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he Y
[Y, 人] “가족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은 전 세계가 같아요”인스타그래머 이찬재·안경자 부부를 만나다
  • 민수빈 조재호 기자
  • 승인 2019.12.02 00:21
  • 호수 54
  • 댓글 0

지난 9월, ‘인터넷 계의 아카데미 상’이란 별명을 가진 ‘웨비 어워드(Webby Award)’ 문화·예술 분야 최종 수상자 명단에 한국인 노부부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제치고 이름을 올렸다면 믿겠는가. 이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찬재·안경자 부부다. 이들은 ‘Drawings for my grandchildren’이란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손주들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노부부의 그림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짙은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삶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남녀노소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 부부를 『The Y』가 만났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이: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찬재다. 아내는 그림에 들어갈 글을 쓰고 있다. 우리 부부는 1942년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난 동갑내기다.

안: 나는 글을 쓰는 안경자다. 평안북도 박천군이 고향인데, 어렸을 때 월남했다. 당시에는 이름을 다 일본식으로 지었다. ‘경자’라는 이름도 일본식 이름이다.

Q. 교사 생활을 접고 36년의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이민은 왜 결심하게 됐나.

A. 안: 가족의 영향이 컸다.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로 월남한 아버지에게 서울은 고향이 아닌 낯선 곳이었다. 군사 정변, 민주항쟁으로 혼란스럽던 당시 상황도 아버지가 이민을 결심한 계기다. 나를 포함해 세 딸이 결혼한 뒤, 아버지는 남은 자녀들을 데리고 브라질로 떠났다. 그러다 1980년, 광주에서 5·18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한국에 있던 자녀들에게도 안전한 브라질에서 함께 살 것을 권했다.

이: 장인의 이민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 둘 모두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사는 것에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40년을 살았으니,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주저 없이 간다고 답했고, 부모님의 허락과 함께 브라질로 떠나게 됐다.

Q. 이민 생활에 그림과 인스타그램이 함께하기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이: 그림 그리기를 비롯한 모든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아들이다. 아내와 하던 의류 사업을 접고 은퇴한 뒤, 손주들을 돌보는 재미에 살았다. 5년 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딸네 부부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안: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손주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남편이 아주 적적해했다. 아들은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다. 나 또한 장사를 그만둔 뒤에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 곁에 늘 있어 줄 수가 없었다.

이: 그때 아들이 취미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했다. 한국에서 살 때 어린 아들에게 그림엽서를 그려준 적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한 아들이 매일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기록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무슨 인스타그램에 그림이냐”며 질색했다.

안: 그래도 아들과 힘을 모아 남편을 설득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남은 삶을 무료하게 살지 않기를 바란 듯하다. 어느 정도 거절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아들이 포기하지 않더라. (웃음) 그 진심에 남편도 동한 것 같다.

Q. 인스타그램이란 새로운 소통 창구와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세대다. 적응하고 이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A. 이: 고충이 대단했다. 아들이 이용법을 알려줬지만 금방 잊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사진 촬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꾸준히 브라질의 풍경과 조형물, 손주들의 사진 등을 그리고 게시물로 올렸다.

안: 우리 세대는 새로운 것을 접하면 겁이 난다. 청년들처럼 과감히 도전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포기하지 않고 부모님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려 노력한 아들이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했다.

Q. 인스타그램에서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

A. 안: 우리는 영어, 포르투갈어, 한국어 총 3개 국어로 글을 쓴다. 내가 한국어로 글을 쓰면 아들과 딸이 번역해 준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의 순기능 아니겠는가.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는 게시물을 올리다 보니 댓글도 많이 달린다.

이: 댓글에 참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부부의 모습을 보니 결혼하고 싶어진다’, ‘그림이 따뜻하다’, ‘눈물이 난다’는 이야기가 제일 많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그림을 보며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느끼는 것 같다. ‘국적과 언어가 달라도 가족을 생각하는 사랑은 다 같구나’란 생각이 든다.

Q. 앞으로 남겨둔 도전이나,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

A. 이: 대학 시절 노래 부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귀가 나빠지며 자연스레 노래하지 않게 됐다. 더 귀가 나빠지기 전, 젊은 시절 좋아하던 노래를 내 목소리로 녹음해 손주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올해 안에 두 곡을 녹음해내는 것이 목표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음악 수업을 들으며 준비 중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즐겁게 노력해 보려 한다. (웃음)

안: 이민을 떠나기 전 교사 시절, 여러 동화와 단편 소설을 취미 삼아 쓴 적이 있다. 그것들을 모아 펴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The Y』 독자들과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A. 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든, 끈질긴 노력은 분명 새로운 결과를 낳는다. 아들의 설득과 나의 결심이 없었다면, 나 또한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바쁜 세상이지만 부모님의 노년이 외롭지 않도록 관심과 사랑을 줄 줄 아는 자식들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 ‘100세 시대’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들 삶의 2막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자식들이 됐으면 한다.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사진 이찬재·안경자 제공>

민수빈 조재호 기자  soobn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