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교 대학원생들이 처한 문제들, 해결방안은?

어두운 밤 백양로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불 켜진 연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오프라인 강의가 없는 동안에도 많은 대학원생(아래 원생)들은 여전히 학교로 향한다. 원생들에겐 학업과 연구보다도 더 무거운 짐이 있다. 원생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없게 하는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짚어 봤다.

 

 

연세에도 존재하는 일부 ‘갑질’ 교수, 
“말하면 졸업 못 해요”

 

우리대학교 인권센터는 지난 2019년 7월 학내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일부 원생이 언어폭력, 학습권·저작권 침해, 부당 대우와 차별 대우, 위계에 의한 강요 등을 경험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생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지도교수와 원생 간 권력 관계 때문이다. 지도교수는 ▲학위논문 심사권 ▲학계 내 영향력 ▲학과 및 연구실 인사·행정권 등을 갖는다.

권력 관계를 이용한 일부 교수들의 ‘갑질’은 우리대학교에서도 일어난다. 주로 ▲사적 지시 ▲폭력적 언행의 형태다. 일부 원생들은 업무 범위를 벗어난 사적인 심부름에 동원된다. 석사과정생 A씨는 “교수가 자녀를 학원에서 데려오게 시키고 자녀 입시 정보를 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우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B씨는 “교수가 볼 공연을 예매하고 행사장까지 가족들을 에스코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문과대 한 교수는 개인 행사에 원생들을 동원하고 행사에 사용되는 기부금을 강제로 수금해 지난 2019년 감봉 2달의 징계를 받았다. 

‘갑질’은 심부름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대학원 커뮤니티의 연구실 평가에 따르면, 우리대학교 일부 교수들은 ‘욕설을 심하게 하는 교수’ 등의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지난 2017년 공과대에서 ‘텀블러 폭탄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해당 연구실은 이미 인권침해 사례로 회자된 바 있어 원생들이 크게 놀라지 않았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원생을 향한 일부 교수들의 폭력적 언행을 두고 대학원 총학생회(아래 원총) 부회장 이주희(국문·박사4학기)씨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학업을 중단한 원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권력 관계 아래에선 ▲논문 공저자·교신 저자 문제 ▲부적절한 인건비 지급 관행 등 연구윤리와 직결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씨는 “교수가 자료 하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저자로 등록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B씨는 “석사생의 연구 기여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내가 쓴 논문의 저자로 들어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원생 인건비 지급에서의 부적절한 관행이 밝혀지기도 했다. 우리대학교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연구책임자인 교수가 연구원들의 개인 급여 통장을 일괄 관리하며 급여를 지급한 사례, 연구원들에게 지급된 인건비 중 일부를 돌려받아 공동 경비로 사용한 사례 등이 확인됐다.

 

공부보다 무거운 짐들… 원생들은 한숨만

 

교수-원생 간 권력 관계 외에도 원생들은 여러 가지 장애물에 둘러싸여 있다. ▲연구 공간 부족 ▲경제적 부담 ▲여성 원생이 처한 어려움 등이다. 우리대학교 연구 공간 부족 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관련기사 1822호 3면 ‘연구력 저하의 원인을 파헤치다’> 일부 이공계 연구실을 제외하면 많은 원생들은 자신의 연구 공간이 없어 도서관, 세미나실, 강의실 등을 대여하곤 한다. 원생 C씨는 “학과에 연구실이 없는 원생은 연구에 큰 지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은 원생들의 연구에 큰 걸림돌이 된다. 높은 학비와 생활비 부담으로 인해 연구에 몰두하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원생의 반응이다. 2019학년도 기준 우리대학교 대학원 평균 등록금은 625만 9천 원으로 서울 소재 대학 중 성균관대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원총 집행위원장 안화영(국문·석사5학기)씨는 “일부 연구원들의 경우 연구원 수입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지만, 고정 근무 시간이 길어 다른 활동을 할 수 없다”며 “이 경우 경제활동도 연구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당 인건비 책정이 교수마다 천차만별이고, 조교의 업무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씨는 “교수가 언제 부를지 몰라 대기하지만 대기 시간 등은 노동시간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 원생들은 더 많은 고충을 안고 있다. 여전히 육아가 여성의 몫으로 간주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출산한 여성 원생들은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이씨는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휴학이 길어지거나 복학시기가 늦어져 연구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남교수 위주인 대학원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회를 더 주지 않으려는 교수도 있다”며 “여성을 ‘언제든 나갈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출산과 육아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부 여성 원생들이 일상적인 차별을 겪는다는 주장 또한 제기됐다. B씨는 “여성 원생을 ‘여자 박사’라고 부르며 ‘성비 맞추려고 합격된 거 아니냐’는 식의 말을 한 교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권한은 나누고, 안전망은 키우고

 

원생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타대학들은 ▲지도교수 권한 분산 ▲원생의 노동 체계화 ▲제도를 통한 경제적 안전망 구축 ▲인권센터 역할 강화 등의 대안을 마련했다.

영국과 미국 대학에서는 교수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박사과정을 평가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운영한다. 논문 지도 교수와 심사 교수를 구분하며 해당 위원회 구성 권한은 원생이 가진다. 일례로 케임브리지(Cambridge)대학은 지도교수의 권한을 원생 교육과 논문 지도로 제한한다. 박사 1년 차 통과시험과 박사학위 구두시험 평가에서 지도교수는 제외된다.** 케임브리지대학 건축학부 코엔 스티머스(Koen Steemers) 교수는 “지도교수의 평가나 참견이 허용되면 교수와 원생 간 관계가 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교수의 간섭으로부터 원생의 연구를 지켜냄으로써 진실되고 독립된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을 통해 근로 조건을 상세히 규정함으로써 원생의 근로자성을 인정한다. 휴일수당, 초과근무수당, 휴가 및 휴직 등이 협약 및 계약조항에 포함되며 원생은 직원과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 또한 네덜란드는 학계 전체에 적용되는 월급표를 작성해 통일된 호봉제를 운용한다. 세부 사항을 제도화해 연구실과 교수에 따른 급여차가 발생하지 않게 하고 원생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대학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1월 발표한 ‘「학생연구원 내부 운영 규정」 가이드라인’에 맞춰 ▲학생인건비 관리 체계화 ▲학생연구원 처우 보장 등을 골자로 하는 「학생연구원 운영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해당 규정은 학생인건비를 책정하는 노동의 범위 및 강도에 대한 언급 없이 학사·석사·박사 과정의 기준 급여만을 제시한다. 원생들은 규정의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안씨는 “해당 규정이 생겼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원생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제도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지난 2019년 9월부터 학연장려금(Stipend)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프로젝트 수주와 관련 없이 매월 석사생에게 70만 원, 박사생에게 100만 원의 학업 장려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인건비 하향평준화, 과학기술원이라는 특수성 등 한계가 지적되고 있지만, 원생들의 기본 소득을 보장할 새로운 형태의 제도가 연착륙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학내 인권침해 사안 전담 부처인 인권센터의 역할도 중요하다. 서울대 인권센터에서는 정례적인 학내 인권 실태조사와 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문제점이 발견되면 관련 정책을 만들어 학교본부 간부급 회의 의제로 상정해 제도화로 연결 짓는다. 서울대 인권센터 관계자 C씨는 “여러 차례에 걸친 실태조사와 연구로 대학원생에게 필요한 것들을 규범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대학교 인권센터는 사전예방적 역할보다는 개별 사건에 대한 사후 구제 기능을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현재 인력으로는 추가 업무가 힘들다”며 “인권침해 사례 발생 시 사후 구제와 피해자 회복 기능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위기의 대학원생들, 직접 나서다

 

원생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자발적 결사체의 중요성 역시 주목된다. 현재 우리나라 각 대학원에서는 원총이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동국대는 원생들의 권리 침해에 원총이 나서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를 보인 바 있다. 지난 2016년 11월 동국대 원총은 학교본부가 원생 행정조교에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이유로 동국대 이사장과 총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결국 2019년 8월 검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행정조교의 근로자성을 일부 인정했다.

반면 우리대학교는 원생 내에서 원총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현재 임기를 진행 중인 58대 원총 <너울>의 경우 약 6천 명에 달하는 전체 원생 중 181명만이 참여한 투표에서 당선됐다. 힘있게 의제를 이끌어나가기엔 관심과 지지가 부족한 상태다. 안씨는 “학생들이 원총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올해부터는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나서고자 한다”고 전했다. 2020학년도 1학기 중 원생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인권 실태조사는 원총의 1호 공약이기도 하다.

원생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형태의 결사체도 필요해 보인다. 북미지역에서는 원생 노동조합이 활발하다. 하버드 대학원생 노동조합(Harvard Graduate Students Union-United Auto Workers, HGSU-UAW)은 지난 2019년 12월 학교를 상대로 정당한 월급·건강보험 개선·괴롭힘으로부터의 보호를 요구하는 취지의 파업을 29일간 진행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원생 노동조합은 학교와 여러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미국과 캐나다 대학원 노동조합의 연합체인 대학원생노동조합연합(Coalition of Graduate Employee Unions, CGEU)은 지난 1992년에 구성된 후 원생들의 다양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조합원 규모가 약 10만 명을 넘겼으며, 한 학교에 약 2~3천 명이 참여하고 있다. 높은 참여율과 연대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은 대학과의 협상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생의 권리 보장을 위해 지난 2017년 12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산하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아래 대학원생노조)가 설립됐다. 당시 6개교 20여 명의 학생이 모여 설립한 대학원생노조는 현재 35개교 200여 명의 조합원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의 근로자성 인정 ▲각 대학과의 교섭권 확보 등을 주요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대학원생노조는 20대 국회에 ▲이공계지원특별법 ▲대학원 내 성 평등 보장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조교의 근무형태 정보공시 의무화 등에 대해 정책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대학원생노조 신정욱 지부장은 “가장 시급한 것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라며 “21대 국회에서도 대학원생들을 위해 입법 노력에 힘 쏟을 것”이라고 전했다.


원생들이 겪는 문제에는 근본적인 구조부터 일부 교수 개인의 도덕성까지 다양한 원인이 얽혀 있다. 오랜 기간 문제가 제기돼 왔음에도 쉽게 해결되지 못한 이유다. 그사이 누군가에게는 부당함이 ‘일상’으로, ‘관행’으로 남았다. 잃어버린 권리가 당연함이 된 지금, 환하게 불 켜진 연구실들은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텀블러 폭탄 사건: 지난 2017년 6월 우리대학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던 대학원생이 텀블러를 이용한 사제 폭탄으로 지도교수에 상해를 입힌 사건. 가해자는 평소 지도교수의 부조리한 지시에 원한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장다혜 외,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9

***김소영,「대학원생 권리강화방안 연구」 교육부, 2018 

 

 

 

글 박진성 기자
bodo_yojeong@yonsei.ac.kr
김수영 기자
bodo_inssa@yonsei.ac.kr 
정희원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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