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에 담긴 간절함을 남용하는 시대

 

身體髮膚 受之父母(신체발부 수지부모).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삭발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머리카락을 자르려면 내 목부터 자르라’ 말하던 선조들의 신념에서도 알 수 있듯 삭발, 즉 머리카락을 포기하는 행위는 큰 상징성을 갖는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삭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에게 삭발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사회를 향한 마지막 외침이었다.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건 자신의 머리칼밖에 없었기에 이들의 삭발은 더욱 간절했다. 그래서 자신의 생계를 지키기 위한 삭발은 그 어떤 시위보다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자신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머리카락, 즉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그들의 굳은 신념과 간절함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머리카락마저 내려놓으며 요구한 건 권리였다. 누군가가 당연시하는 권리를 얻기 위해 다른 누구는 자신의 마지막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삭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간절함’과 ‘절실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최근 정치인들의 삭발 릴레이를 보고 있자면, 간절함보다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포기한다’라는 삭발의 의미가 희석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곳은 많다. 정치인은 기자회견을 열 수 있고, 언론은 그들의 한 마디에 집중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언제든 말할 수 있는 그들에게선 삭발의 본래 의미를 찾기 어렵다. 나아가 이들은 간절함이 아닌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한다. 자신을 향하는 카메라에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삭발이다. 말할 길이 끊긴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사용하는 삭발을 정치인들은 남용하고 있다. 양손에 부와 명예를 쥐고 있는 이의 삭발은 진정성 없는 ‘쇼’처럼 보인다.

정치인은 논리와 근거로 국민을 움직여야 한다. 호소가 아닌 논리를 통한 설득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정치권의 삭발 릴레이는 삭발의 본질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역할까지 흐리는 것이다. 국민은 삭발의 진정성을 분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가진 게 없는 약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최후의 수단인지, 권력자가 국민의 관심을 얻기 위해 벌이는 쇼인지. 이를 분별하는 것만으로도 약자가 택하는 최후의 수단을 보호할 수 있다.

가진 게 없지만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강행한 최후의 간절함. 그 간절함이 제대로 표출될 수 있게, 우리는 삭발을 남용해서도, 그 남용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삭발은 갖지 못한 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글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자료사진 아이뉴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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