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와 학생 사이에 놓인 대학원생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말이다. 대학원생은 학업 외에도 연구 활동, 조교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대로 된 근로계약조차 맺기 힘든 대학원생의 현실을 조명했다. 

 

우리는 학생인가요, 근로자인가요?

 

많은 대학원생이 연구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행정·조교 업무를 한다. 지난 2018년 고려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86.1%가 연구 활동과 거리가 먼 잡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행정·연구·수업 조교를 맡은 대학원생 중 66.9%는 자신을 학생근로자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학생이자 근로자인 셈이다. 대학원생 A씨는 “연구와 상관없는 행정적인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업무가 늘어날수록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학원생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전국대학원생노조 강태경 수석부지부장은 “근로계약서가 없으면 대학원생 노동문제는 개인의 문제에 머물게 된다”며 “집합적·제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준 근로계약서 작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학원생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은 드물다. 지난 201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주요 대학에서 행정·교육·연구 등을 하는 대학원생 조교 중 90.6%가 업무 관련 계약 없이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당한 근로계약을 맺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학원생은 경제적 어려움과 부딪친다. 앞서 인용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응답자 중 56.5%가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대학원생 B씨는 “대학원에 온 뒤 일정한 수입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학생연구원, 근로계약서
체결해도 문제는 여전해 

 

근로계약서 작성이 전부는 아니다. 현행 근로계약 체계에서 근로계약서 작성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학생연구원(아래 학연생)의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연생은 정부출연기관(아래 정출연) 연구 참여와 학업을 병행한다. 지난 2017년 정부는 ‘학생연구원 근로계약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근로자로서 학연생의 법적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근로계약이 도리어 학연생의 상황을 악화한다. 근로자로 일할 때와 별개로 학연생은 학업적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학연생이 근로자로 취급되면 취업 후 상환형 학자금 대출, 대학(원)생 전세자금 대출, 생활비 지원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면 학생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학연생을 보호하겠다는 조항도 역효과를 낳고 있다. 학연생 근로계약서에는 ‘학습 시간 보장’ 조항이 들어간다. 이는 학연생의 급여 실수령액 감소로 이어진다. 주 25~35시간만을 학연생의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직업 특성상 근무시간 외에도 일이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대한 보상은 따로 지급되지 않는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김래영 위원장은 “현재 정출연은 초과 근로 수당제를 시행하지 않는다”며 “이를 악용해 초과근로를 시키면서 그에 따른 수당은 주지 않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이자 ‘근로자’일 수 있는 대학원 체계 필요해

 

학연생의 사례에서 살펴봤듯, 현재로서는 근로계약을 맺는다고 해도 대학원생들의 상황이 나아지기 힘들다. 이에 대학원생의 근로자성과 학생 신분을 모두 인정하는 근로·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김 위원장은 “근로계약을 체결했을 때 지원이 끊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반적인 지원제도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장학금 체계 변화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존의 장학금 제도는 전일제* 대학원생을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근로계약을 통해 4대 보험을 보장받으면 장학 지원이 끊기는 셈이다. 근로자로 보호받음과 동시에 학생의 권리는 포기해야 한다. 이에 강 수석부지부장은 “장학금 지급 기준을 4대 보험 가입 여부가 아니라 학교 기관이 전일제 대학원생임을 인정하는지 여부로 바꿔야 한다”고 전했다. 

대학에서도 대학원생 처우 개선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4일 우리대학교에서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위한 처우 개선 방안 타운홀 미팅’(아래 미팅)이 열렸다. 미팅에서는 대학원생 경제적 처우 개선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와 토론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처우 개선 방안을 투표하게 한 결과 43%로 가장 높은 공감을 얻은 방안은 ‘시스템 개선’이었다. 시스템 개선 방안에는 ▲학교 대학원생 간 직접 고용 ▲연구비 지급 주체 분리 ▲연구행정 인력 확보 등이 포함된다. 특히 직접 고용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대학들은 일부 행정 조교를 직접 고용한다. 반면, 교수 밑에 연구 보조 인력으로 들어간 조교는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이 경우 같은 행정 조교 업무를 하는데도 학교와 직접고용 관계는 아닌 셈이다. 강 수석부지부장은 “교수가 하는 일을 보조한다는 것은 학교의 교육 업무를 한다는 것과 같다”며 “실제로 일을 하는 만큼 정당한 노동자로 대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일제: 정규 업무 개시 시각에서 종료 시각까지 근로시간과 동일한 시간 동안 근무하는 근로자를 말한다.

 

글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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