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ILO 협약 비준을 두고 문 대통령과 한국경영자총협회(아래 경총) 간의 공방이 펼쳐졌습니다. 경총은 해외와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름을 강조하며 비준안이 노동계에 지나치게 편향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발은 노동계에서도 나왔습니다. 비준안이 이전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사업장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이 노동기본권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입니다. ILO 권고를 반영한 뒤에도 노사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첨예한 대립 사이에서 또 한 번 소외당한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10월 민주노총이 발표한 ‘성평등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 대표자 중 여성은 12%에 불과했습니다. 여성 조합원 비율이 30%에 달하는 사실을 고려할 때 낮은 수치입니다. 노조 5곳 중 3곳은 사측과의 협상에 참여하는 교섭위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습니다. 발표된 수치는 현실에서의 숱한 갈등과 차별, 그리고 불평등을 보여줍니다.

노동시장 내에서의 성차별 문제는 임금 격차, 경력단절, 모성 보호제도* 부재 등이 있습니다. ‘남성이 일을 더 많이 해서’, ‘고능력자가 많아서’라는 말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 2018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보고서」 분석 결과 상용근로자** 기준 남성은 여성보다 한 달에 12시간 정도 더 일합니다. 그에 비해 월급은 111만 원가량 차이가 납니다. 평균 0.07배만큼 더 일하면서 평균 0.45배 많은 월급을 받는 셈입니다.

경력단절 역시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여성은 출산과 양육 때문에 경력단절을 겪기 쉽습니다. 지난 3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청년 여성의 경력단절 경험과 임금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5~38세 여성 중 35.2%는 결혼 이후 5년 이내에 경력단절을 겪는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 남성은 4.1%만이 직장을 그만둡니다. 결혼은 유독 여성의 경제활동에만 유의미한 변수가 됩니다.

노조 내 여성의 대표성은 여성 노동자의 일자리 처우를 좌우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채용 시 성차별금지 조항을 단체협약에 반영한 사업장은 60%에 채 못 미쳤습니다. 임신·육아기간 내 근로시간 단축청구권을 단체협약에 반영한 경우는 절반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조사에 참여한 노조 사업장 252개 중 55%는 ‘여성 화장실이 없다’고답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모두가 받아들였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실제 교섭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죠. 현실에서는 직장 내 성차별이 큰 화두인데, 막상 교섭 현장에서는 거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역설적입니다.

언론은 ‘여성 조합원 30%’라는 수치를 두고 도약이라 말합니다. 실제로 2011년부터 7년간 여성 노조가입증가율은 연평균 7.4%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조합원 증가에도 여전히 여성 간부 규모는 그대로입니다. 지난 2003년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서 여성할당제 30% 규정을 제정했지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해당 규정이 있는 노조는 19.05%에 불과합니다. 여성 노조원의 간부 활동이 저조한 이유는 직장에서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기 힘든 이유와 비슷합니다. 노조에 들어가도 양육·출산으로 인한 불이익과 남성 중심적 문화를 피해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고자 조직된 단체에서조차 여성은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습니다.

전국 노조 결성 비율은 10%를 웃돌고 있습니다.이 안에 속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있습니다. 노조에서조차 여성이 대변되지 못한다면, 노조에 들 여력조차 없는 이들은 어떤 상황일까요. 어쩌면이들은 수면 위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실 속 불평등은 여전하지만, 평등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이제 노동계도 이 흐름에 올라타야 할 시점입니다.

 

*모성 보호제도: 임신, 출산, 수유 등 여성이 양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 생리 휴가, 출산 전후 유급 휴가 따위가 이에 포함된다.
**상용근로자: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이거나 정규직원으로 일하면서 상여금, 퇴직금 등을 받는 안정적으로 고용된 근로자를 말한다.

 

글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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