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과 친하다. 선천적으로 빈혈이 심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기적으로 병원에 갔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에는 쓰러지는 날이 너무 많아서 거의 매일 병원을 드나들었다. 최근에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투병과 죽음을 겪기도 했다. 그들이 병과 싸우던 곳도, 그들의 장례를 치른 곳도 모두 병원이다.

병원과 친하다는 게 자랑할 만한 건 아니지만, 많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병원에는 진심으로 환자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그들은 자주 링거를 맞던 나를 기억하며 걱정해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우리 가족을 위로해줬다. 나는 환자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갈등이 극에 치닫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지난 8월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간호조무사의 명칭을 조무사로 바꿔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현재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모두를 간호사협회가 대변한다. 이에 간호조무사 측은 지금의 간호사협회는 간호조무사만의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며 간호조무사협회를 추가 법정 단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원은 두 집단 간 적대감에 불을 지폈다. 현재는 11만 명이 넘는 국민이 이 청원에 동의한 상태다.

청원자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간호사는 간호대학 졸업·1천 시간 실습 이수·국가고시 합격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면허를 취득하는 전문 의료인이다. 한편 간호조무사 면허는 누구나 학원에 다니면 1년 내로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노력 없이 간호사의 지위와 권리를 원하는 간호조무사 집단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간호조무사 측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 병원에서는 인건비 절약을 위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업무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더불어 간호사에 의한 언어폭력 등 간호조무사에 대한 인권 유린 사례도 많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호사들의 주장은 지나친 집단 이기주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본래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다. 의료인으로 분류되는 간호사는 의사의 진료를 직접 돕는다. 주사를 놓거나 채혈을 하는 업무 등이 이에 속한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와 진료를 보조하는 역할이다. 그들은 주사나 채혈 등 직접적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 대신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운동이나 활동에 도움을 주거나 병원 행정 업무 등을 담당한다.

하지만 대다수 병원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호조무사에게 간호사의 업무를 떠넘긴다. 병원의 규모가 작을수록 이는 더욱 심각해진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할 병원은 돈과 효율을 가장 먼저 따지기 시작했다. 간호조무사가 노력도 하지 않고 간호사의 권리를 빼앗으려 한 것이 아니다. 간호사가 막무가내로 특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병원이 먼저 기형적인 구조를 만든 것이다.

병원에 존재하는 수직적 문화 또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병원에는 수많은 직종이 있고, 직종 간에는 누가 누굴 ‘보조’하는지에 따라 서열이 결정된다. 같은 직종 안에도 근속연수에 따른 직급이 있다. 직급의 차이는 경험의 차이를 의미한다. 매일 긴박한 상황이 반복되는 병원에서 경험은 곧 권력이다. 그렇게 병원에는 2중에 걸친 계급이 생겨난다. 굳건한 계급사회인 병원에서 비상식적인 인권 유린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지난 2017년 10월 발생한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의 전공의 성추행 사건, 간호사 ‘태움’ 등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어쩌면 간호조무사의 명칭을 바꿔 달라는 청원은 병원이라는 계급사회가 낳은 갈등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대립하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대중은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간호사를, ‘정당한 노력 없이 남의 자리를 넘보는’ 간호조무사를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서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싸움 뒤엔 그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이제는 그들을 향하던 손가락을 구조를 향해 돌려야 할 시간이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환자에게서 보람을 찾던 병원을 위해서.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