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불공정계약으로 일그러진 문학,출판계

“꿈을 이뤄주겠다는 입에 발린 말로 한 사람의 인격을 무너뜨리다니 믿을 수 없다.” 지난 2016년에 공론화된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떠올리며 수도권 소재 대학 문예창작학과 재학생 A씨가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작의 불공정계약 논란에 대해서도 “언젠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하다”며 “하루빨리 문단 내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 문학·출판계의 부조리한 관행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2018년 문단 내 미투 운동으로 문학계 내 성폭력 구조가 연이어 공론화됐다. 올해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 양도 조항이 도마 위에 오르고, 매절 계약 논란을 빚은 ‘구름빵 사태’가 재점화되며 출판계의 불공정계약 관행도 문제로 제기됐다. 이에 한국 문학·출판계의 폐쇄성과 위계성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The Y』는 한국 문학·출판계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위계를 이용한 성폭력, 폭로되다
#문단_내_성폭력, #MeToo

 

지난 2016년 9월, 문예지 『21세기 문학』에 실린 김현 시인의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로 문단 내 성폭력 폭로가 시작됐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트위터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폭로 및 공론화가 본격화됐다. ‘고발자5’가 고양예고 문예 창작 실기교사였던 배용제 시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배 시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한 단체인 ‘탈선’*이 생겼다. 탈선과 고발자5, 그리고 여성 문인들은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임솔아 시인은 ‘문학과지성사’와 시집출판 계약서를 쓰면서 “양자 간 성폭력이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긴 싸움 끝에 배 시인은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긍정적인 변화인 듯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이 많았다. 국정농단 사태에 이들의 목소리는 묻혔고, 기성 문인들조차 무관심과 방조로 이들을 외면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잊어갔다.

그러던 중, 지난 2017년 12월 계간 문예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을 게재했다. 괴물 ‘EN’(고은 시인)이 그동안 저질렀던 성폭력에 대한 폭로였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언급되던 고 시인이 저지른 성폭력 사건은 큰 논란이 됐다. 이듬해 2월, 최 시인은 『JTBC 뉴스룸』에서 고 시인의 만행을 추가 폭로했다. 이후 고 시인은 단국대 석좌교수직에서 물러났고,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자락의 주거 창작공간도 떠났다. 단국대는 고 시인과 관련된 기사와 게시물을 전부 내렸으며, 서울특별시청 또한 그를 기념하는 ‘만인의 방’을 폐쇄했다.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해자에 2차 가해가 존재했다. 최 시인을 향해 “성추행할만한 얼굴이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니냐”등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또한 “미투가 정권을 음해하려는 시도로 작동한다”는 음모론도 등장했다.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인 고 시인은 피해자인 최 시인과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문단 내 성폭력 문제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등단을 꿈꾸는 청년 또는 작가 지망생이다. 이처럼 문단의 권력 구조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범죄는 문단 전체의 조직적인 범죄라고 볼 수 있다. 최 시인은 “문단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돼있는, 아주 폐쇄적인 곳”이라며 “갓 등단한 젊은 여성 작가에게 주요 잡지 편집위원은 거대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눈 밖에 나면 책을 못 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작품을 출간하더라도 유명 작가나 대형 출판사로부터 평이 나오지 않으면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생존도 힘들어져 편집위원들의 권력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탈선의 후속 단체인 ‘우롱센텐스’ 또한 “한국의 문학·출판계는 소수의 인사에게 여러 콘텐츠가 독점돼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며 “의도적으로 성적 표현의 자유와 성폭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모임 ‘아가미’는 “폐쇄적인 문화, 가부장 남성 중심적인 작품 해석, 나아가 성폭력 문제를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로 치환하는 우리 사회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맞물려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심화됐다”고 전했다.

 

불공정계약 관행 문제도 불거져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구름빵을작가에게돌려주세요

 

불공정계약 관행 또한 문학·출판계의 뿌리 깊은 문제로 꼽힌다. 지난 1월 논란이 된 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 양도 조항이 대표적이다. 논란은 2020년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수상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계약서에 수상작의 저작권을 이상문학상 주관 출판사인 문학사상사에 3년간 양도할 것을 요구하고, 개인 작품집의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게 하는 부당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이형 작가가 이에 항의하며 절필을 선언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SNS에서는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고,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한국작가회의 등 문인단체들이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는 문학사상사 측이 2020년 이상문학상 수상을 취소하고 문제가 된 조항을 수정하겠다고 밝히며 상황이 봉합된 상태다.

그러나 지난 4월 3월, 『구름빵』의 저작권을 백희나 작가에게 돌려주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되며 불공정계약 문제는 재점화됐다. 신인 작가였던 백 작가는 『구름빵』 출간 당시 저작권을 일거에 양도하는 매절 계약을 맺었다. 때문에 백 작가는 『구름빵』에 대한 대가로 1천850만 원만 받을 수 있었다. 『구름빵』의 출판사 ‘한솔수복’이 그림책 매출 수입으로 밝힌 20여억 원에 비하면 약 0.9%에 그치는 금액이다. 백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이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의 2·3차 창작물로 활용되는 과정에도 개입할 수 없었다. 2017년 백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서 연달아 패소했고, 현재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SNS에서는 백 작가를 지지하는 누리꾼들이 ‘#구름빵을작가에게돌려주세요’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학·출판계에서 불공정계약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출판사의 저작권 인식 부족 ▲작가 대상 저작권 교육 부재 ▲작가가 출판시장에서 약자에 속한다는 점이 꼽힌다. 우롱센텐스는 이상문학상 논란을 사례로 들며 “출판사들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개인 작품집의 표제작으로 쓸 수 없도록 한 조항에 문제가 제기되자 문학사상사 측에서 “작가들이 원하면 싣게 해준다”고 해명한 점을 들어 우롱센텐스는 “출판사가 작품과 관련한 계약서를 무용지물로 취급한다는 대표적인 방증”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저작권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현실은 문제를 심화시킨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아래 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 임정자 위원장은 “불공정은 상대방이 무지하다고 판단될 때 일어난다”며 “작가연대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작가들이 저작권법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그 이유로 작가를 대상으로 한 저작권 교육 문화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들이 저작재산권 양도, 대량 판매 시의 인세 하향 조정, 계약 기간 불특정 등 불공정한 내용의 계약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도장을 찍게 된다는 것이다. 우롱센텐스는 작가들이 계약 과정을 숙지하기 힘든 요인으로 “재물과 실리를 탐내면 예술적이지 않다고 간주하는 낡은 가치관의 영향”을 들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들이 저작권 조항을 세세히 알고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란 힘들다. 출판시장에서 약자이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문학의 상업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출판사가 책을 내준다고 하면 당연히 고맙지 않겠냐”고 반문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조항이 불공정하다고 문제 제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당장의 수입이 없는 신인 작가들에게는 다음 인세를 언제 받을지 모르는 인세 계약보다 한 번에 목돈을 받을 수 있는 매절 계약이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온다. 임 위원장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출판사들이 저작권료를 한꺼번에 주는 대신 각종 불공정한 내용을 담은 계약서를 내민다”며 “그러나 불이익을 당할 우려 때문에 작가가 불공정 관행에 맞서 싸우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우롱센텐스 또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출판사 앞에서 작가는 위축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근원은 폐쇄성과 위계성… 깨뜨릴 방법은?
#작가노조, #예술인권리보장법, #다양한_문학플랫폼

 

문단 내 성폭력 문제와 불공정계약 관행의 공통된 원인은 수직적인 문단 구조에 있다. 이에 따라 문학·출판계의 폐쇄성과 위계성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작가노동조합(아래 작가노조) 설립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 ▲문학 플랫폼의 다각화가 있다.

작가노조 설립은 문학·출판계의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일부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내부 비판을 하는 현 방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저작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작가들의 입장을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대변하고 요구할 작가노조 같은 법적 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작가의 권익 보호를 위해선 국가가 작가들의 창작 노동, 집필 노동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 보호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신장 ▲예술인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 보장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프리랜서 활동이 많아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작가노조의 설립 요건 및 과정을 상세히 규정한다. 더불어 예술계 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방지대책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책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해당 법안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하고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개회일인 오는 20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법·제도적 해결을 넘어 문학인들이 자체적으로 문학·출판계의 구조를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독자에게 직접 글을 발송하는 메일링 서비스와 비등단 작가에게도 지면을 제공하는 독립문예지, 출판사의 청탁이 없어도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웹진이 대표적이다. 이 중 지난 2017년에 창간된 독립문예지 『베개』는 최근호까지 비등단 작가의 작품이 80%에 달한다. 『베개』의 조원규 편집인은 “등단제도를 포함한 기존 문학 제도의 위계와 폐쇄성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으로 베개를 창간했다”며 “권위적인 제도의 승인 없이도 문학하는 삶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인 플랫폼을 유지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자본력 있는 출판사를 우대 지원하는 등 독립문예지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 편집인은 “독립문학 주체들도 스스로 지속 가능한 생존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게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입니다. 지금 이 싸움은 나중에 돌아보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최 시인이 지난 2018년 3월 청계광장에서 열린 ‘성차별, 성폭력 끝장 문화제’에서 말한 내용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문단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독자들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출판사의 평론이 좋아서, 무슨 상을 받아서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다고 판단해 책을 구매하고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많아진다면 힘없는 신인 작가들에게도 봄이 찾아오지 않을까.

 

 

*탈선: 고발자5는 배 시인이 “네가 문단에서 벽을 마주하는 이유는 틀을 깨지 못해서다. 탈선을 해야한다. 문단과 언론에 아는 사람이 많다. 문단 내에서 매장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에서 ‘탈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탈선’의 운영진들은 후속 단체로 지난 2018년부터 ‘우롱센텐스’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송정인 기자
haha238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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