 대한 질문만으로 구성돼 있다. 가령 “멋진 풍경을 보았을 때 사진기를 꺼낼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각자 여행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지인들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타인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A. 어찌 보면 여행마을은 봉천동 길거리에 참 어울리지 않는 서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틀을 깨는 게 바로 동네서점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어느 누가 어느 때 찾아와도 마음 편히 책과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부담 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 말이다. 책방에 온다고 해서 반드시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서점 사장님들의 꿈은 어마어마한 매출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마음 편히 이 장소를 즐기는 거다.

서점지기, 그리고 고양이 뚱이와 함께 여행 이야기 나누며 친해집시다, 우리.

 

‘책방 여행마을’ 추천 독립서적, 홍지 작가의 『질문의 여행』

 

가장 짧은 글로 떠나는 가장 긴 여행

 

『질문의 여행』은 252개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여행 취향을 알아볼 수 있는 여행 질문집이다. 지난해 텀블벅 펀딩으로 목표 금액의 342%를 성사시키며 성공적으로 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인 홍지 작가는 자신을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탐험하는 여행자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세계 132개국을 여행한 그는 여행 전 우리에게 질문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나는 어떤 취향의 여행자일까?’ ‘누구와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숙소나 음식에 대한 취향을 묻는 간단한 질문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묵직한 질문까지,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다 보면 여행의 설렘은 배로 증폭될 것이다.

 

이 책에는 전 세계 여행자가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질문으로 등장한다. 독자는 배낭여행자가 돼 몇 달을 여행하거나 호화 크루즈에 오르기도 하고 북극곰을 만나러 북극에 갈 수도 있다. 그러다 바르셀로나의 한 거리에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수많은 질문을 통해,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나’의 경험들은 우리에게 일상에 없던 선택의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상상 속 선택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도 하나의 여행이라는 것을 말이다. 수많은 선택지가 만드는 선택 조각들은 내 삶의 전체를 만들어낸다. 일상이 지루하고 퍽퍽하다고 느껴질 땐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 꼭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 매일 오가던 출퇴근길을 바꿔보거나 처음 하는 요리를 시도해보는 일처럼 말이다. 일상 속 새로움을 찾아 새로운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목차가 없다.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언제 읽어도 상관없다. 떠나기 전에 질문 하나하나를 음미해도 좋고 여행 중에 슬며시 꺼내 마음 가는 대로 아무 데나 펼쳐 봐도 좋다. 누구와 보면 더 좋을까? 이것 또한 상관없다. 혼자, 당신이 잘 아는 누군가와, 혹은 방금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여행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책 속의 질문에 답하다 보면 어느덧 당신은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있을 것이다. 그대의 매 순간이 설렘 가득한 여행 같기를 바란다.

 

 

 

글 변지후 기자
wlgnhuu@yonsei.ac.kr

<사진제공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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