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료격차,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서울 공화국’,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별명이다. 도시화를 겪으면서 모든 시설은 도시로 집중됐다. 의료시설도마찬가지다. 건강권은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모두가 보장받아야 하지만 지방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환자도, 의사도 찾지 않는 지방 중소병원

 

 

어느 순간부터 ‘병원은 서울로’라는 말이 공식이 됐다. 현재 의료기관은 현저하게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7 의료서비스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요양기관* 중 45%가 서울·경기지역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 광역시까지 포함하면 전체 요양기관의 약 70%가 도시에 있다. 이는 지역별로 의료기관이 불균형하게 분포한 현실을 보여준다. 

의료기관의 숫자뿐 아니라 의료인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지난 2017년 서울대 의과대에서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공중보건장학의 제도보완 방안연구’에 따르면 시·도별 의료인력 규모는 큰 차이를 보였다. 권역별 병원 종사 의사 수는 인구 1천 명 당 경북 0.52명, 충남 0.59명, 울산 0.71명 등으로 1.69명인 서울에 비해 한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저 지역인 경북은 서울의 30%에 겨우 미치는 수준이다. 

설상가상으로 의료인력이 지방 근무를 기피해 의료인력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심화할 예정이다. 전공의와 간호사는 지방 의료기관에서 일하기를 꺼린다. 천안 소재 한 의과대에 재학 중인 A씨는 “편의시설, 주거환경, 교육 문화 등 삶의 질 측면에서 서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도시·상급병원에 있을 때 다양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지방에서는 의료기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환자 수요가 턱없이 모자라다. 서울대 의료정책학과 김윤 교수는 “환자 수가 적으면 환자 관리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확립되지 않아 필연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 한국 의료 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과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의료효과성이 높게 나타났다. 의료인력이 기피하고, 의료 수요가 적은 지방에서 의료서비스의 질은 자연스레 떨어진다.

 

‘불편’을 넘어 ‘위험’으로,
예정된 환자 쏠림 현상

 

 

지역 의료격차는 환자의 건강권과 직결된다. 특히 응급상황에서 더욱 심각하다. 비수도권 거주민들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할 위험에 놓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KNHI_Atlas) 구축 연구’에 따르면 일부 농어촌 지역에는 응급의료센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산, 시흥, 진천, 사천, 거제, 고성 6곳은 인구수, 이동 거리 등을 따졌을 때 의료생활권**에 해당하는 데도 지역응급센터가 전혀 없다.

응급의료센터의 불균형한 분포로 이송 시간에서도 지역별 차이가 난다.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2017년∼2019년 8월 중증외상 및 급성심근경색 발병 후 응급실 도착 시간 및 도착 중 사망 현황’ 자료가 이를 보여준다. 중증외상 환자의 골든타임은 보통 1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시·도 절반 이상은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했다. 이송 시간이 짧은 지역은 대구(49.5분), 울산(50.4분), 서울(52.6분) 등 광역시나 수도권이다. 경남, 경북, 강원, 전북 등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전부 90분 이상 걸렸다. 이에 지난 11일 보건복지부는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대책’을 통해 전국을 70개의 중진료권으로 구분해 관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진료권은 인구 규모와 환자 이동 시간을 고려해 시·군·구를 포괄한 지역 단위를 말한다. 기존 행정 구역인 군 단위로 응급의료센터를 지었을 때 환자 수가 부족해 의료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지역 간 의료격차는 점점 심해진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부회장은 “우수한 의료인력과 자원이 도시에 있는 대형병원에 집중되면서 비도시권 중소병원은 상대적으로 열악해진다”며 “이에 이용자들이 도시에 위치한 대형병원으로 몰리면서 비도시권 중소병원은 수입 저하를 겪고, 시설이 낙후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상급병원은 ‘환자 쏠림’ 현상을 겪는다. 대한의사협회 민양기 의무이사는 의료정책포럼에서 “2017년 건강보험공단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급병원은 전체 병원 수의 0.125%에 불과한데 전체 진료비의 17.1%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지방 주민들이 수도권 상급병원으로 향하는 이유는 지방 의료 인프라가 열악할 뿐 아니라, 동네 중소병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중증 정도의 질환이 아니더라도 우선 더 크고, 유명한 병원에 가서 진료받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환자가 몰리면서 수도권 상급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몇 주에서 몇 달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충남 보령에 거주하는 B씨는 “주변 병원은 규모도 작고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어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며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기 위해 3달 전부터 예약하고 기다렸다”고 토로했다. 

 

지방 환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병원 필요해…
근본적 해결책은 공공의료 확대 

 

수도권 상급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지자 정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상급병원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중증환자의 비율을 늘리고, 경증 환자의 비율은 낮춰야 한다.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지방 주민들이 상급병원을 찾기 전에 우선 동네 중소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해당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 병원을 선정하는 방안 역시 포함시켰다. 

그러나 해당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한 선결과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윤 교수는 “환자들에게 무조건 동네 중소병원에 가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대형 병원에 가면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김윤 교수는 “지방 중소병원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방 중소병원과 상급병원 간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지방 병원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이 협력 병·의원을 관리하면 환자 의뢰, 회송체계***가 보다 긴밀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국립병원 증축 없이 기존에 있는 의료기관을 활용해 중소병원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나아가 기존의 민영기업이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공급은 대부분 민영기관이 주도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상임대표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의료기관 중 국공립병원 비율은 5%에 불과하다. 병상 수를 기준으로 하면 8~9%에 불과하다. OECD 평균 공공의료 비중이 73%인 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서울대 보건정책관리학과 김창엽 교수는 지역의료 격차 문제가 민영화된 의료 시장하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 논리에 따르면, 수요가 충분치 않은 지방에서 의료서비스가 활성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창엽 교수는 “지역의료격차는 재정을 지원하거나 월급을 인상하는 등 기존 시장적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국가가 직접 개입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의료민영화 구조에서 개원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이어졌다. 김윤 교수는 “현재는 의사가 우선 의원을 차리고 돈을 벌면 병실을 늘려 병원으로 바꾸면서 점점 성장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낮은 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중소병원만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이어 김윤 교수는 “외국은 대부분 국가나 비영리단체가 투자해 병원을 짓기 때문에 처음부터 병원의 규모가 크고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영국은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통해 의료서비스가 100% 공영으로 운영된다. 전 국민은 의료서비스를 무상이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의료만큼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복지로 보는 셈이다. 이렇게 의료기관이 공영으로 운영된다면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지방에서도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지역 격차는 교육·문화·경제 등 전방위에 거쳐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중에서도 의료는 기본권과 직결돼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제공받아야 하는 복지 서비스다. 의료서비스가 ‘상품’을 넘어 ‘복지’가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정책이 확대돼야 한다.

 

 


*요양기관: 환자를 진료하거나 환자에게 투약하는 기관으로 종합 병원, 병원, 의원, 보건소, 약국 등이 해당한다.
**의료생활권: 행정 구역과 관계없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범위
***회송체계: 소규모 병·의원과 상급종합병원 간 환자 이송체계


글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그림 나눔커뮤니케이션,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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