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사가 있어도 완전한 자립 생활은 꿈같은 이야기

“약속 시간에 늦어 뛰어가 보고 싶어”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속 ‘세하’의 대사다. 세하는 전신 마비로 사지를 움직이지 못한다. 보건복지부(아래 보건부)는 세하처럼 신체 혹은 정신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행 활동보조 서비스가 장애인의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장애인 활동보조, 선택 아닌 필수

 

활동보조 서비스는 활동보조사가 각종 신체·가사·사회활동을 지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식사, 옷 갈아입기 등의 기본적인 일부터 집안일, 외출 등을 돕는다. 

활동보조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일상에 필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조현석 정책실장은 “활동보조 서비스는 신변 처리나 식사 지원부터 등하교와 출퇴근 이동까지 지원한다”며 “중증장애인은 혼자 있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어 활동보조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서비스”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혼자 있던 중증장애인의 호흡기가 빠졌지만, 곁에 아무도 없어 사망한 사례도 있다.

신청인은 활동지원급여로 활동보조 서비스에 드는 금액을 부담한다. 활동지원급여를 받으려면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국민연금공단이 신청자를 대상으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진행한다. 이후 지자체의 수급자격위원회에서 활동지원이 필요한지 심사해 인정점수를 매긴다. 신청인은 인정점수에 따라 각기 다른 15개 등급을 부여받는다. 이에 따라 차등적으로 한 달 동안 사용할 급여를 받는다. 시간으로 따지면 최소 60시간에서 최대 480시간의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액수다.

 

기본권 보장 못 하는 활동보조 서비스

 

장애인 활동지원급여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전장연에 따르면 중앙정부 기준 월평균 약 109시간이 활동지원 서비스로 제공된다. 매일 약 3~4시간을 지원받는 수준이다. 이 시간 안에 식사부터 외출까지 해결해야 한다. 장애인권 시민단체 ‘함께가자 자립지원센터’ 서보민 실장은 “장애인이 자립 생활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라며 “점심은 먹어도 저녁은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을 위한 정부의 예산규모는 계속 증가해왔다. 지난 2017년 5천461억 원이었던 예산은 2018년 6천907억 원, 2019년 1조 34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예산이 늘었다고 지원 시간까지 늘지는 않았다. 예산의 증가분이 대부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활동보조사 임금 보충, 활동지원급여 수급자 확대 등에 쓰였기 때문이다. 조 실장은 “예년 8만 명이던 서비스 이용자가 약 8만 3천 명으로 늘었다”며 “이용자 수 증가,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감당하는 데 예산이 쓰여 지원 시간 증가까지 기대하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사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규정으로 인해 서비스 질마저 낮아지는 상황이다. 지난 2018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됨에 따라 활동보조사가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현재 「근로기준법」 제54조에 따라 활동보조사는 의무적으로 4시간 근무 후 30분, 8시간 근무 후 1시간 동안 쉬어야 한다. 활동보조사의 휴식권 보장을 우선으로 한 조치는 장애인이 방치될 수 있는 상황을 일으켰다. 서 실장은 “휴식 시간 동안 활동보조사는 장애인과 분리된 곳에서 쉬어야 한다”며 “서비스를 지원받는 장애인은 방치되고, 고위험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생명을 잃는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휴식권 보장은 활동보조사의 노동시간 증가로도 이어졌다. 무급 휴식이 의무화되면서 활동보조사는 기존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하게 됐다. 서 실장은 “기존에는 활동보조사가 근무 시간 안에 자율적으로 쉬었기 때문에 휴식 시간도 근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별도의 휴게 시간이 생겨 그 시간만큼 일해야 전과 같은 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활동보조 서비스의 수가는 시간당 1만 2천960원으로 책정돼 있다. 주말을 제외하고 한 달 동안 매일 8시간씩 일한다면 200여만 원을 벌게 된다. 보건부가 제시한 2019년 기준 4인 가구 중위소득은 460여만 원이다. 한 명의 가장이 활동보조사 임금만으로 4인 가정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서 실장은 “활동보조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임금이 부족해 주로 여성들이 부수적인 수입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활동보조사가 대부분 여성이다 보니 물리적인 힘이 부족해 중증장애인의 이동을 도울 때 어려움을 겪는다. 또 남자 장애인에게 여성 활동보조사가 배정돼 탈의나 목욕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활동보조사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조치에 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고려는 없는 셈이다.

 

 장애등급제 폐지, 
수요자 맞춤은커녕 수요자를 울리다

 

상황은 지난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더욱 악화했다. 보건부는 장애인 개인별 맞춤,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장애등급제를 폐지했다. 활동보조 인정점수 산출을 위한 조사 항목 역시 바뀌었다. 장애등급제가 없어지기 전에는 ‘장애특성 고려영역’에서 인지기능, 시각기능, 휠체어사용 등의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해 인정점수를 냈다. 하지만 장애등급제 폐지 후 시청각복합평가, 인지행동특성, 신체기능 제한 등에 관련된 29개 항목*의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총합산된 점수가 속하는 구간의 급여만큼 지원받을 수 있다.

언뜻 보면 개인의 장애 여부, 종류 등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히려 하나의 장애만으로는 적절한 지원을 받기 어려워졌다. 다수의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합산 점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복장애인이 아닌 이상 하나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면 다른 항목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조 실장은 “지체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신체기능 제한에 관련된 항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아도 사고에는 지장이 없어 인지기능 항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기 힘들다”며 “총합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상황 때문에 오히려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1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보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중증 장애인 130여 명 중 활동보조 시간이 준 비율이 47%에 달했다.

상위등급을 받기 위한 인정점수 구간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점 역시 문제다. 현재 종합조사표에 따르면 최고점은 532점이다. 480~532점을 받으려면 직장을 다니면서 혼자 사는 장애인이 승강기가 없는 건물의 2층이나 지하에 살아야 한다. 거동이 불편해 식사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까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이 ‘직장인’이면서 ‘승강기 없는 2층이나 지하’에 사는 경우는 드물다. 또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에는 추가 항목으로 있던 ‘직장생활 여부’, ‘등하교 여부’ 등이 기본 항목으로 들어가면서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장애인은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조 실장은 “1등급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밝혔다. 

총합산 점수로 지원 급여를 결정하는 방식과 관련해 종합조사표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조 실장은 “단기적으로는 장애 유형별 특징에 해당하는 항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며 “정신장애인을 위한 인지기능 항목과 신체장애인을 위한 신체기능 항목 등은 분리해 장애 유형끼리 경합하는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점수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 실장은 “전반적인 점수 기준의 하향 조정 역시 전장연에서 주장하고 있다”며 “정부는 3년간 유예 기간을 둔다고 하지만 점수 산출 방식의 개선은 분명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활동보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답게 살려면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이다. 하지만 장애인 활동보조 질적 개선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가 진정한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될 수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서비스 종합조사 기능 제한 29개 항목: 옷 갈아입기, 목욕, 구강 청결, 음식물 넘기기, 식사하기, 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 등의 일상생활 동작 13개 항목과 전화사용, 청소, 빨래 등의 수단적 일상생활 동작 8개 항목과 주의력, 위험 인식, 자해 등의 인지행동특성 8개 항목으로 기능 제한 영역이 이뤄져 있다. 


글 강리나 기자
lovelina@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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