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그들이 '병원'이 아닌 '일터'로 향하는 이유상병수당 제도의 필요성과 도입 가능성을 살펴보다
  • 박준영 기자
  • 승인 2019.11.03 23:13
  • 호수 1840
  • 댓글 0

#A씨는 지난 6월 15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몇 년 전 앓았던 암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는 치료비 걱정보다도 남은 가족의 생계비 걱정에 눈앞이 막막하다. A씨가 다니던 중소기업에서는 개인적인 질병으로 직장에 나오지 못할 때 따로 지원하는 제도가 없다. 질병 발생 시 국가에서 따로 지원하는 공적 지원도 없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에 실업급여도 포기했다. A씨가 기댈 것은 얼마 안 되는 민간 의료보험금뿐이다.

‘질병’이라는 사회적 위험,
그러나 사회적 보험은 없다

개인은 수많은 위험에 맞닥뜨린다. 질병, 사고, 사망, 실업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위험을 ‘사회적 위험’이라고 한다. 이때 개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회가 마련해 놓은 복지 제도가 바로 ‘사회보험’이다. 대표적인 사회보험으로 ‘실업급여’가 있다. 실업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책임으로 간주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것이다.

질병 역시 치명적인 사회적 위험에 해당한다. 질병에 걸리거나 상해를 입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소득은 오히려 준다. 이들은 생활비와 치료비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에 대한 사회보험이 바로 ‘상병수당’ 제도다. 상병수당이란 건강보험 가입자가 업무와 관계없는 질병·부상을 입었을 때 소득 손실을 보상해주는 현금급여다. 상병수당은 기업이 아닌 국가가 책임진다는 점에서 산업재해보상보호법과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해외에서는 6~18개월간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준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해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급 병가는 법으로 정한 의무가 아니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임의제도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경우 복지 차원에서 유급 병가가 있지만, 그마저도 기한이 정해져 있다. 대기업의 경우 3개월까지 보장이 되지만, 일반 기업의 경우 한 달 정도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라도 유급 병가를 낼 수 없는 이들이 많다. 비정규직의 경우 유급 병가를 낼 수 없다. 중소기업 근로자나 자영업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병을 선고받는 순간, 직장을 잃거나 장사를 그만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질병은 여전히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 대부분의 국민들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이 부족하다고 인식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이때 저소득층일수록 민간의료보험료가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질병이 빈곤으로,
빈곤이 질병으로

저소득층일수록 질병이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치료비 부담뿐 아니라 당장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신기철 교수는 “질병 발생 시 의료비 발생이라는 직접적 손실과 더불어 소득 상실이라는 간접적 손실이 생긴다”고 말했다.

소득을 상실한 사람들은 재산으로 생활비와 치료비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질병으로 인한 경제활동 및 경제 상태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중증질환*군의 근로소득을 제외한 수입원을 유형별로 나눠본 결과, 민간보험 수입과 부동산 수입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이때 부동산 수입은 임대 수입보다는 매매 차익 수입이 대부분이었다. 즉, 생활비 마련을 위해 집이나 토지 등 기존에 갖고 있던 부동산 자산을 매각한 것이다.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임준 교수는 이를 두고 “소득 손실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보니 기존에 갖고 있던 자산을 처분해나가는 방식”이라며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사회보험 현금급여, 공적 이전과 같은 공적 자원 증가율은 미미했다. 이는 국가적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평소에 보험을 들어두지 않았거나 모아둔 자산이 없으면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는 셈이다.

저소득층일수록 보험 가입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17년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발표한 「민간의료보험의 격차 실태분석과 정상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95.2%다. 반면 하위 20%의 가입률은 37.4%다. 약 2.5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는 보험금 수령액 차이로 이어진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수령액은 약 62만 7천 원으로 하위 20%의 수령액에 비해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기존 민간의료보험은 특정 질병·상해에 대해서만 보장한다는 한계가 있다. 보험 상품은 대부분 암, 뇌혈관질환 등 특정 질병 위주로 구성된다. 보험회사에서 특정하는 질병이나 상해가 아닌 경우에는 소득 상실 부담을 개인이 져야 한다. 임 교수는 “상병수당은 질병의 정도와 종류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아닌,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약 계층은 생계의 어려움으로 아파도 쉬지 못한다. 고려사이버대 보건행정학과 손민건 교수는 “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필요한 수술만 받고 바로 일터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내 미충족의료**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5년도 한국의료패널자료에 따르면 미충족의료를 경험한 노동자 집단은 영세 자영업자(17%)와 일용직(16.7%)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 이유는 ‘경제적 이유(치료비용 부담)’가 4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유급 병가를 받기 어렵고, 소득 상실을 메꿀 수 없는 노동자는 제때 치료받지 못한다. 이렇게 질병은 빈곤을 부추기고, 빈곤은 질병을 통해 심화된다.

상병수당 도입하기 위한
현실적인 논의 진행돼야

우리나라의 경우 상병수당 지급에 대한 법적 조항은 마련돼 있지만, 시행은 되지 않고 있다. 상병수당은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 따라 부가급여에 포함된다. 부가급여란 보험자가 임의로 지급할 수 있는 급여를 말한다.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므로 사문화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상병수당은 부가급여가 아닌 법정급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병수당이 아직 의무지급되지 않는 이유를 “우리나라는 해외와 달리 의료보험이 먼저 발전해 최근에야 소득 보전에 대한 욕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제도에 대한 인식 부재 역시 한몫한다. 신 교수는 “상병수당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개념”이라며 “국민이나 노동자 역시 이를 잘 몰라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상병수당 지급 외에도 회사의 법적 책임 강화를 통해 유급 병가를 의무화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임 교수는 “유급 병가는 기업이 복지제도를 갖출 만한 여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며 “모든 기업에 유급 병가를 의무화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전했다.

정부의 현금급여 지원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정혜주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건강보험 제도는 노동자들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상병수당을 국민건강보험의 건강보험료로 지급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신 교수는 지난 7월에 발표한 「OECD 회원국의 상병수당 운영현황과 시사점」에서 현재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서 부가급여로 명시하는 상병수당 제도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 2018년 건강보험노조 역시 국고지원을 늘려 건강보험으로 상병수당을 지급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상병수당 논의와 도입 요구 목소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지난 6월부터 자체 유급 병가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는 근로취약계층에게 연간 최대 11일, 서울시 생활임금(1일 8만 1천180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지자체 차원의 유급 병가를 넘어선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손 교수는 “유급 병가제도가 지역 단위를 넘어서 전국으로 퍼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나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보장 형태의 상병수당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아프면 안 되는 현실. 아픔이 소득 상실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아픈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해줄 수 있는 정부의 현금급여 지원제도가 절실하다.

*중증질환: 해당 보고서에서 ‘사전에 예상하기 어렵고 치료를 미룰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으로 규정했다.
**미충족의료: 의료가 필요하지만, 적시에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글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자료사진 경향신문>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