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못 살리는 입시와 고등예술교육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빈센트 반 고흐는 예술가의 자질로 창의력과 독창성을 강조하며 “상상력과 영감을 가라앉히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예술에도 매겨지는 점수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에서 ‘학력’은 예술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크리스티(Christie) 경매사는 소더비(Sotheby’s)와 함께 전 세계 미술품 경매의 2/3를 담당한다. 홍콩 크리스티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품이 주로 거래된다. 경매 도록에 작가의 출신대학은 표기되지 않는다. 홍콩 크리스티에서 고액으로 거래된 미술품의 작가 중 다수가 고학력자도, 소위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미술대학 학사 학력을 가진 국내 화가의 작품은 지난 2000년 국내 개인전에서 3천만 원에 출품됐으나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해당 작품은 7억 7천760만 원에 낙찰됐다. 

국내 예술계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 한국 주류 예술계에 진입하기 위해 높은 학력은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0일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아래 감정협)는 ‘한국미술품 시가 감정을 위한 모형과 매뉴얼’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는 미술품 값을 매기는 데 정량화된 근거를 마련해 객관적 가격을 산출하기 위함이다. 해당 모형에는 ‘작가의 학업 특성’이 평가항목으로 포함됐다. 작가의 최종학력에 따라 차등으로 점수가 부여된다. 미술 비전공자에게 1점, 미술대학 졸업자에게 2점, 미술 대학원 졸업자에게 3점을 주는 식이다. 감정협 관계자는 “이전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대학 졸업 여부와 졸업 대학은 작품 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큰 척도였다”며 “작가의 독창성이 중요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화가라면 최소한의 기술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 봤다”고 밝혔다.

미술 외에 무용‧음악‧기획과 같은 분야에서도 학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만연하다. 예술대학생 네트워크(아래 예대넷) 신민준 집행위원장은 “예술계에서도 명문대 위주의 학벌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음악계의 경우, 교수와의 관계가 예술가의 커리어에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A씨는 “명문대에 입학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며 “출신 학교가 공연 관계자와 관객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이유로 더 많은 공연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사교육이 키우는 예술가?

 

 

이처럼 한국 예술계에 성공적으로 입문해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데 고학력‧고학벌은 많은 도움이 된다. 이에 수많은 학생이 ‘명문’ 예술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입시만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학생과 학부모는 막대한 사교육비 지출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호소한다. 특히 수능 직후 2달 동안 입시 미술학원에서 운영하는 ‘실기 집중 대비반’의 학원비가 악명 높다. 학생들은 미술대학 실기 시험이 있는 2월 초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12시간씩 학원에서 시험을 대비한다. 서울시에서 입시 미술에 정해둔 교습비 단가는 1분당 130~206원이다. 그러나 교습 시간이나 교습비 총합계액에는 상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학원이 교습 시간을 늘리면 고액의 학원비를 합법적으로 청구할 수 있는 구조다. 학생과 학부모는 두 달 동안 학원비만 4~800만 원가량을 지출하게 된다. 신 집행위원장은 “현 입시제도 아래서 학원 없이 입시를 준비하기는 불가능하다”며 “공교육에 예술 관련 교육과정이 충분치 않아 입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학원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예술 관련 학과 입시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과 입시를 준비했던 B(19)양은 “실기 고사 문제지에 영화 촬영 경험이 없으면 답할 수 없는 문항이 있다”며 “학원 밖에서는 영화 촬영 팀을 구성하기 어려워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사실상 입시를 준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덧붙여 B양은 “영화 촬영에 필요한 장비, 편집에 필요한 프로그램과 컴퓨터 등은 모두 개인 부담이기 때문에 학원비 외에도 지출이 컸다”고 말했다. 입시를 위해 막대한 경제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학생들은 능력이 있더라도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입시에 맞춰진 예술교육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획일화된 입시 과정에서 학생들의 독창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는 “실용음악과 입시에서는 개별 학생의 재능보다 기술과 이론이 중시된다”며 “실용음악과 출신 대중음악가들은 음악 이론과 유행에 치중한 나머지 자신의 정체성을 음악에 표현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길 꺼린다”고 말했다.

 

고생 끝에 대학 들어갔지만
예술가의 길은 여전히 멀어

 

이처럼 많은 예술가 지망생이 어려운 입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다. 지난 7월 개최된 ‘예술대학 교육여건 실태와 지원 정책 방향’ 국회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 예술계 대학생은 약 30만 9천 명에 달했다. 그러나 예술대 교육이 학생들을 예술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한국 고등예술교육이 실제 예술 현장과 유리돼 있음은 반복적으로 제기돼온 문제다. 대부분의 예술대학 교육과정은 1:1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전공 실기 실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는 변화한 예술 현장에 맞는 인재를 기르기에 적절하지 않은 교육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위 토론회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창작 과정에 첨단 기술이 사용되고 장르 간 융합이 자유로워지는 등 지금의 예술 창작‧유통‧향유 방식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며 “그러나 교육과정이 이에 맞춰 변하지 않아 시장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받는 전공 실기 교육이 실제 창작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 사이 위계를 강조하는 도제식 교육이 학생의 독창성을 억압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학생이 교수의 지도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 집행위원장은 “예술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막강하다”며 “전공마다 다르지만, 교수의 눈 밖에 나면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이 예술대학 교육으로 독창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잃는다.

예술 현장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교육은 학생들의 진로와 생계를 위협한다. 예술대학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대넷 ‘예술대학 진로교육 및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졸업 후 문화예술계에서 종사하기를 희망한다’고 답변한 비율은 전체 2천157명으로 94.3%에 달했다. 그러나 신 집행위원장은 “그러나 대부분의 전공자가 문화예술계에서 이탈하는 상황”이라며 “졸업 후 그대로 백수가 되는 전공자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예대넷에서 실시한 ‘예술대학 진로 교육 및 커리큘럼 관련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약 79.9%에 해당하는 1천 752명이 ‘문화예술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이 졸업 후 직업예술인으로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학생들이 예술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술대학은 예술인을 육성하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예술 현장과 예술대학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수가 학생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도제 교육에서 벗어나 창작 위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실기 실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뿐 아니라 인문사회 교양 교육을 확대함으로써 학생이 예술에 담아야 할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수직적 위계에서 탈피해 학생이 스스로 상상하고 서로 다른 전공자들이 협업할 수 있게 하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졸업 후 학생들의 취직을 돕기 위한 진로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예술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에 졸업 후 진로 등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예대넷 ‘예술대학 진로교육 및 커리큘럼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 2천157명 중 ‘진로교육이 잘 되고 있지 않다’고 답변한 비율은 70.3%, ‘예술대학에서 교과과정으로 진로교육이 필요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82.4%에 달했다. 신 집행위원장은 “기획, 공연 등 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며 “전문예술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인 대학에서 학생의 폭넓은 진로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많은 이들이 예술가가 되기 위해 막대한 사교육비를 써서 예술대학에 들어온다”며 “그러나 졸업 후 생계의 어려움에 빠지는 상황이 슬프다”고 말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예술계의 풍토와 획일화된 입시 교육은 한국 예술의 침잠으로 이어진다. 입시와 도제 중심의 예술교육에서 탈피해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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